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
Ⅰ. 화력(畵歷) 50주년을 맞이하는 최예태는 풍경, 인물, 정물 모두에 능한 화가다. 여기서 50주년이라고 한 것은 물론 그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을 한 연도인 1958년을 기점으로 한 것이다. 그는 그 후 10여 년 만에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수학했고, 그로부터 다시 10여년 뒤인 1991에는 캐나다의 퀘백대학교에서 조형미술을 전공하였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그가 늘 연구하고 배우는 작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이 꾸준한 그림 수업의 배경에는 과연 어떤 추동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최예태의 그림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한색과 난색에 의한 강렬한 보색대비 효과를 기조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론 그가 이러한 법칙을 자신의 모든 작품에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그것이 대상의 단순화와 붓과 페인팅 나이프의 혼용과 함께 최예태 회화의 기조가 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자료의 미비로 인해 70-80년대의 작품을 살펴볼 수 없는 나로서는 뭐라고 딱히 단정지울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간헐적으로 이 시기 그의 작품을 접해 본 나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도 현재의 것과 유사한 구상 스타일의 회화를 견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국전의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를 역임한 그의 경력으로 볼 때, 당시 화단에서 그의 존재는 매우 확고한 것이었다.
최예태는 사실적인 묘사에 능한 작가다. 풍경이 됐든 혹은 정물이나 인물이 됐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탁월한 묘사력으로 대상의 특징을 화면에 담아낸다. 누드의 여인상을 비롯하여 해바라기, 장미, 코스모스, 양귀비 등등 화훼나 모과, 호박, 사과와 같은 과일들, 그리고 저 멀리 높은 산이 보이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려내는 대상들은 모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이다. 그는 이처럼 친숙한 소재들을 전통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여겨져 온 구도와 자연 본래의 색감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해야 할 사항은 그가 이처럼 정통적인 기법에 의한 그림을 그린다할지라도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늘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회화에 기울이는 최예태의 이런 실험은 화면 구도와 색채, 그리고 표현기법 등 세 분야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Ⅱ. 최근 몇 년간 최예태가 실험해 온 것은 화면의 분할이다. 이는 그가 이제까지 다루어 온 일원적인 화면구성에서 벗어나 다원적인 화면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는 다원적인 화면구성을 위해 하나 혹은 두 세 개의 색 띠를 설정한다. 그리하여 화면은 몇 개의 공간으로 분할된다. 그러나 색 띠를 설정하여 화면을 분할한다고 해서 전체 화면의 기저가 되는 내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화면의 전체적인 형태는 이제까지 그가 그려왔던 내용과 별 다름이 없다. 말하자면 전체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되 화면이 색 띠에 의해 분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색 띠에 의해 화면을 분할할 경우 대부분의 작품들은 단순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실적인 묘사에 의한 화면이 아니라, 단순화된 화면을 시도할 때 예의 색 띠를 삽입함으로써 그것을 근거로 단순화된 화면을 확인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대상을 그린 화면이 하나의 시각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색 띠를 근거로 확인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나 혹은 두 개의 예리하고 선명하게 그려진 색 띠들은 그 자체의 시각적 돌출로 인하여 존재감을 뚜렷이 주장함으로써 화면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그것들은 화면을 분리한다는 내용적 의미보다는 그 자체 시각적 존재감을 분명히 함으로써 형식적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그 밑에 존재하는 화면의 내용을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최예태의 이전의 사실적 풍경화와 인물화들에 색 띠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입증된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가령, 사실적으로 묘사된 정물화와 여인의 인물화에도 색 띠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법칙에 따르고 있다.
Ⅲ. 그 다음에 살펴봐야 할 것은 소위 한난에 의한 보색대비의 효과다. 이것은 최예태의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무튼 최예태는 누드의 인물화건 산을 그린 풍경화건 간에 이 보색대비에 의한 강렬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자기 회화의 인상을 강화시켜 왔다. 그는 누드에서는 푸른기미가 감도는 단색조의 화면효과를 실험하는 한편, 풍경화에서는 페인팅 나이프에 의해 물감의 층을 쌓아가는 적층기법을 사용하여 강렬한 한난대비의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실험을 병행해 나갔다. 푸른색이나 녹색을 사용하여 단색조로 그린 여인상들은 몽환적이며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 누드의 여인상들은 차갑도록 강렬한 청색과 정열적이리만큼 뜨거운 붉은 색으로 묘사된 일련의 여인상들과 함께 인물화에서 색채가 주는 감정 효과에 대한 실험의 뚜렷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 그림들은 자연색으로 그려진 정물, 인물, 풍경화와 함께 같은 기간 대에 제작되고 있는데, 이는 다소 혼란스런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실험과 전통적인 화풍사이에서 고뇌했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이천 년 대의 초중반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실험들은 최예태의 회화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근작에 이르러 녹색을 주조로 한 산 연작과 붉은 색과 녹색을 대비시킨 산 연작을 낳았는데, 이 작품들은 앞에서 분석한 것처럼 색 띠에 의한 화면분할법이 특징이다.
최예태의 작품에는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탄탄한 조형감각이 배어있다. 그는 붓으로 칠하는 정통적인 기법에도 능하려니와 페인팅 나이프로 물감을 바르는 기법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붉은 산의 판타지>(2002)를 비롯하여 <설산이 보이는 금강산>(2000) 연작, <아 금강산>(2000) 등 금강산을 소재로 한 일련의 연작과 <묵시적 사유>(2003), <누드의 환상곡>(2003), <붉은 나부>(2001), <붉은 누드의 환상>(2001) 등 누드 연작에 이르기까지 나이프를 이용한 그림을 그려왔다. 최예태의 나이프 그림은 붓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정통화법의 오랜 숙련에서 배태된 것이다. 이 두 기법의 혼용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화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예태는 최근 마침내 <나부군상>을 완성했다. 1천 호에 해당하는 이 대작은 같은 1천 호짜리 대작인 <붉은 산의 판타지>, 그리고 5백 20호 짜리 <독도 진경>과 함께 이번 회고전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부군상>은 청색조 단색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포즈의 여인상들이 허공에서 벌이는 군무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관객의 눈길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그림에는 그가 이제까지 그려온 숱한 누드 인물화의 다양한 포즈들이 잘 집약돼 있다. 마치 초현실적인 경향의 미디어 아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느낌은 청색조의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동세가 가져다주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에 힘입고 있다.
<붉은 산의 판타지>는 한난대비의 효과와 함께 단순화된 화면구조를 지닌 산 연작을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더욱 환원시킨 결과다. 삼각형을 기본 단위로 이를 다각도에서 중첩시켜 하나의 종합적인 화면구성을 이끌어 낸 이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실험해 온 산 연작이 모태가 되고 있다. 모두 대작에 해당하는 이 근작들은 최예태의 화력 5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작품들로서 장구한 시간을 회화 예술에 바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