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하트 (Sleeping Heart)'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 강영민의 신작전
가나아트갤러리는 다양한 표정이 담긴 하트 캐릭터로 친숙한 팝 아티스트 강영민(1972- )의 네 번째 개인전을 마련한다. 강영민은 홍대 회화과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업영역을 캔버스 안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시기획, 애니메이션 제작, 아트디렉팅 등의 다방면으로 확장시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이다.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 팝아트 작가답게 강영민의 작품테마는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다. 그는 지난 3번의 개인전에서 '하트'라는 통상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물신화된 사랑을 풍자하기도 하고, 태극기와 결합시켜 태극기의 권위적이고 낡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도 하는 등 관습적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랑과 그로인해 야기되는 상처받은 감정들에 주목한다. 어두운 화면과 기교 없는 화법으로 고뇌, 고독, 고통 등의 사랑과 관련된 아픔의 정서를 담아내어, 기존의 밝고 가벼운 팝 아트와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강영민의 신작 40여점은, 인간의 상처, 그 괴로움 자체를 표현하며 한국 팝아트의 새로운 코드를 보여줄 것이다.
영혼과 감성에 직접적으로 소통되는 '아픔'의 정서
강영민은 자신의 캐릭터에 얼굴대신 하트를 그려 넣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면 안에 가득 차게 그려져 있는 하트 인간들은 무겁고 우울한 내면의 감정을 분출하고 있으며, 이렇게 단순한 캐릭터 안에 직설적 화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강렬한 감정은 작품에 강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상처받은 마음의 아픔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아낸다. 그림에서 보이는 슬픔, 외로움, 우울 등의 감정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정서라는 점에서 보는 이의 마음에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아픔의 정서는 어두운 색채, 거친 붓질, 의도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화면 등과 함께, 지금까지 팝아트에서 보여주었던 밝고 쉬운 디자인적 표현들과 대비되며 생소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팝아트가 대중적 이미지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 안에 내재하는 보편적 감성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하트라는 누구나 아는 형상 안에 정서적 고통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담아낸 그의 작업은 팝아트의 표피적인 요소가 아닌 진정한 내면세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강영민의 그림은 보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소재 혹은 감정이 아닌 머리로만 그린 그림이 만연한 시대에 물리적인 표현을 넘어선 감정의 진정성으로,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면 진다! - '사랑'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깃든 그림
술에 취하고, 울고, 칼에 찔리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하트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사랑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음직한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다. 사랑하면서 겪는 아픔이 촌스러울 만큼 고스란히 묻어있는 강영민의 그림에는 사람냄새가 느껴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길 수 없고, 헤어진 연인을 못잊어 괴로워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트인간의 모습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단순한 진리가 담겨있다. 이렇게 작가는 사랑 앞에서 루저(loser)인 자기고백적 캐릭터를 통해 사랑하기 때문에 져줄 수밖에 없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지하게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왜 하트인가?
사랑을 상징하지만 과다한 남용으로 이제는 흔하디흔한 관습적 이미지가 되어버린 하트기호 안에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을 그려 넣어 하트인간을 만든다. 의미가 부재하는 하트와,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조합은 관객들 스스로 자신이 경험한 사랑, 상처 등의 감정을 하트 안에 그려 넣을 수 있도록 만든다.
우울한 팝아트로 보여주는 주류문화에 대한 문제제기
강영민은 소위 루저 캐릭터(loser character)를 그려낸다. 그의 작품전반에는 실망하고 좌절한 사람들과 그들의 우울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진실한 감정이지만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나약하고 부정적인 감정들, 슬픔과 아픔 등을 전혀 포장하지 않은 날것 그 자체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 화법에는 감정이 배재되고 개념만이 존재하는 현재의 주류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그의 그림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과 진정성,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이다.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언더그라운드적'이라고 말한다.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자유로운 상상력은 강영민 특유의 젊음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주류미술계에 대한 저항의식도 제법 무겁게 실려 있다. 그의 독창성은 단지 하트라는 심벌을 캐릭터화 시킨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한 감정이다.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빚어진 캐릭터들의 우울한 상황은 우리가 아픔의 감정들에 직면하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경험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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