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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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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풍경의 존재

채 종 기

 

 고영종의 이번 전시회는 첫 개인전이다. 그의 나이에 비추어 본다면 결코 이른 전시회가 아니다. 그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는 어떤 일이든지 쉽게 벌릴 수 있다. 실수를 해도 나이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의식하는 시간대에 접어들면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게 쉽지 않다. 자기가 지나온 시간대의 책임을 모두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쉬운 전시회가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전시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 우선 축하할 일이다. 

  

 그의 그림에서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회색이 많고 공간이 많다는 점이다. 흑백은 아니지만 채도가 현저히 떨어져있어 작품들의 느낌이 상당히 진지하게 보인다. 이런 점은 그림의 주인공들이 공간 속에 홀로 떨어져 외롭게 있는 구도와도 꽤나 잘 어울려 보인다. 고영종의 그림에서 공간은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이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고 주인공과 대등하게 또는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존재감을 갖고 보는 사람에게 다가서고 있다. 아마 이런 특징들은 고영종의 그림을 자연스럽게 한국화와 비교하게 한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그림 중 일부는 아크릴로 그려진 한국화 같다고 하니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작품들이 어둡게 보일 정도로 회색으로 물들어 있지만, 주제들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며, 사실적이고 정확한 묘사로 인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할머니, 꾸불거리며 뻗어있는 나뭇가지, 진지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바위들, 동물들의 모습은 길을 가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들이다. 작가는 그것들의 모습을 따로 떼어내어, 우리에게 그것들만의 존재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심각한 현실 비판적인 내용도 아니다. 단순히 서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예쁘게 그려지거나 세련된 것도 아니다. 그는 작품에서는 자연의 미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갖는 본질적인 현상을 회화적으로 풀어내고자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존재감을 극대화 하고자 색상을 절제하고 배경을 과감히 정리함으로써 오히려 긴장되는 공간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풍경과 꽃그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생명과 시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표현된 작품들은 생태계 현상의 멈춰진 찰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작품의 면면에서 우리는 계절의 순환을 느낄 수 있고 결실을 위해 인고를 이겨냈던 상흔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주로 표현하는 꽃, 바위, 가옥, 인물들은 그가 시각적으로 보는 객관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그 자체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개체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소재와 표현 방식에 구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래를 점치기 힘들듯이 그는 자신도 향후에 어떠한 작품이 생산될지 모르겠다는 고백을 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생태계의 원리처럼 순리대로 작품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방편을 작품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부화되는 알처럼 첫 번째 그의 개인전이 고통과 희열을 동반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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