개인
2008-01-04 ~ 2008-01-20
한애규
02-736-1020
가나아트갤러리는 2008년을 여는 첫 번째 기획전으로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과 열정이 담긴, 중견조각가 한애규(1953- )의 테라코타 조각전을 마련한다. 30여 년 동안 테라코타로 빚은 여성의 형상 안에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온 한애규는, 이번 전시에서 <꽃을 든 사람> 연작 50여 점을 통해 삶에 대한 열망이 담긴 꽃송이를 건네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손으로 흙을 빚고 불에 구워내어 사람과 흙과 불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애규의 테라코타 조각은 추운 겨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적 빈곤함을 채워줄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 국내 미술계에서 테라코타 조각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중견조각가 한애규의 개인전
한애규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프랑스 앙굴렘미술학교에서 공부한 중견조각가이다. 그는 주류 기득권층과 운동권 층으로 나뉘어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미술계를 주도하던 80년대부터 그 어떤 시류에도 따르지 않고 삶에 대한 통찰을 긍정적 어조로 테라코타에 담아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한애규의 테라코타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작가는 자신이 일상을 살아가며 느껴야 했던 여러 사회적 부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대적이거나 대립적이지 않은 접근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의 풍만하고 넉넉해 보이는 여인상은 고대 모계사회에서 보이는 만물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형상화된 것이며, 작가는 이러한 조형 언어를 통해 여성만이 지닌 모성으로 모든 문제들을 너그럽게 감싸 안으려한다. 이런 한애규만의 독자적인 문제해결방식은, 심도 깊은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에게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고 따뜻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한애규는 이번 <꽃을 든 사람> 연작을 통해 더욱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간 흙으로 빚은 여인상을 통해 보여주었던 모성과 포용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화해의 메시지’로 확장시켜 감동의 울림을 증폭시킨다.
■ <꽃을 든 사람> : 절망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담긴 꽃을 건네 소통을 희망하다
“꽃은 삶에 대한 열정, 사랑, 열망의 상징이다. 꽃을 든다는 것은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거대한 열망의 꽃’을 전하고 싶다. 삶이 지속되는 한 꽃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꽃을 잡고 있는 것은 마음이 포기한 일을 손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이번 전시에서 한애규는 꽃을 든 여성의 모습을 조각으로 선보인다. 80년대부터 여성성과 모성을 주제로 다룬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다가, 2005년에 오래된 유적지를 재현한 듯한 <침묵>시리즈로 세상에 대한 긴 침묵의 사색에 빠져들었던 작가는 이제 그동안의 긴 명상에서 깨어나 그 결과물로 한 송이 꽃을 피워내었다.
<꽃을 든 사람>에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숱한 회의와 절망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는 삶에 대한 의지로 충만해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꽃을 든 여인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애규가 보여주었던 여성들의 모습이 사회의 모순들을 그저 너그럽게 포용하는 수동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꽃을 든 사람> 연작에서는 꽃을 건네는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희망하고 있다.
여성들이 들고 있는 꽃송이 안에는 삶에 대한 작가의 열망이 담겨 있으며, 작가는 이 꽃을 매개로 세상에 말을 건다. 여인들은 활짝 핀 꽃송이를 들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꽃을 건네지 못한 채 시든 꽃을 가슴에 품고 서있다. 건네주지 못한 시든 꽃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은,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한애규는 <꽃을 든 사람>을 통해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온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흙과 사람의 온기를 머금은 테라코타 조각 : 재료와 하나 되는 포용의 미학
한애규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따뜻한 분위기는 재료인 흙과 작가의 손작업에서 비롯된다. 대지를 이루는 흙을 재료로 하여 사람 의 체온을 간직한 손을 이용해 완성된 그의 조각에는 저절로 흙과 사람의 온기가 배어난다. 그는 치밀한 계산 하에 어떤 틀이나 도구 없이 손으로 흙을 반죽하여 수십, 수백 번 붙이고 쌓아올리는 과정으로 형상을 만들어나가며, 작가의 손과 흙의 촉각적인 접촉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사람은 재료를 그리고 재료는 사람을 포용하여 종국에는 온전한 하나가 된다. 이렇게 사람과 흙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테라코타 조각에는 작가가 일상에서 경험한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갈색의 따뜻한 토양의 느낌을 간직한 테라코타 작업과 작가의 일상을 그대로 반영한 가식 없는 조형언어의 조합은 한애규 조각의 소박하고 푸근한 매력을 만드는 토대를 형성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멀지 않은 익숙함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인 편안함과 휴식을 제공해준다.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데, 거대한 꽃을 든 사람이 낯선 길에서 서성이고 있다.
대화를 거부하듯 닫혀진 대문들, 거리에는 인적이 없다.
초점이 부정확한 눈빛과 옅은 땀내가 나는 옷과 활기라고는 없는 걸음걸이로 보아
그는 지쳐있는 것도 같고 그저 어떤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들고 다녔는지 꽃은 시들어 가고 있고, 손의 온기로 데워져,
늘어진 팔 아래에서 마치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의 검고 긴 그림자가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어느 날 느닷없이 떠오른 이 한 장면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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