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적 추상 속에 자연의 숨결을 담아내는 조각가 박은선의 4년 만의 국내 개인전
기하학적 추상 속에 자연의 숨결을 담아내는 중견조각가 박은선의 개인전. 박은선(1965-)은 1993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카라라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이후 현재 대리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서 작업하면서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작가이다.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완벽한 균형과 질서 속에 자연의 에너지와 우연의 효과를 담아내는 박은선의 작업은 유럽 미술계에서 서양 모더니즘의 추상 조각과는 차별화되는 '동양적 추상조각'이라는 평가로 주목받아 오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피에트라산타시의 초청으로 베르실리아나 공원에서 대규모 야외 조각전을 갖은 바 있는데, 이 조각전은 피에트라산타시가 매년 개최하고 헨리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참여해 온 문화축제인「베르실리아나 축제 Festa della Versiliana」의 일환으로 열리는 전시로서, 한 명의 조각가를 선정하여 초대개인전을 열어주는 유서 깊은 행사이다. 이번 전시는 2004년 이후 국내에서는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기존 작업에서 변화한 신작 '모데레이션 moderation' 연작을 발표하며, 그 동안 국내전시에서는 공간상의 제약으로 선보이기 어려웠던 높이 2m 이상의 대작들을 다수 전시한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의 신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볼륨 있는 스케일 안에 경쾌한 변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작가적 감성을 공감할 수 있는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유럽에서 주목받는 조각가 박은선의 대작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
박은선은 1995년 이탈리아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10년 넘는 세월동안 주로 대리석을 재료로 한 추상 조각을 탐구해오고 있다. 그것은 주로 원기둥이나 완벽한 구 모양의 단위체들이 무한히 반복되어 공간 속으로 확장해나가는 형상이거나, 두 개의 색채가 줄무늬 형상으로 엇갈려서 구성된다. 대리석을 다루어 온 많은 서양의 조각가들이 재료 본연의 볼륨감을 살려 덩어리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두 개의 다른 색깔의 대리석을 얇은 두께의 판으로 절단한 후 쌓아올린 박은선의 조각은 선과 색이 강조된 회화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이러한 방식이 외형적으로 균형과 질서를 갖춘 기계적 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가로지르는 균열의 흔적은 추상의 완벽한 질서를 뒤흔드는 에너지와 힘을 발산한다. 작가는 불규칙하게 파열된 틈으로 인간의 숨결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는 공간 속으로 확장하는 자신의 조각에 대해 "인간 내면의 감정을 형상화하고..인간의 꿈과 희망의 감정을 세계로 확장시키고자 표현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거칠게 파괴된 돌과 정교하게 표면이 처리된 돌 사이의 긴장, 완벽한 구성 안에 본질과 인간에 대한 메세지가 공존하는 작업을 통해 유럽미술계가 주목하는 독창적인 추상의 경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신작 '모데레이션 moderation' 연작에서 배어나는 중용과 절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모데레이션 moderation 연작은 사각기둥이나 원기둥이 또 다른 원기둥의 단위체와 강하게 충돌하는 형상이다. 사각 기둥 중간 중간에 툭툭 터져 나온 원기둥의 파편들, 발끝부터 머리까지 갈라져 올라간 균열은 기둥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강한 움직임을 전달한다. 작가는 원기둥에 대해서 대학시절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원통형의 하수도관이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의 척추를 연상하면서 제작하였다는 그의 원기둥은 사물의 근원적인 원초성을 생각하게 한다. "사각 기둥은 내재된 본질을 추구하고 있으며, 구체는 증식과 번식을 통해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상징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인간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생명력과 이중성을 직선과 곡선의 힘찬 변주로 보여주는 신작「모데레이션」은 절제된 구성 속에 형성되는 무질서하지만 자연스러운 조화와 균형의 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꼼꼼하고 정교한 작업 테크닉, 그러나 그 이상의 감동을 표현하는 작가
대리석의 매끄러운 표면과 거칠게 갈라진 틈을 만드는 작업 과정은 매우 정교하다. 일단 철저한 디자인과 계산에 의해 대리석을 나무판처럼 얇게 절단하고 두 가지 색깔의 대리석 판을 차곡차곡 쌓아 접착시켜 줄무늬 형상의 구나 원기둥을 만든다. 이때 균열은 판을 떨어뜨려 우연적인 효과로 생기거나 자연적으로 균열이 생긴 돌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도의 테크닉과 예측할 수 없는 효과로 완성되는 박은선의 기둥 조각은 매끈하고 완벽한 균형미 속에 거친 균열이 숨 쉬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것, 과학적인 엄격함이 공존한다. 꼼꼼하고 정교한 테크닉을 요하는 작업 앞에서 관람객은 과학적인 계산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유적의 파편이나 역사적 서사성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건축물의 잔해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감흥일 수도 있다. 조각의 내부가 파열되고 여러 공간으로 중첩되어 들어가거나 대리석의 거친 면과 마모된 면이 불규칙하게 혼성되어 있는 그의 기둥은 무한한 상상력과 감동을 제공한다. 이는 작가의 특별한 노동에 대한 경이일 수도 있고, "옛 절의 배흘림기둥이나 유럽 성당의 기둥에서 황홀감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는 작가처럼 기둥 안에서 발견해 낸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마주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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