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숙
시원
한국미술의 현대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아방가르드운동--4인 전, 현대미술가협회 전, 악뚜엘뿐 아니라 표현적 추상 혹은 엥포르멜, 단색화운동--을 주도하면서, 그리고 미술교육의 양대 산맥중 하나인 홍대에서 근 40년간 재직하면서 그 특유의 마초 같은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속칭 박 서보 사단을 이끌었던 화가 박 서보는 올해로 8순이 되었다. 간혹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위압적이며 독단적인 성격과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그를 간과하기 어려운, 오히려 거대한 산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엄격한 자기훈련과 완벽성에 다가가려는 끊임없는 노력, 치밀하고 성실한 작업의식, 이를 뒷받침하는 엄청난 작업량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화단에서 박서보란 이름이 각인된 것은 일찍이 1957년에 고답적인 구상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국전에 도전해 벌인 4인 전, 이어진 현대미술가협회 (한국현대회화 전), 악뚜엘에서 전위운동을 이끌며 2차 대전 중과 직후에 서양현대미술에 유행했던 표현적 추상, 혹은 이른바 엥포르멜을 연상시키는 1950년대 말과 60년대 중반까지의 원형질(Primordialis)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이후 몇 년간 유전 질/허상 시리즈 (Hereditarius/ Illusion Series의 작업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까지)을 시도한다. 원형질이 폭발적인 감정을 잔인한 행위와 제스처를 통해 어떤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면 새로운 유전 질은 형상성과 색채를 재도입하면서 그러나 어떤 정형화된 화면과 구조를 다시 찾고자하는 시도로 보인다. 이제 감정은 어느 정도 통제되어 객관적인 화면구성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단계의 실험 모색을 드러내 보인다. 분명한 윤곽선으로 처리된 그러나 개략적인 형상으로 속이 빈 네가티브 인물형상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하 적 색 띠 단위들로 구성된 추상화면들이 공존하며 이때의 화면에서 바탕과 형상은 확실히 구분되고 있다.
박서보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완전히 새로운 경향으로 전환을 시도한다. 이제까지 서구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경쟁적으로 수용해왔던 일에 식상했거나 아니면 현대미술 또한 한국인의 사고방식 혹은 미학적 감성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전통에서 정체성의 개념 내지는 로컬 칼라를 찾고자 하는 본연적인 깨달음에서 비롯된 듯 이제 ‘그리고 구성하는’ 방법을 완전히 버리고 대신 ‘쓰고 지우는’ 행위에 몰입한다. 여기서 수반되고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화면을 마주보고 서서 ‘그리는’ 이젤에서 서예에서그러하듯 앉아서(?) 바닥에 펼쳐놓고 ‘쓰는’ 방식으로의 전환, 이러한 전환은 스케일의 확장과 화가의 신체의 몰입을 더욱 증강시킨다. ‘묘법 Ecriture’이라고 명명된 쓰기 방식의 과정은 처음에는 초벌칠을 두텁게 바르고 다음 그 위에 연필의 필선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그리고 균일한 강도와 밀도로서 규칙적이며 일정한 방향으로 그어나가는데 이때의 안료를 바르는 (칠하는 painting) 행위와 연필로 쓰는 행위의 겹침으로 이루어진 표면은 전통적인 서화동원 書畵同原--글과 그림은 같은 근원이라는 이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묘법의 전개
묘법은 여러 단계를 걸쳐 전개되는데 우선 처음에는 안료와 연필로, 다음에는 한지-닥지가 만들어가는 과정을 작업방식으로 택한 단계로 대별할 수 있다. 첫 단계의 연작에서 그는 우선 화폭을 틀에 팽팽하게 당겨 맨 다음, 밝은 회색이나 연한 크림색 계통의 색깔로 바탕에 초벌칠을 하고 비슷한 회색으로 발라 덮은 후 바탕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일정한 방향과 간격을 두며 규칙적인 강약을 주며 반복해 화면전체를 긁어 놓은 다음, 다시 그 위에 바탕과 비슷한 회색/크림색으로 덮어버린 다음 또 다시 연필로 긁어내는 행위를 다시 반복 한다. 바르기를 하는 붓이나 쓰기/긋기를 하는 연필의 동세는 화폭의 탄력성과 손끝에 집중된 감각으로 인해 적이 흥분되기 마련이며 이 발랐다가 긁었다 하는 이 기계적인 반복의 행위는 리듬을 타면서 정점에 도달하게 되고 이때에 자기도 모르게 손동작을 멈추게 되고 작품은 이렇게 정지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반복의 구조를 드러낸다. 그렇게 해서 박서보의 ‘묘법’은 이우환이 말했듯이 어떤 작품이던 간에 밑도 끝도 없으며 완성 혹은 미완성도 없이 어떤 것들은 연필의 필세에서 또 다른 어떤 것들은 옅은 회색으로 덮힌 상태에서 정지해 있으면서도 변함없이 그리고 끝없이 반복의 표정을 짓고 있게 마련이다. 이우환은 아울러 이때에 연필은 실재를 묘사하거나 화면을 구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바탕을 싹싹 긁어서 일일이 뭉개버리는 갈고리와 같이 파괴의 도구에 다름이 없다’고 주장한다.
