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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전시관 - 모나리자의 콧수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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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원천-명화, 명품, 스타

김희랑(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영화를 봐도 TV를 틀어도 인터넷에 접속해도 온갖 패러디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상업광고는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을 빌려오기도 하고, 아예 명화 속에 상품을 삽입하기도 한다. 고전동화의 해피앤딩을 비트는 만화, 성대모사로 유명정치인을 풍자하는 코미디, 유명인의 합성사진 등 패러디는 거의 모든 대중문화매체 전반에 확산되어 장르의 구분 없이 새로운 문화코드로 각광받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런 패러디 문화를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지경이기도 하다.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대중매체 안에서 통용되는 패러디 문화를 알아야 하듯 꼭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명품. 언제부터인가 명품을 소장하고 있거나 마련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후발 산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부유층이 자신의 우월감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 명품 즉, 사치품에 열광하게 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소비의 양태는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라 비싸서 남들이 사지 못하는 것을 나만이 사야하는 ‘차별화’ 소비다. 그것이 부유층 사이에 명품 열풍을 일으켰고, 그러한 부를 동경하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명품을 추구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짝퉁이 판을 치고 있다. 짝퉁인지 모르고 속아서도 사고, 돈은 없으니 가짜명품으로라도 치장을 해야 되겠기에 일부러 짝퉁을 찾게 되는 일명 ‘짝퉁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최근 미술계 또한 이 시대의 소비문화와 이미지 복제의 시대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차용과 복제가 대유행이다. 특히 팝 아트나 극사실주의 경향으로 그려진 영웅이나 스타 등 유명인의 초상화 또는 명화를 차용하여 재구성하는 작품, 명품이나 기업의 상표를 차용하는 작품들이 미술품 경매시장과 아트페어의 활성화에 힘입어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도 ‘차용’, ‘변용’, ‘재해석’ 등등의 의미를 담아내는 전시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차용의 미술사

미술사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 중 상당수는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인용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마네의 <풀 밭 위의 식사>는 라파엘로의〈파리스의 심판〉과 지오르지네의 작품을 인용하였고, 라파엘로 역시 고대 로마시대의 그림을 차용하였다. 또한 마네의 걸작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차용하였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고흐 역시 밀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20세기 천재화가라 불리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와 루벤스, 들라크루와, 앵그르, 세쟌, 마티스 등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인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미술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과거 예술작품을 차용하고 패러디함으로서 기존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거나 기존 사회와 미술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차용과 패러디의 대부 격인 뒤샹은 위대한 예술품 '모나리자'에 낙서하듯 수염을 그려 넣고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와 발음 같은 L.H.O.O.Q를 써 넣음으로써 전통의 권위를 조롱했다. 즉, 뒤샹이 모나리자에 그려 넣은 수염과 글자는 명화 ‘모나리자’의 아우라를 해체하는 행위이자 미술이 오랜 시간 쌓아놓은 전통에 대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이는 미술사에 있어 대단한 사건이자 혁명이었고, 이후 미술가들은 작품을 구상하거나 창의력을 동원하는 대신 단지 선택만 하면 되는 단초를 제공받았다. 이제 작가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된 명화의 이미지는 컷업(Cut Up), 리믹스(Remix), 샘플링(Sampling) 등 과격하고 노골적이며 전략적이고 가히 폭력적이라 할 정도로 까지 패러디되고 변용되게 되었다.

명화의 차용은 비단 미술사 안에서 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광고는 ‘아트마케팅’이라는 전략 아래 오랫동안 만인의 사랑을 받는 명화의 이미지를 상품과 매치시켜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하고 있다. 또한 이와 반대현상으로 상업화된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 중에는 유명한 대기업이나 명품의 상표를 작품에 차용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미술작품이 다른 미술가 혹은 기업 등에 의해 복제, 차용, 패러디되어져 왔었다면, 이제 디지털기술이 보편화 되어버린 이 시대에는 그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그 누군가에 의해 복제의 복제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현대미술에 있어서 차용과 변용, 재해석은 미술의 가장 중요하고 주된 전략이자 유행하는 창작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내용과 이미지뿐만 아니라 조형적 측면 즉, 새로운 조형재료나 기법을 동원해 원본의 변용을 일궈내고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개입시키는 등 명화의 재발견으로 새롭게 탄생되어질 예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차용미술은 현재 진행 중에 있어 긍정과 부정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과 문제점을 불러일으킨다. 즉 명화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가가 있는 반면, 유행을 뒤쫓아 가는 양상으로 명화가 갖는 내용과 조형적 특성에 관한 탐구와 이해 없이 명화의 외형만을 빌려와 그저 새로운 재료나 기법만으로 명화와 유사한 이미지만을 재생산해는 작품들 또한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이는 표절과 변용의 차이점을 되짚어보게 하는 측면인데 자신의 사상과 철학 즉 미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일차원적 차용에 머물러 변용과 재해석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하는 작품들은 자칫 표절이라 불리는 작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전시의 구성

이번 전시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명화와 명품, 그리고 스타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이해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미술계의 흐름을 파악해 보는 기회로 삼고자 마련되었다. 나아가 예술품에 있어서 차용과 패러디에 관한 올바른 예시와 방향성 제시를 목표로 한다.
전시는 ‘명화의 재발견’, ‘명품 & 짝퉁’, ‘스타 메이킹’이라는 주제로 묶어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즉,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원본이 지닌 의미를 탐구하고 재해석해 보는 작품군과 명품이나 기업의 상표를 이용하여 물질만능주의의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는 작품군,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는 유명인을 독창적 조형어법이나 재료를 사용하여 새로운 스타로 탄생시킨 초상화군으로 나눌 수 있다.





