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작가는 동화적이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환상적인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상적 현실의 체험 속에서 그때 그때 발견하고 느끼는 작은 기적들을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하여 이번 전시 작품들 중에서 어린아이를 주제로 한 그림들 대부분이다. 작가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표현된 어린아이의 천진스런 모습이 환상적인 색채와 공간의 조화를 이루어 관람자의 눈과 마음을 따뜻하고 즐겁게 해주는 전시.
하나, 둘...
오늘도 영수증을 모은다.
어느새 내 삶의 기록이 되고 있는 종이들.
영수증은 어느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게 되었고,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까지 생각나게 한다.
나는 일기나 수필을 쓰는 대신 영수증을 정리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이런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에선 희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난 아이의 얼굴에서 태양을 발견했다.
- 작가의 노트
동화적 환상의 판화 세계
오현영의 판화전에 부쳐...
오현영은 이번 작품전에서 동화적이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환상적인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을 보면 대부분 어린아이의 모습이 화면 가득 등장하고 그 어린아이의 모습을 중심으로 나비나 꽃, 영수증 등의 이미지가 자유롭고 다양하게 변형되고 배치되어 그려져 있다. 성인(成人)을 모델로 한 그림도 몇 점 있지만, 이번 전시 작품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어린아이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작가의 시각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된 어린아이의 천진스런 모습이 환상적(幻想的)인 색채와 공간구성(空間構成) 속에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듯하고 즐겁게 감싸안고 있다.
그가 그린 작품을 하나 살펴보자.
화면 가득 어린아이가 마치 크레파스화를 연상하게 하는 소박한 필치(筆致)로 그려져 있고, 어린아이의 머리 부분엔 날아다니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나비들이 그려져 있다. 나비들이 없었다고 해도 그림은 되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생동감(生動感)은 지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나비들은 작가가 그의 내면에서 느낀 기쁨에 찬 마음의 심리적 반영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반영물로써의 나비 형상은 작품을 활기 있게 하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화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두 볼엔 발그레 하게 붉은색 점이 찍혀 있다. 흰색의 민소매 윗도리를 입은 아이는 영수증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아랫부분에 찍혀 있는 영수증들이 화면 윗부분에 그려진 나비들의 형상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수증은 그의 그림에서 현실의 각박한 세태를 반영하는 이미지이다. 작가 자신이 살면서 받아 온 스트레스가 거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영수증을 아이가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이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천진하고 순수하다. 작가 오현영은 어린아이의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을 보자.
이 그림에선 어린아이가 아예 큰 나비가 된 형상으로 등장한다. 화면 가득 나비의 날개가 소박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로 그려져 있고, 두 날개 사이에 나비의 머리인양 어린아이의 얼굴이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려져 있다. 어린아이의 몸에 그려진 색색의 구슬들이 아이의 웃음 띤 얼굴과 조화를 이루며 화면에 명랑한 정조를 번지게 한다. 아동화를 방불케 하는 소박하고 대담한 환상성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오현영은 그의 작품에서 표현의 주관성과 강렬함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적 화법의 하나인 <空間性의 일루전 illusion>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분명한 의도 하에 이루어지기보다는 무의식적(無意識的) 발상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선원근법(線遠近法 linear perspective)이나 대기원근법(大氣遠近法 aerial perspective)에 대한 고려가 없을뿐더러 입체감에 대한 고려도 없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은 강렬한 색채의 옷을 입고 공간적 깊이감이 없이 평면화(平面化) 되어 그려지고 있다. 또한 <身體性의 일루전 illusion>이나 <物質性의 일루전>도 그의 작품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화가의 주관적 고려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되고 과장되게 그려지는 것이다. 오현영의 그림에 그려진 나비나 꽃, 어린아이 등의 대상들은 대상이 각기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물질성 대신에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이 동일한 안료의 물질성으로 채워지고 있다. 인상주의 미술 이후 표현주의 미술이 추구했던 방향과 유사한 방법인 것이다.
오현영이 이렇게 그리고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외부의 사물을 재현(再現)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을 표출하려는 그림은 화가의 정신세계가 지닌 깊이와 상상력의 풍부함에 의해 얼마든지 드넓은 표현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마련이다.
오현영은 일상적 현실의 체험 속에서 그때 그때 발견하고 느끼는 작은 기적들을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화가이다.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 속에도 생명의 신비는 숨 쉬고 있고 어딘가에 기적은 빛나고 있는 법이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행동 속에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의 시선은 우리의 마음을 조용한 기쁨의 향기로 채우고 있다.
2008. 6. 서북서실에서 / 임두빈│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