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나무 - 김상원 여덟 번째 개인전
김 복 영 (미술평론가·전 홍익대 교수)
소나무 화가 김상원이 여덟 번째의 소나무 전을 펼친다. 그의 주제는 언제나 한국의 소나무지만, 이 번 만은 특히 한국의 소나무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이고자 한다.
그의 근작 소나무는 마치 고대 백악기의 석회질의 암석파편 같은, 수많은 목질파편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하고도 짧은 스트로크들로 그려진다. 이렇게 그려진 소나무의 기둥은 주라기 공룡 류의 변성표피의 거대한 육질의 용트림 표정을 닮고 있다. 보통 서너 번 힘차게 회오리 하는 자태는 물론, 밑으로 뻗고 있는 나뭇가지의 자태 모두가 영락없이 그렇다.
어딜 보아도 그의 소나무는 한국의 소나무요 우리 고유의 소나무다. 한민족의 얼을 간직한 한국적 표상으로서의 소나무다. 외적의 침탈에도 굳건히 버티며 외상(外傷)을 견디어낸 인고의 자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필법은 한국인을 닮은 소나무의 기상을 필(筆)로 연장시키려는 데 있다. 그의 필법은 짧고 가는 세필들을 포개고 압축시켜 원생 류에서 볼 수 있는 각질층(角質層)을 연상시킨다. 몸체의 각질층이 가장 강인한 표정을 드러내지만 잎이나 하늘은 이와 대조적으로 세필에다 점멸하는 표정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는 섬세한 명암과 삼차원 모델링보다는 한국인의 유전자를 닮은 기세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필세의 안배가 그래서 중심을 이룬다.
그는 한국인의 섬세하고 강인한 기상과 몸매의 표정을 소나무에 이입하였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면서 신비하고 멋이 있는 강렬한 매력, 그리고 시공을 넘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회화’와 ‘머리와 논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전율하는 그림으로서 감흥과 진솔한 영혼을 담은 작품’을 이렇게 해서 한국의 소나무에 헌정 하고자 하였다.
그의 근작들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대자연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흥’을 붙잡아내려는 데 목적이 있다. 수많은 대 화가들이 여기에 도전해왔다는 걸 염두에 두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이 일구어낼 자연지도(自然之道)를 붙잡고자 한다.
그의 시도는 생의 목적이고 철학이기에 첨단시대의 자연과 대척 점에 서있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답고 또 축복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진솔할 뿐 아니라, 사(邪)가 아니어서 좋고 꾸미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그의 근성이기에 좋다.
감정이 살아있는 그림다운 그림을 …
화가 김 상 원
나의 어린 시절 꿈은 미술사에 길이 빛나는 대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수석졸업 한 후 중학시절부터 그림에 미쳐 학과공부를 싫어했고, 15세에 다방에서 유화 개인전을 스스로 가질 정도로 당돌했으며, 미술대회1등을 20회 가까이 수상할 만큼 치열한 끼를 펼쳤다. 대학시절부터 20여년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경향의 다양한 실험 작품을 전개하며, 미대 지망생 지도에 열을 올렸다. 미술전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과 경험을 통해 얻은 결심은 자연과의 교감으로 느끼는 나의 기쁨을 회화 본질성에 충실한 표현의 그림으로, 대중의 공감도와 예술성의 가치를 동시에 높여야 한다는 뜻을 세워 전업화가의 길에 당당히 나섰다.
머리와 논리가 지배하는 정신적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전율하는 즉, 감정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넘쳐나는 주체 할 수 없는 감흥에 취해, 나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그림으로 내 삶의 진솔한 영혼을 담으려 한다. 나의 이러한 몸짓과 달리 주변의 미술상황은 사뭇 편향되어 있는 흐름이다. 이 시대의 감성과 철학이 다양성으로 공존하는 미술로서 교육, 이해, 창작, 활동 되어야 할 터인데, 현대성이란 시류에 집착한 나머지 기본 의식마저 잃어버린 듯 한 현실이다. 조형원리와 회화성은 실종되고 다분히 장식화된 디자인, 만화, 공예, 사진 등의 방법적 세련미와 고급스러움만 중시되는 근시안의 상업화된 현상이 대세다.
인간의 감성이 내재된 예술성은 보이지 않고, 아이디어 위주의 기계기법과 물질적 가치로 상품화된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미술로 위장된 인테리어 제품으로 보여진다. 한 시대 새로움의 순간쾌감이나 얇은 남다름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러나는 진한 감동의 회화성에 의한 예술성이 더 중요하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면서 신비한 개성의 멋이 있고, 잘 그려진 독특한 회화적 힘의 강렬한 매력이 있어야 시공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회화적 품격의 감각으로 펼쳐지는 그림 속에는, 화가의 정신과 의지가 눈과 손을 통하여 가슴속 뜨거운 숨결까지 생생하게 조형화 된다. 지난 수백 년간의 위대한 화가의 훌륭한 작품을 존경하고 사랑하였기에 오늘 나도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크고 좋은 진정한 그림을 남기기 위해 그 수량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매번의 화폭 앞에서 나와의 진검승부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새로운 기분으로 스스로 젖어 즐길 수 있는 그림을 하면서, 회화의 자존심으로 남아 훗날의 큰 화가에게, 수백 년의 존경과 사랑이 미술에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그림다운 명작을 전하고 싶은 것이 나의 현재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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