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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30년간 한결같은 주제인 '평화'를 일상 속에서, 그리고 특히 혼자서 여러 일들을 몰입되어 짓나서 하고 있는, 몸은 풍만하고 얼굴 표정은 소녀 같은 여인들을 통하여 표현
김경옥의 여인 조각
-소소한 일상사 속에서 발견한 ‘유토피아’ 김정희 | 미술사가, 서울대학교 교수
“평화”는 조각가 김경옥이 30년 이상 한결같이 다루고 있는 주제다. 올해 16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는 그녀가 1978년 35세에 삼남매의 어머니로서 가졌던 첫 개인전에서 이 주제는 자고 있거나 놀이를 하고 있는 다양한 몸짓의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그 후 그녀의 소재는 가족, 모자, 남매나 자매만이 아니라 연인과 여인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 주로 일상 속에서, 그리고 특히 혼자서 여러 일들을 몰입되어 짓나서 하고 있는, 몸은 풍만하고 얼굴 표정은 소녀 같은 여인들이 작가의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모티브 상의 변화는 김경옥의 조각이 직접적으로는 아니라 해도 자전적인(self-referential)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이점은 특히 그녀의 조각에서 여인이 혼자 등장할 때 더 분명해진다. 탐미주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Picture of Dorian Gray)>에서 초상을 그린 화가의 입을 빌어 “화가의 손으로 그려지는 건 모델이 아니라네. 채색된 캔버스 위에 나타나는 건 오히려 화가 자신이지.”라고 말했다. 이 소설에서는 쾌락을 탐닉하면서 늙지 않는 현실 속의 도리언 그레이 대신 초상화 속의 그가 늙어 갔다. 이러한 도리언 그레이와는 반대로 김경옥의 작품 속의 여인은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모두 젊고 순수한 젊은이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소녀적인 감성과 소망을 지닌 작가의 영혼을 드러내고 있다.
부풀려진 풍선처럼 ‘피부’가 매끈하고 탄력이 있으며 특히 배와 허벅지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 풍만한 여인의 모습은 김경옥 조각의 양식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비율과 부피는 과장되었지만 사실주의적 묘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고, 터질 듯이 팽창한 형상의 전체적인 모습에 있어서는 생명주의적인(vitalist) 그녀의 조각은 우리나라 구상조각의 독특한 양상인 서정적인 경향의 흐름 속에 있다.
김경옥이 1회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품들에서는 위의 양상은 두 가지 양식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돌덩어리에 약간씩 홈을 파면서 인물의 세부를 암시하듯이 표현하는 조각 방식이다. 이것은 멀리는 전통적인 조각을 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정신적인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가 1907년 그의 <입맞춤>에서 시도한 “직접 깎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가깝게는 그녀의 스승들 가운데 하나이자 해방 후의 우리나라 서정적 구상조각 1세대 작가들 가운데 하나인 전뢰진에게서 발견된다. 특히 그녀의 인물들의 이목구비가 살짝 암시된 납작한 얼굴은 문인석상과 무인석상에서 그 전형을 발견한 그의 인물 묘사 방식으로부터 그녀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세부묘사가 엄밀하지 않고 형체도 단순화되었지만 “직접 깎기” 방식의 조각 작품에 비해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이것은 브론즈 소조 작품들에 적용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조각 방식이 결합되면서 김경옥 고유의 양식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식화된 작가 특유의 여인 형상의 첫 예들은 각각 1982년과 1984년에 열린 3회와 4회 개인전의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43번이 메겨진 1982년 작 <평화>에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꽃이 달린 굽 없는 신을 신은 한 발을 깨금발을 딛고 뛰어 오르려는 듯이 서 있는 소녀의 풍만한 허벅지와 흙을 거칠게 붙인 자국으로 요철(凹凸) 무늬가 생긴 의상은 그녀의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와 함께 김경옥의 조각에서 점점 더 강조되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4회전에서 57번을 달고 소개된 <평화>의 날갯짓 하듯이 양팔을 벌리고 묶은 머리채를 뒤로 날리면서 전진하는 듯한 여자 형상은, 이후 그녀의 전형적인 여인 조각과 비교할 때 아직 자두 모양의 작은 젓 가슴으로 보아 나이가 어려 보이고 팔과 다리도 굴곡에 대한 암시가 없이 추상화되어 표현되었지만, 그녀의 조각의 또 다른 특징인 매끈한 표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조형적인 특징들은 이후의 작품 속에서 더 강화되고 세련되어져 갔다.
