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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생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아쉬움을 먼 미래에 발굴된 건축물 형태의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소개
오래된 미래와 집 우무길의 조각 고충환 Kho, Chung-Hwan | 미술평론
현대미술에서 탈장르 현상이 가장 심화된 장르를 꼽으라면 단연 조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공적인 오브제의 생산이나 제안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정통조각이 레디메이드와 접목되면서 예술과 일상과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때 오브제는 공간적 점유의 형태로서 나타나는데, 이처럼 공간과의 열려진 관계 탓에 아상블라주나 설치미술에까지 그 범주가 확장되게 된다. 여기서 인체를 공간적 점유의 한 형태로 볼 때 조각의 범주는 살아있는 조각이나 행위예술로까지 증대된다. 재료 자체의 물질적인 성질을 강조하는 소위 물성조각에서 더 나아가 빛이나 소리 그리고 심지어는 공기를 소재로 한 비물질 조각을 아우르기도 한다. 저부조 형식의 조각은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엠보싱이나 심지어는 인쇄물과 사진 같은 평면적인 이미지마저도 조각의 이름으로써 재정의된다. 이처럼 현대조각의 외연이 무한정 확장되고 유연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변화된 환경에 부응하는 또 다른 한 형식이 소위 학제간 연구방식이다. 예술과 인문학과의 접점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러한 시도의 한 형식으로서 미술과 고고학간의 만남을 들 수 있다. 미술행위를 통해 고고학적 발굴행위를 흉내 내는 것이다. 유사역사, 의사역사, 대안역사, 대체역사로 나타난 담론의 다양한 지점과도 맞물리는 이러한 행위는 인문학에서의 정론과 이론,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재설정케 하면서, 미술과 조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끔 한다. 우무길의 근작은 이러한 학제간 연구방식에 그 맥이 닿아 있으며, 일종의 고고학적 발굴을 흉내 내는(차용하는) 유사 행위로부터 그 담론과 실천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 또는 제도화된 사회라든가 하는 식의 현대인의 삶에 대한 정의가 여럿 있지만, 그 변화된 삶의 풍경을 대변해주는 정의 가운데서 단연 자본주의 사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페티시즘(물신주의 혹은 물질주의)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는 생산과는 별개로 그 자체 자족적인 존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쇼핑아트라는 장르 개념이 제안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물질의 출현이나 특히 플라스틱 소재의 출현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플라스틱은 가히 문화적 충격이나 혁명에 비유될 만큼 현대와 그 이전과의 삶의 풍경을 판이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흔한 물질이 되었다. 우무길은 이러한 플라스틱 소재에서 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아이콘을 본다.
작가는 세재 용기나 온갖 형태의 페트병 등 일상적인 플라스틱 소재로 된 각종 사물들을 채집한다. 그리고 안료를 혼합한 시멘트를 그 용기에 넣어서 굳힌 연후에 그 외피를 칼로 떼어낸다. 그러니까 플라스틱 용기 자체가 일종의 주형이나 주물의 한 형식으로써 도입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물은 실제를 그대로 빼닮은 일종의 유사 사물이거나 유사 오브제를 실현한 것이며, 그 자체 현실과 가상, 실제와 허구, 레디메이드와 인공적인 조형물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함축한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종의 거푸집 형태의 박스를 만들고는, 그 속을 이 유사물체들과 함께 시멘트로 채워 넣어 굳힌다. 이로써 거푸집을 떼어내면 사각형태의 단단한 구조물이 드러난다. 이제부터 그 속에 숨겨진 유사물체들을 찾아나가는(발굴하는) 과정이 수행되는데, 처음에는 전동 드릴로 그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나게 한 연후에 정으로 그 세부를 다듬는 식으로 형태를 찾아낸다. 이때 유사물체를 만들 때 사용된 시멘트와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된 시멘트의 강도가 서로 다른 탓에 원형 그대로를 복원해낼 수 있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일종의 유사 고고학적 발굴 행위를 차용하고 참조하고 흉내 낸다. 이로써 미래인들을 위해 예비된 타임캡슐을 앞질러 열어본 것 같은, 그들이 발굴해낸 고문명의 화석을 대면하는 것 같은 기묘한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 이면에선 낭만주의의 폐허 이미지와 함께 소위 ‘오래된 미래’의 개념에 대한 공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작가는 허구적 상황을 생산하고 제안하는 예술가적 주체인 동시에, 잃어버린 문명의 흔적을 탐사하고 발굴하는 (유사)역사학과 고고학 그리고 사회학의 주체이기도 하다.