작고한 평론가 이일은 박서보의 ‘묘법’연작은 그린다는 행위를 지운다는 행위로 역전시킴으로서 화면과 행위, 지지대/표면사이의 이원적인 구조를 제거하고 한국모더니즘미술의 ‘토착화’를 실현했다고 평가한다. 부연해 말하자면 박서보의 ‘묘법’은 물감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연필로 선을 그어감으로서 서양회화의 칠하는 paint 행위가 아닌 동양의 긋는 畵 drawing 의 경지로 선회한 것이며 이것은 ‘무 목적성’과 ‘무작위성’을 지향하는 동양적 자연주의 사상으로의 회귀에 의해 얻어진 완전한 합일의 세계였다고 해석한다.외견상 박서보의 초기 ‘묘법’연작은 선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 의 미니멀 연필작업, 혹은 사이 트옴블리 Cy Twombly의 자동주의 automatism 기법에 근간한 듯한 낙서그림들, 특히 그의 이른바 팔머식 드로잉 Palmer Method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들과 유사하다. 물질에 접근하는 행위방식, 바르고, 지우고 또 바르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행위와 단색조의 성향은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인 라이먼 Robert Ryman 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이이들의 행위와 화법, 모노크롬 색조, 초월적 세계에 대한 갈망의 박서보의 묘법과의 연관성은 부정할 수 없으며 또 그 때문에 박서보와 그의 동 연배들이 이끌었던 단색화 경향을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고 재단해 왔으나 만들어 가기 보다는 지워가며 그 지우는 행위의 궤적을 일기처럼 써가며 자기를 버리고 자연을 닮아가려는 방식은 박서보 특유의 ‘토착’정신의 발현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닥종이를 이용한 묘법
박서보의 묘법에 하나의 중요한 전환이 1980년대에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서 떼어낼 수 없는 한지 혹은 닥종이의 발견이다. 한지는 한옥에서 상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한지는 견고하고 화학적으로 중성적이며 유기적인 재료로서 다른 종이와 달리 세월이 흐름과 빛의 노출에 따라 변색되거나 별로 닳지도 않으며 대단한 신축성이 있다. 그래서 한지는 벽지나 온돌바닥에도 적합할 뿐 아니라 추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방한용으로 햇빛과 소음을 투과시키면서 투명성을 보장하여 미닫이문에도 그리고 창호지로도 쓰인다. 다시 말해 한지는 바깥세상과 실내를 연결해주는 민감한 막이자 일종의 제 2의 피부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지, 혹은 닥종이는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공명 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료다. 20세기초의 서양미술사에서 일상의 오브제로 이용되곤 했던 신문지, 벽지, 색종이 등의 꼴라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의 닥종이의 특수성과 그것이 가지는 토착적인 상징성과 자연친화적 잠재력에서 확장의 가능성을 포착한 박서보와 그의 단색조 경향의 동료들은 본격적으로 이를 작업과정에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박서보의 ‘닥종이’작업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먼저 그는 세 겹의 닥종이를 화폭에 얹은 다음 제소를 발라 굳히고 그다음 아크릴 물감을 따뜻하게 데우거나 차게 해 그 위에 덮는다. 이렇게 하면 닥종이들은 아크릴 질료에 푹 적셔져 껄쭉하게 되며 그런 다음 그 위에 또 먹을 이미 채색된 바탕에 붓는다. 그런 다음 손가락, 손톱, 혹은 드라이버로 이 질료를 밀거나 흔적을 내는데 이때의 행위의 흔적은 단색화 그림들의 연필로 행해진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간격과 크기로 반복함으로서 나타나며 행위가 멈출 때마다 질료는 뭉쳐져 표면에 요철효과를 내게 한다. 연필 묘법 연작과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바로 이러한 놀라운 표면 텍스처의 발현이며 종이의 크기에 따라 바탕이 덜 드러나거나 혹은 더 드러나기도 하는데 후자의 경우에 마치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숨의 효과를 표면에 창출한다. 아마도 이러한 텍스처의 표정에서 연유한 것 같은 또 다른 특징은 지그재그 패턴의 등장이다. 이전의 연필 그림들이 짤막하나 날카로운 사선의 선영을 따르거나 물결치는 수직선의 반복을 적용하든지간에 균일하고 일정한 방향을 고수한 반면, 이제 규칙적으로 행위의 방향을 바꾸어 마름모꼴, 혹은 지그재그 패턴을 형성케 하고 있다.