한편 인물이 소품을 지니고 있거나 주변 환경과 ‘함께’ 등장하는 방식은 차음부터 김경옥의 조각에 있어 그것의 기법의 차이나 변화와 무관하게 적용된 독특한 특징이다. 초기에는, 이를테면 조각의 좌대(座臺)를 ‘소녀’가 앉아 있는 그루터기로 만들고, 그 모서리에는 소녀가 바라보는 꽃나무도 함께 조각한 <평화>(5)(1978)에서처럼, 인물 주변의 환경은 인물과 마찬가지로 조각으로 표현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은 조각된 것 위에 채색이 되거나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차용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김경옥이 일상의 오브제들을 조각과 결합시키게 된 것은 그녀가 일찍부터 가졌던 조지 세갈(George Segal)에 대한 관심에 의한 것이다. 그의 환경조각(Environmental Sculpture)은 실제 사람을 직접 흰 석고로 떠서 제작된 인물 형상이 실제의 옷을 입고 익명적인 사물들로 연출된 현실 공간에 등장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백색 몸의 인물들을 통해서 현대 도시인들의 소외를 표현하려 했다. 그의 실제 인물 크기의 조각과는 달리 김경옥의 인물들은 크기가 작고, 오브제들도 각 인물 형상과 친밀하게 연결된 것들이다. 이 오브제들은 작가가 직접 만들었거나 평소에 골동품가게나 벼룩시장에서 사서 모은 것들로 작가의 취향을 드러내 주는 것들이자 각 작품이 전달하려는 특정 상황을 연출하는 것들이다. 더러는 공예적이거나 민예품적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고 크기도 작은 오브제들이 등장하는 그녀의 조각에서는, 등불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여인 형상에서조차도, 세갈의 작품에서와 같은 무관심과 소외와 같은 차가운 감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김경옥의 여인들은 이러한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정성과 재미를 다해 열중하면서 각 순간과 각 상황을 자신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김경옥이 인물 형상 조각과 결합시킨 오브제들은 초기에는, 모자는 소년에게, 꽃은 소녀에게처럼, 인물의 성(性)이나 성격을 암시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테면 피아노, 화초, 다리미, 마이크, 우편함, 가로등, 작은 배, 책장, 가방, 전화, 문, 창틀, 과일 바구니 등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노래하고, 물주고, 다림질하고, 촛불 켜고, 전화하고, 상상하고, 기다리고, 기도하고, 편지 보고 등등, 등장인물이 몰입하고 있는 일상의 여러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김경옥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에 걸맞게 작품 제목 역시 <누가 이쁠까>, <가을밭의 허수아비>, <듣고 싶은 비 소리>, <시계가 시간에게 묻다>, <눈 오시는 날> 등, 노래 제목 같고 유머가 있다.
여인이 커다란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누가 이쁠까>나, 여인이 문에 기대서서 독서를 하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또는 여인이 등불을 들고 ‘눈이 쌓인’ 창밖을 내다보는 <눈 오시는 날> 등, 김경옥의 조각은 작가 자신의 일상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들은 독서나 노래 또는 전화처럼 성(性) 중립적인 일상들이다.
반면 곡식 단이나 과일과 같은 오브제들은 김경옥의 여인 형상을 여성의 출산 기능과 연결시키면서 그것을 풍요의 상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녀의 15회 개인전의 부제가 “꿈꾸는 대지”였던 사실이나 태아의 영상 이미지를 여인 형상의 배 위에 비친 작품, 또는 여인 형상이 태아의 영상이 비쳐지는 커다란 ‘공’을 누워 배 위에 들고 있는 작품이 직접적으로 시사하듯이 여성의 생산성 역시 김경옥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녀의 여인들의 풍만한 복부도 조형상의 볼륨감으로 만이 아니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김경옥의 여인들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상상이 만들어 낸 성욕과 성적 매력이 제거된 어머니상이 아니다. 이 여인들은 뚱뚱한 몸에도 불구하고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굴곡 있는 허리, 작은 얼굴, 탄탄하게 솟은 젖가슴과 앞으로 내민 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녀들을 에로틱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특징이 페르난드 보테로(Fernand Botero)의 인물이 실루엣이 몇 번의 굴곡으로 표현될 정도로 부풀어 오른 풍선 인형처럼 뚱뚱한 인물들과 닮은 이 여인들을 그의 우둔하고 욕심 많아 보이는 인물들과 구별시키는 요소들이다. 그녀의 인물 형상들에서 발견되는 성적 매력은 이들과 외형상 유사한 아리스티드 마이욜(Aristide Maillol)의 풍만한 여체들이 간직한 관능미를 연상시킨다.
김경옥의 여인 형상들은 다산(多産)의 어머니이자 육체적으로 관능미를 지닌 이브이고,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여인이자 감성과 취향에 있어서는 여전히 소녀다. 이러한 여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소소한 일들로 점철된 일상이고, 작가는 그 일상을 유토피아로 연출하고 있다. 자신의 작업 전체의 주제인 “평화”를 작가 스스로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과 연결시켜 볼 때 이 여인들의 유토피아는 소박하고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긍정과 즐김과 감사로서 토머스 무어(Thomas More)가 꿈꾸고 상상하는 거대한 국가라는, 소위 ‘남성적’ 유토피아와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