우무길은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써 여타의 작업을 형상화한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소재의 기성품 대신에 철근과 철판을 소재로 도입한다. 먼저 마디가 있는 굵은 철근을 자르고 휘고 이어 붙이는 과정으로써, 그리고 철판 조각을 잇대어 붙이는 과정을 통해 특정의 구조물을 만든다. 그 구조물은 타원형의 층계나 베란다가 층층이 중첩된 빌라나 집 형태를 최소한의 골격으로만 축소해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사물의 뼈대를 드러내 보여주는 이 조형물들은 사물의 존재양태를 그 최소한의 구조로 환원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며, 이는 그대로 사물의 이면에 깃든 구조(원형이나 본질)에 천착한 구조주의의 인문학적 태도와도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구조물을 사각 형태의 거푸집에 집어넣고 시멘트로 굳힌 연후에 연장을 이용해서 그 형태를 끄집어낸다. 이로써 구조물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면서도 그 골격 사이사이로 시멘트가 채워져 있는 조형물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옆으로 긴 장방형의 집 형태의 철판 구조물 사이에다가 거푸집을 만든 연후에 이를 털어내기도 한다. 이로써 마치 집의 허리 부분에 둥그렇게 비정형의 둘레가 쳐져 있는 것 같은 특유의 조형물이 연출된다.
이 일련의 조형물들은 삶의 처소가 갖는 서정적이고 의미론적인 성질을 환기시켜준다. 즉 작가의 작업에서의 집 형상은 단순한 재현의 소산이 아니라, 그 최소한의 골격과 살(시멘트를 갤 때 함께 집어넣은 잡석이나 이를 털어 낼 때 생긴 비정형의 흠집 등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로써 집의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성질을 암시하고 상징한 것이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확인되는 바이지만 사각이나 이를 변주한 집 형상은 일종의 이중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그 자체 가장 완전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의미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그 폐쇄적인 형태가 자신에게 함몰된 자기 정체성의 한계를 상징한다. 집을 (집단적이거나 개인적인)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상징문법에 기대어 자기 개인의 이야기(개인적인 서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푸집으로부터 집 형상을 끄집어내는 작가의 행위는 집으로 상징되는 잠재적인 자아(내면적이고 무의식적인 자아)와 대면하는 경험에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의 경계를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외에도 작가는 집 형상의 바깥쪽으로 여러 크고 작은 노끈들이 노출돼 있는 일련의 작업들을 제안한다. 노끈들이 거푸집을 관통하도록 배열하고 이를 시멘트와 함께 굳힌 연후에 집 모양으로 시멘트를 털어낸 것이다. 이들 작업에서의 집 역시 작가의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며 그 외부로 향한 끈들은 타자와의 관계를, 인연을 상징한다. 자기 혼자만으로는 살 수 없는, 타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속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관계의 끈은 나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나아가 나를 깨우쳐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나를 피폐하게 하기도 한다. 때로 나는 속수무책으로 엉클어져 있는 실타래(노끈뭉치)처럼 그 관계를 버거워하기조차 한다. 우무길의 작업에서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는 이처럼 집 밖으로 연결된 노끈으로도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집과 또 다른 집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에서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 자체를 타자와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무길의 작업은 일종의 유사 고고학적 발굴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학제간 연구방식으로 나타난 근래의 한 경향을 예시해준다. 전통적인 조각의 문법과 고고학의 인문학이 만나지는 경계 위에서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소재의 일상품을 소재로 한 유사오브제 작업이란 점에서 소위 오래된 미래로 나타난 문명사적 비전을 앞질러 엿보게 하며, 집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들에선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정체성의 일면을 드러낸다. 거푸집 속에서 끄집어낸 집 형상을 통해 잠재적인 나와 대면케 해주고, 노끈으로 연결된 집 형상을 통해서는 타자와의 관계를 떠올려준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의미론적 성분이나 지점들이 전통적인 직조를 통해 환기되고 암시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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