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08-04-30 ~ 2008-05-06
김광부
02.736.1020
아시아 신화(神話)의 흔적을 찾아서
나는 오랫동안 아시아의 비와 바람과 구름사이로 돌아 다녔다.
해와 달이 지나는 길목에서, 삶과 죽음이 유혹하는 강가에서, 황량하게 펼쳐있는 열대지방의 퇴락한 폐허 속에서 신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게 그리고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변함없이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인간들은 영원이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매일 매일이 영혼의 동반자이며 한해 한해 역시 마찬가지 인데도......
시인 고은(高銀)은 “진정한 과거는 유산이 아니라 폐허”라고 말한다.
“폐허만큼 사람에게 처절한 것이 어디 있는가. 아니 폐허만큼 자신의 근원을 만나게 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세계문화의 원형을 찾아 나설 때 거기서 만나는 것이 폐허가 아닌가”
전설과 신화 역시 항상 자연으로부터 온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의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시아인의 내세관(來世觀)은 신비롭게도 서양인과는 사뭇 다르다.
아시아인의 얼굴에는 세월에 깍인 석탑과 전설이 전해주는 내면적인 신화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각인되어 있다. 이들에게 있어 신화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비와 바람과 구름 사이를 떠돌면서, 그때그때마다 내 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기록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이곳의 역사적인 발전과정과 그들의 신앙적인 표현 그리고 과거의 예술적인 유물에 대해 듣고 보아왔다. 전통과 신화들로 가득 채워진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 이성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내 언어로 잡았다. 이렇게 해서 그 모든 것이 모였을 때 비로소 이해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땅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이해의 틀 안에서, 나는 서구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세계관보다 업(Karma)의 힘이 삼라만상에 미치는 신비로운 내세관을 더 매력적이라 여긴다. 얼마 전 74세로 타계한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의 ‘동양적 사유’가 생각난다. 서양의 전통적 언어는 낮과 밤, 삶과 죽음,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 같은 이항(二項)의 대립 구조에서 출발한다. 이런 표현은 대상이 단절되고 영속성이 없는 것처럼 서로 구분되어 보이는 착각을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것들은 변화와 생성과정의 한 순간일 뿐이다. 유(儒), 불(佛), 선(仙)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는 이런 이분법적 본질의 해체를 전제하고 있다. 현대의 학문 역시 단지 피상적인 덧없음(Anicca)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고리다. 혼자만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함께 선해질 때 집단문화가 생긴다. 문화는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이다.
나는 나의 이 두 발로 세상을 걸으며 나의 두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행복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것 자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이 경탄할 만한 축복 속에서 더 많이 느끼고, 보듬고 감격할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일상의 진정한 벗어남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분명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왠지 그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근사한 우리들의 도시 속에서 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분명 우리는 마음 답답하고 황량하게 걸어가고 있다. 더 빠른 것, 더 좋은 것, 최고만을 향해 열심히 뛰는 오늘 날의 삶은 이제 우리를 지치게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현실 세계에서 순간적인 찰나를 촬영한 것이며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간 삶의 형태와 그들의 신에 대한 기록을 주제로 삼고 있다. 한때는 우리 것이었던, 혹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것이 아닌 듯 여겨지는 풍광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낯 설은 풍경 속에서 내 본래의 모습을 본다. 그러니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곳에 뿌라박고 있는 존재론적인 자아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작업 하는 기간 내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영적 세계 또는 신의 세계,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죽음과 환생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들이었다.
네팔과 티벳의 설산에서 인도의 강고트리와 라닥의 잔스카르에서 장대한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바라 본적이 있다. 지상에서 가장 큰 산맥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진정한 순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만든다.
어제의 구름과 지난밤의 바람을 생각해 본다. 위대한 성인들도 자기 똥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투명함도 집착하면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결국 카일라스 산에는 가보지 못했다. 하늘과 땅을 어우러지게 하는 승려들의 경 읽는 소리는 내가 신을 이해하기도 전에 끝나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간 여행하면서 찾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나의 잘못도 있고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 와서 어찌 하겠는가? 다 내 업(業)이라 생각한다.
오래된 세월 속에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8 봄 김 광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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