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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의 미학과 관조

 

글ㅣ최병식(경희대 교수) 미술비평


종이 그 자체를 작업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서양인들에게 한국의 한지는 생명력을 갖는 자연의 선물로 느껴졌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여러 형태의 찬사가 이어졌다. 

 

이번 영담스님의 ‘닥종이-그 미학과 관조’에서는 30여 년간 몰입해온 닥종이의 숨결과 조형언어를 만나게 된다. 스님이 한지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의사였던 부친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유년시절부터 약봉지와 첩약을 싸는 종이가 흔한 집안이었기에 닥종이는 일찍부터 스님의 놀잇감이었다. 이러한 닥종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 친숙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출가 후 인연이 시작된다. 

  

“수행자로서 무엇인가 일을 하면서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때 인연이 된 것이 닥종이이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전통종이의 질의 맥은 스님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온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이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 어릴 적 한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도 있었지만 전통한지의 맥락이 끊어져 간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고민하다가 전통한지를 직접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과 2, 3년 후 단순히 장인적인 작업으로부터 창작에 대한 본능이 표출되기 시작하였고 여러 형태의 실험을 거쳐 줄곧 지금까지 불도를 닦는 일과 종이작업을 함께 해오는 인연을 맺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제작된 작품들은 여러 특징이 있지만 첫째는 닥을 고르는 순간에서부터 종이를 뜨고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 일체의 단계를 작가 자신이 진행했다는 점이다. 스님의 대부분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이와 같은 과정은 작품의 제작과 이원화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연계선 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미 닥을 만나는 순간에서부터 작품은 시작된다. 

두 번째는 종이 그 자체의 물성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인위적인 행위를 배제하려는 점이다. 

“미니멀이요? 글쎄 어떠한 전문적인 의미를 가미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그렇게 부르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스님의 작업은 형상이 절제되어 있고, 그 대부분이 닥종이 작업으로 일관된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절제라기보다는 그냥 비워져 있다. 과거의 대부분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점은 참선수행을 본업으로 하는 승려로서 갖는 자연적인 탈형상의 의미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한편에서는 한지의 물성 그 자체에 대한 절대 순수성을 강조하려는 잠재적인 의도가 배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미니멀리즘을 논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이러한 명명은 미술사적 분류, 그 자체 이외에 큰 의미는 없다. 

 

이번 작업의 특징은 닥나무의 껍질섬유만이 아니라 잎과 꽃, 줄기, 뿌리까지 모든 부위를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스님은 그간 귀리, 볏짚, 무궁화, 머우, 뽕, 옥수수, 팥 껍질 등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시도해 보았으나 닥나무만한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섬유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천연의 닥섬유는 천 년 이상의 보존력과 좋은 에너지를 품고 있어서 작품 재료로서 이상적이라고 한다. 닥섬유가 다양한 성격의 복수섬유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이를 만들어 내는 으뜸 재료가 될 수 있었고, 다른 재료보다도 묘한 신비감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스님의 작품 속에서는 종이의 질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섬유로 추상적 곡선을 유희하였으며, 희열과 무심(無心)으로부터 이어지는 관조의 경지에서 여러 유형의 춤을 추는 형상들이 곁들여져 있다. 

 

“굳이 말한다면 제가 작업을 하면서 닥나무와 춤을 추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저 작업을 하는 것이 즐겁고 닥섬유와 무수한 대화를 나누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거든요.”

 

한편 그의 상당수 작업들, 특히 몇 점의 작업에서는 아무런 인위가 없는 종이 그 자체만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 현상과 비교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는 닥작업과 함께 쪽물과 감물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감은 그가 사는 지역 청도의 특산물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유난히 발색이 잘되는 청도 감물의 활용은 자연의 색, 자연의 물성 그 자체로부터 감응되는 언어와 무형의 형상들이 갖는 경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형상의 일탈, 텅 비워진 공간에서 만나는 종이의 물성을 대하면서 지금까지 정형화된 조형의식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스님의 작업은 오히려 제삼자의 심상을 통해 화면을 해석하고 그려나가는 그 관류의 공간을 기다리고 있다. 불교용어에서 ‘본지풍광(本地風光)’ 즉 본래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의미를 깊이 새겼다는 이러한 작업들은 관조가 있고 여전히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은유 되어 있다. 

 

종이에서 빛과 바람과 달빛을 느낀다는 영담스님의 ‘종이 미학’은 동서 미술사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생경하고 독자적이다. 그러나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시작하여 경상북도 청도의 보갑사 대웅전 한 켠 작업실로 이어지는 30년 여정은 그만이 갖는 ‘윤회의 언어’가 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실에는 이 시대 적지 않은 곳에서 패러디, 간접모방과 몽타주가 만연하는 현상과는 달리 청량한 한 줄기 바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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