명화의 재발견

권여현은 ‘신템브리드(syntagmbrid : 신템(syntagm)+혼성(hybridity))’라는 독창적 표현방식을 통해 명화의 이미지와 내용을 전복시키고, 변용하고 뒤섞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자아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는 개인의 자아는 성격, 지위, 역할과 같은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타인과의 관계망 즉 ‘신템’ 속에서 획득되어지는 자아와 본능‧욕망‧광기와 같이 감추고 싶은, 설명‧해독하기 힘들지만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브리드’적 요소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자아로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신탬’과 ‘브리드’는 대립적인 양상을 띠지만 자아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로서 상호보완적이다. 제자들과 역할놀이 방식으로 명화를 차용하는 작품군이 ‘신탬’의 형식이라면, 오이디푸스, 메두사, 히드라와 같은 금기시되는 이야기를 담은 신화는 권여현의 디오니소스적 감성 혹은 예술가적 광기와 같은 ‘브리드’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비너스의 탄생’, ‘잔다르크’ 과 같은 작품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의 혼재를 통해 진리라 믿고 있던 가치관‧상징성의 전복과 그것들의 무의함을 드러내고 주고,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이남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힘과 현대미술의 주요전략 중의 하나인 차용과 변용기법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만하다. 그에게 있어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과 창작의 소스를 제공하는 명화의 재발견은 마치 신재생에너지의 발견과 다를 바 없다. 그는 명화 속 이미지들이 갖는 잠재적 움직임을 포착하여 원작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내러티브와 새로운 화면을 창출한다. 초창기, 명화의 위대함과 감동을 극대화시키고 원작가 혹은 과거와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이이남의 변용은 근래 들어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과감한 변용과 비틀기를 통해 원작의 의미를 전복시키는가 하면 동서양의 명화를 교차‧혼합시키고, 과거 속에 현대 물질문명이 난무하는 풍경을 과감하게 삽입하기도 한다. 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서양 간의 진지한 대화이자 기발하고 생뚱맞은 만남으로, 보는 이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조대원은 중국 진시황릉에서 출토 된 병마용의 모습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즉 진시황의 세상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던 용마병은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비즈니스 맨과 닮아있다. 그는 병마용의 얼굴을 십이지신의 얼굴로 바꾸고 팝(Pop)적 요소가 강한 색채를 칠함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십이지신상을 만들어 낸다. 조대원이 만들어낸 신십이지신상은 동서양의 공간적‧문화적 혼재,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교차를 내포하며, 수많은 군상으로 줄 맞춰 서있는 모습은 현대사회의 무차별적 복제와 현대인의 획일적인 삶을 은유한다.




명품 & 짝퉁

양문기는 돌가방에 사넬, 루이비통, 디올과 같은 명품로고를 새겨 넣어 현대인들의 왜곡된 소비현상을 풍자한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길가나 강가에서 쉽게 주울 수 있는 자연석으로 로고가 새겨지지 않는 부분은 일부러 가공하지 않고 원석의 속성을 유지시킨다. 이로써 거친 돌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돌가방과 명품이 갖는 아우라의 어색한 만남은 절묘하고도 성공적인 데페이지망을 실현한다. 작품 ‘바벨탑’은 세상을 지배하는 피라밋 시스템의 완벽한 상징물인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진열대 위에 명품으로 위장한 돌가방을 배치하고 있다. 진열대와 제품의 로고는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지만 정작 명품 돌가방은 어두운 실루엣으로 보여지고 높게 쌓아올린 진열대는 불안해 보인다. 양문기는 바벨탑의 비유를 통해 현대인의 삐뚤어진 욕망과 허위의식을 보여준다.

