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0-09-15 ~ 2010-09-27
조송 , 김성진 , 서동욱 , 이유진 , 정치영, 박지혜 , 신수혁, 정재호 , 신지현 ,김성남
02-734-1333
서문:
<Paintings; 지금, 회화로 표현되는 것들>
현대예술은 바로 이전 예술에서 행해진 구분들에 비해 경계짓기가 어렵다. 아직 진행중이라서 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경계짓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모더니즘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컨템포러리’ 등, 현대예술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규정이긴 하더라도 그 규정자체가 이미 경계가 없는 규정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예술사가 교육적인 측면, 재현적인 측면, 또는 물질적인 측면들 중 한가지 측면으로 환원시키면서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시기를 구분했었다면, 현대예술이라고 명하고 싶은 그 이후의 예술은 애초에 그러한 구분 자체를 부정하는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간간히 현대예술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갖고서 장르의 우월성을 논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회화가 현대예술의 가치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장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현 미술계의 언저리에서나 간간히 확인될 터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두 가지 반문은 중요한 듯 하다. 하나는, 무엇이 현대예술이기에 회화가 부족하다는 것인가, 또 하나는, 회화가 무엇이기에 현대예술에서 부족하다고 하는가 이다. <Paintings; 지금, 회화로 표현되는 것들>전은 두 번째 반문에서 시작한다.
회화는 예술의 논의에서 볼 때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게다가, 회화의 근본인 그리기는 예술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표정, 몸짓, 그리고 언어와 더불어 가장 근원적인 표현이다. 회화는 숱한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하는 도덕적인 윤리나 이상적인 재현의 기준들을 근엄하게 버티고 충실히 이행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표현의 자율성과 가치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회화의 고유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를 만났다. 물론, 예술을 형식으로 환원시키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런 얘기가 탐탁지 않을지 모른다. 이유는 다소 과장되긴 하지만, 그들은 회화를 단지 화폭과 물감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화폭과 물감이 엄청난 역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회화가 지닌 고유한 역설이란, 평면이면서 깊이를 지니고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운동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깊이와 운동을 통해서 색과 선은 형상을 드러낸다. 현대가 경계짓기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렇듯 회화는 경계를 통해 경계를 없애는 매우 현실적인 표현의 영역이다. 그래서 현대예술의 중심부에서는 여전히 회화에 그토록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이 이러한데, 현대예술이 무엇이길래 회화를 이전의 예술이라 할 것인가.
화가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현재에도 있으며,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화가가 있는 한 회화 또한 존재할 것이다. 반대로, 회화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회화가 이미 있었다는 표현은 다소 생소할 지 모른다. 그래서, 화가들이 자주 고백하는, 그것이 그리고 싶어져서 그렸다 라거나, 그림이 나를 그렇게 그리게 한다는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그리는 주체인 화가의 수동성이 짙게 깔려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물이 화가를 그려달라고 직접적으로 민 것도 아니고, 화폭과 물감이 화가의 손과 붓을 직접 끌어 댕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림을 그린다는 그 사태에는 사물과 화가, 그리고 회화, 화폭과 물감으로 이루어진 그 회화를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심오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회화의 문제이지 논의상 규정하거나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을 볼 때 우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그 사태를 화폭에 잘 유지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 다음 그림에서 발생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마 이러한 두 단계는 동시에 발생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화가는 자신을 그리게 한 동기에 충실해야 하고, 자신의 표현에 솔직해야 한다. 마치, 꽃다발을 든 청년의 모습과 같은.
전시는 스타일(붓질)과 모티브(사물, 혹은 내용)에서 다양한 10명의 화가들로 이루어졌다. 다들 각자의 모티브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유일한 스타일을 발휘할 줄 아는 화가들이다. 그들 회화에 표현되는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단지 그려진 사물만이 아니다. 그건 또한 작가의 몸짓만도 아니다. 어떤 상황을 고발하는 순간적인 장면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회화를 통해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실재하는 것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 움직임의 양상들과 삶의 방식들일 것이다. 무엇을 감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그림을 대면하는 현재의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들에게 꽤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기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박순영(객원 큐레이터,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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