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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술에서 드러나는 시각 외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양상, 각 감각들이 상호 연계되는 공감각적인 경향을 [part 1. 감각의 환영], [part 2. 다중감각:교차와 혼합]으로 나누어 조망
Art & Synesthesia 新오감도최정희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향과 색과 소리는 서로 부르며 대답한다.”
- 보들레르의 시, <조응(照應)> 中 - <新오감도>는 16세기말부터 17세기 서양회화에서 많이 그려졌던 ‘오감도(五感圖)’를 응용한 제목으로, 오늘날 미술에서 드러나는 시각 외의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양상, 그리고 각 감각들이 상호 연계되는 공감각(共感覺)적인 경향을 조망하는 전시이다. 전통적인 오감도는 작품에 등장하는 각 소재들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감각의 찰나성과 허무함을 교훈적으로 제시하는 그림이었다. 반면, 오늘날 미술 작품에서의 감각적 경향은 오히려 작품의 제작과 감상에 영감과 상상력을 부여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이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를 온전히 지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감각이 유기적으로 동원되어야 한다.”고 했던 마샬 맥루한의 말처럼 작품을 바라다볼 뿐 아니라 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으며, ‘만지지 마시오’가 원칙인 미술 작품을 촉각적으로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한층 더 가까이 교감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회자되는 ‘공감각(Synesthesia)’이다. 글씨에서 색을 보았던 랭보, 색에서 소리를 느꼈던 칸딘스키처럼 감각의 전이능력을 지닌 사람을 공감각자라고 하는데, 일반인들도 공감각적 지각을 경험한다. 낮은 음은 어두운 색을, 높은 음은 밝은 색을 연상하게 하거나, 시원한 탄산음료에 환한 색을 연상하는 등의 것으로, 이는 감각 마케팅이나 디자인에도 활용된다. 문학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 등의 공감각적 심상이 있으며, 피타고라스와 괴테, 스트라빈스키 등 역사속의 여러 인물들이 색과 음의 관계성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미술에서의 공감각을 이야기하자면 칸딘스키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 역시 시각과 청각의 연결성에 주목하였다. 자신의 회화에 음악성을 부여한 그는 색채와 선에서 음감을 느꼈으며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 화면을 연출하였다. 그는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망치이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각의 청각적인 관련성으로부터 출발하여, 미술이 그 방식과 매체를 점차 다변화하고 실험해감에 따라 후각과 촉각, 미각에 이르는 다양한 작용과 현상을 보여 오고 있음을 오늘날의 미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현대미술작품의 논의에 있어 공감각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됨을 발견하곤 한다. 사전적 의미는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이지만 오늘날 다방면에서 언급되고 있는 ‘공감각적’이라는 표현은 한자어를 직역한 ‘감각이 함께 나타난다’라는 뜻처럼 단순한 전이 현상만이 아닌 여러 감각의 동시적 공존,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영향과 미묘한 틈새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공감각의 경향이 오늘날 미술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구현되고 있는가, 작가들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고찰한다. 일반적으로 시각만이 요구된다고 보여지는 회화 작품 안에서 또 다른 감각의 전이와 연상작용을 이끌어내게 됨을 보여주는 <Ⅰ. 감각의 환영>, 시각 외의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다중적으로 자극하여 새로운 미적 경험을 유발하며 관객의 참여로 인한 상호작용성을 가지는 작품들로 구성된 <Ⅱ. 다중감각 : 교차와 혼합>의 두 섹션으로 나뉘어 보여진다.
■ Part 1. 감각의 환영 Sensory Illusion
"회화는 우리의 눈을 어디에나 놓는다. 귓속에, 뱃속에, 허파 속에 아무데나 놓는다.”
- 질 들뢰즈,『감각의 논리』中 -‘환영(illusion)'이라 하면 시각적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지만, 여기서의 환영은 은유적인 견지에서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감각 전반의 상황을 표현한다. 들리나 들리는 것이 아니고, 맡아지나 맡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일루전으로서의 감각, 즉 ‘감각의 환영’을 이 섹션의 작품들은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작품을 ‘본다’ 라고 한다. 그러나 ‘보여지는’ 요소만이 존재하는 회화 작품일지라도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동안 우리의 뇌에는 시각 이외의 다양한 감각들이 자극되며, 여러 가지 연상과 전이 작용들이 일어나곤 한다. 우리가 특정 기억을 떠올릴 때 시각만이 아닌 후각, 청각적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인지해내듯 작품의 감상도 시각에 국한되지 않는 총체적인 행위이다. 작품은 우리의 지각과 감성을 다각적으로 일깨우며, 시각적 이미지는 비시각적, 비물질적 이미지들을 배태하며 관람자에게 받아들여진다. 앞서 인용한 들뢰즈의 말처럼 시각은 뇌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감각기관을 모두 자극하는 것이다. 문학에서 시의 심상을 이야기할 때 청각 이미지, 후각 이미지 등으로 분류하듯, 전형적인 시각예술인 회화에서 읽혀지는 시각 외적인 이미지의 환영을 네 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살펴본다.
■ Part 2. 다중 감각 : 교차와 혼합 Multiple Sense: Crossing and Blending이 섹션의 작품들은 바라다볼 뿐 아니라 소리를 듣고, 향기를 느끼며, 촉각적 액션에 의한 반응을 경험하는 등 하나 이상의 감각들이 시각과 함께 직접적인 자극으로 다가오는 작업들이다. 앞 섹션의 작품들을 화학적인 공감각 경향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이 섹션의 작품들은 물리적 공감각 경향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다중 감각 자극 안에서도 상호간의 연관성과 연상성으로 화학적 양상이 함께 작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새로운 미적 경험을 유발하며, 관객의 참여로 인한 상호작용성을 가지는 이 작품들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아날로그적 재료의 특질에서 야기되는 공감각성으로, 향기 나는 비누로 만든 조각, 폭신한 재질로 만들어진 앉을 수 있는 입체설치작품이나 담쟁이나 이끼 등의 식물설치로 정원의 기운을 느끼도록 연출하는 형태 등이다. 두 번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작품들로, 소리, 움직임 등 관람객의 반응에 의해 이미지가 변화하고 소리가 연주되는 등 첨단 미디어를 매개로 소통하는 작업들이다.
작품들과 만나는 가운데 전시와 작품을 ‘본다’는 시각 위주의 고정관념을 넘어 미술을 새로운 맥락에서 느끼고 체험하며, 매체의 다변화로 어렵고 복잡해졌다고 여겨지는 현대미술이 오히려 다양한 감각에 의한 소통성과 다각적 감성의 매력을 지님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일대일대응의 인과관계를 넘어서는 다중감각성 속에서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미술의 담론, 현상의 일면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초대일시 : 2009.03.17(Tue) 05:0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