조윤성은 대중소비사회의 기호이자 현대인의 욕망의 상징인 상품의 로고들이 반복적인 복제와 혼합‧변용의 과정을 거친 후 새롭게 부여받는 의미와 반응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복제와 조합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통합체로서 떠오른 기호 속에서 상품의 로고들은 과거에 지녔었던 상징적인 가치와 아우라가 사라지고, 단지 조형적 요소로써 역할을 할 뿐이다. BMW, 맥도날드, 삼성, 코카콜라와 같이 친숙하고 영향이 있는 상품의 로고를 교묘히 변형시키고, 당당히 거리의 간판처럼 꾸며놓은 작품들은 우리가 얼마나 상품의 로고나 기호에 무의식적으로 대응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이는 시지각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예시이자, 명품의 진정한 질과 가치보다는 그 이미지가 주는 허상에 길들여져 버린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스타 메이킹

고근호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대중문화의 스타, 동화나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골라 그 인물의 특성을 캐리커쳐해서 스틸 단면의 조립식 로봇형태로 제작한다. 그는 ‘무거운 시대에 혼자만 가볍게 살아서 죄송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또한 어린아이와 같이 장난감을 수집하고 프라모델 로봇 조립이 취미인 그에게 스틸 단면들을 조립하는 일은 놀이와도 같이 즐거운 창작활동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고근호의 즐거운 상상에 의해 해체 조립 메이크업 과정을 거쳐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우리시대 영웅으로 새롭게 부활한다.

일명 ‘이중초상화’로 불리는 김동유의 그림은 ‘숨은그림 찾기’와 유사하다. 그것은 화면을 대하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초상화와 그것을 이루는 망점 안에 또 다른 초상화가 숨겨져 있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두 인물이 갖는 역학적 관계성 모두에 적용되는 비유이다. 그는 속세의 초월과 구원의 상징인 ‘부처’ 속에 세속적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마를린 먼로’의 수없이 다른 표정을 그려 넣는가 하면, 찰스왕세자와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대립관계에 놓였던 ‘다이애나’와 ‘엘리자베스 여왕’, 혁명의 동지였다 적이 된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등 갈등 관계였던 두 인물을 함께 그린다. 김동유의 회화는 먼 거리에 보았던 형상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른 사람으로 환원되어버리는 시지각적 체험을 통해 회화의 실상과 허구에 관한 의문을 제시한다. 또한 대립 혹은 공존관계에 있는 두 인물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사상(不二思想)’ 과도 같은 온갖 대립을 넘어서는 중도적 관점을 제공한다.

쌀을 붙여 초상화를 그리는 걸로 유명해진 이동재, 최근에는 주인공과 연관성을 갖는 다양한 오브제를 동원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쌀이나 콩, 알약, 크리스탈 등은 인물의 속성을 가장 잘 대별해주는 요소이자 그림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픽셀의 역할을 한다. 즉, 마를린 먼로나 제임스 딘과 같은 대중스타는 화려한 크리스탈로, 마오 쩌뚱은 중국 오성기의 노란별로, 알약을 붙인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알약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미스터 빈 - 콩,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 - 쌀, 가수 현미 - 현미쌀과 같이 인물의 이름에서 언어적 모티브를 착안해 내기도 한다. 새로운 재료로 그려진 유명인의 초상화가 넘쳐나고 있는 요즘, 이미지와 도상과의 유기적 관계를 설정해 낼 수 있는 재료의 사용과 예술가적 신뢰감을 느끼게 해주는 수공적 작업방식은 이동재가 차별성을 획득하게 하는 힘이다.

이승오는 지식과 정보의 전달매체로서 생명이 다한 폐책을 수집하여 이를 가공한 후 집적시키는 작업을 한다. 원래 태생이 자연(나무)에서 시작된 종이의 예술작품으로의 변신은 자연의 순환원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스스로를‘ 회화설치가’로 부르는 이승오의 작품은 벽면에 걸리는 평면회화이지만 폐책을 본드성분의 액체에 넣고 말리고 다시 자르고 쌓고 붙이는 ‘구축’ 혹은 ‘건축’이라 불릴 정도의 작업과정과 규모로 인해 오히려 조각이나 설치작품에 가깝다. 이번전시에서 이승오는 ‘Layer-워홀&마를린’과 ‘Layer-문암도’를 나란히 배치하여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과 차별성을 한눈에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작품 ‘워홀&마릴린’은 20세기의 대표적 문화아이콘인 두 인물을 한 화면에 담고 있는데, 이는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뿐만 아니라 6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집적시킨 종이물결은 그들이 갖는 아우라를 더욱 위력적으로 보여준다.




글을 마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 아래 미술의 영역은 “미술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철학의 단계까지 확장되고, 그 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을 만큼 창작의 의미가 자유로워진 게 사실이다. 차용과 복제 또한 창조적인 조형적 방법론으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그러나 명화나 기성품을 모방하되 작가의 창조성과 비판의식을 발휘해 새로운 시각으로 원작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 냈을 때만이 그것들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차용이나 복제 혹은 패러디는 단순한 변용이나 감각적인 아이디어의 대입이나 순간적인 유머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긴장감과 신선한 시각을 제시하는 힘을 갖춰야 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명화, 명품, 스타의 예측불허의 변신을 통해 그것들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작가에 의해 어떤 각색의 과정을 거쳤는지, 어떠한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했는지를 비교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기존 가치관의 전복을 통해 미술에 있어 새로운 창조의 개념과 에너지를 제공한 뒤샹의 ‘모나리자의 콧수염’ 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전시가 설득력이 부족한 차용과 패러디가 범람하는 최근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고 발전적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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