1990년도 중반 경에 박서보는 그의 ‘닥종이’작업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는데 이 변화는 질료에 가한 손의 흔적에 의해 생성되는 텍스처 효과를 덜어내어 표현의 요소를 더욱 희석시켜감으로서 구조적 밀도를 부가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이제 종이질료에 가하는 행위는 스케일이 작은 손가락, 혹은 드라이버가 아니라막대기, 대자 혹은 손--이때의 손은 팔의 힘이 가해진--을 이용해 질료를 일정한 간격을 갖고 밀어냄으로서 길고 도톰한 선들을 얻어낸다. 선들이 반복되고 축적되어가는 동안 질료의 층에 따라 어떤 선들은 뭉개지거나 지워지게 된다. 여기서 질료를 밀어서 올려 진 선들과 비워진/지워진 바탕사이에 요철감이 형성되며 화폭에 대한 전체인상은 정면에서 보면 수직 띠 선들의 평면구조로 보이나 측면에서 약간 비껴서 보면 어느 일본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논의 이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이때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마침표를 찍듯이 혹은 숨을 고르듯이 물감이 뭉쳐진 끝을 다듬지 않고 그냥 남겨두기도 하고 때로는 간헐적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랑을 없애 바탕의 평평한 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여 구성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아니면 바탕의 여백을 통해 종이의 질료가 질료임을 분명하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일까.
돌이켜 보면 그의 연필 묘법연작에서도 종종 우리는 이러한 구성의 기미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구성’은 사각형의 화폭의 틀, 격자형, 혹은 여닫이 창문을 암시하는 대부분이 구축적, 건축적 구조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바탕의 질료를 긁어 지우거나 질료를 쌓아 올리고 밀어내는 작가의 물리적 다분히 무작위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에 대한 반명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의 변화는 색채체계에서 두드러진다. 이전의 가라앉고 중성적인 특성이 강했던 모노크롬에서 벗어나 훨씬 밝고 다채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한강변 아파트에서 인상 깊게 목격했던 서울의 스카이라인, 특히 야경의 조명아래 빛나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서로 대비되는 색조를 바탕과 도톰하게 올린 벽체 선에 적용함으로서 구조에서 적용한 구성의 묘가 색채에도 연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이 최신작들은 한 때 옵아트의 퀸이라 불리었던 브리지트 라일리 Bridget Riley의 최근작을 연상케 하며 나름대로의 장식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색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리켜 혹자는 ‘분칠’이 가해졌다고 비판의 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마치 이러한 비판을 예상이나 했던 듯 그의 에스키스-드로잉 Esquisse-Drawing 의 중성적인 톤은 그의 화려한 색채의 변신에 일종의 보완적인역할을 하고 있다.
에스키스-드로잉
박서보는 초기부터 상당수의 에스키스 Esquisse (영어로 말하자면 스케치 Sketch) 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그는 에스키스-드로잉이라 명명한 일련의 독립된 그림들을 선보였는데, 여기서 에스키스는 완성된 그림을 위한 시초의 개념과 생각들을 옮긴 일종의 초벌 작업을 뜻하며, 드로잉은 말 그대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도 간주할 수 있는 에스키스에 비해 비교적 완성된 단계를 일컫는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에스키스-드로잉은 초기의 발상 단계에서 완성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작업을 의미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그의 작업은 먼저 초기의 발상을 메모한 여러 장의 초벌들을 다소 큰 지면, 방안지모양으로 촘촘히 선이 구획된 지면으로 옮긴다. 다음은 석판으로 인쇄된 방안지위에 본격적인 ‘드로잉’작업이 시도된다. 이때에 인쇄된 선구조위에 세로나 가로 혹은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선 획을 가미하기도 하고 또는 선의 가장자리, 혹은 일정한 구획을 화이트로 지우는가 하면, 연필 선으로 군데군데에 음영을 가하여 깊이와 넓이를 조절하면서 단순히 기계적인 인쇄지면을 그림/드로잉의 단계로 변환해간다. 이때 정확한 선구조의 직조와 그 위에 가해진 일정한 눈금으로서의 숫자표기는 건축가의 도면같은 인상을 준다. 평론가 오광수가 지적했듯이 에스키스가 그려나가는 혹은 안료를 덮어 바르는 단계라면 드로잉의 단계는 거꾸로 지워나가는 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해 에스키스가 본연의 이성이 지배하는 어떤 규칙적이고 엄격한 질서의 표상이라면 드로잉은 이 표상을 점차 지워가며 해방시켜 열린 구조로 치환시켜가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치밀한 계획과 엄격한 훈련 거기에 섬세하고 미려한 감수성을 곁들인 에스키스-드로잉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박서보 작품의 진수를 드러낸 작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