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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013년 여름은 시원했다 - 서울의 미술관으로

김태권

2013년 여름은 시원했다

 

김태권 (대전 동산고등학교 교사)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서울아트가이드 6,7,8월호 표지에 실린 서울시립미술관의 고갱전이 문득 떠올랐다. 메리트도 대단했다. 고갱 3대 걸작 세계 최초 한자리에!!! 그렇다면 미술관 탐방을 해볼까나? 고갱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것 같아 뒤적이니 종로구 부암동은 진기한 보물이 가득했다. 우선 서울미술관에는 ‘박찬호의 야구 인생과 미술의 만남’은 물론 2013년 상설전시 ‘우보천리(牛步千里)’가 있었구나. 이름만으로도 감히 숨넘어갈 작가들의 진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가까이엔 환기미술관이 나름 기다리고 있으며, 덤으로 개관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윤동주문학관도 있다. 재미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한 환기미술관과 이소진이 설계한 윤동주문학관은 얼마 전 한국최고의 건축물 20에 오른 명작들이 아닌가. 계획만으로는 일정이 팍팍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미술과 건축물을 동시에 즐기겠다니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1박2일이다. 촌티 벗겨볼 심사인지 아내도 대찬성이다. 무더운 땡볕 아래 산이며 들이며 물이며 찾아갈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서울 에어컨 바람이 얼마나 빵빵한지 맛보기로 작정하고는 여유 있게 무궁화호를 끊었고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아카시아 호텔을 예약하였다.

 

 8월3일 토요일 오전, 먼저 찾은 곳은 당연 고갱이 열리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들어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이다. 19세기 폴 고갱을 환상으로 몰아간 3대 걸작으로 불린다는 '황색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설교 후의 환상' 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고갱예술의 특징을 양분하는 브르타뉴와 타이티에서 그려낸 다른 그림은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 많아 고갱을 이해하는 더 좋은 기회가 되기에 충분했다. ‘세 명의 타이티인’, ‘타이티의 여인들’, '파아 이헤이헤 타히티 목가', ‘기원’, ‘설교 후의 환상’도 3대 걸작에 비해 달라 보이는 점은 없었다. 이미 원근법에 익숙해져 있고, 역원근법 정도를 신선하게 여겨오던 터였다.

그런데 고갱의 그림은 200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도 익숙하지 않은 평평하고도 강렬하고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현대성(Modernity)으로 명명할 수밖에 없는 상징주의적 색채에 머리가 멍멍해졌다. 인상주의의 종말을 고하며 후기인상주의, 상징주의, 종합주의로 귀결 지은 해설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하겠다는 인상주의 화풍과 이론은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는 방법이었다. 고갱 생각에 그러한 인상주의는 오히려 대상을 해체하는 위험성이 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결과는 강한 윤곽선으로 두른 넓은 면으로 종합한 것이었다. 주제의 느낌이나 기본 개념을 색면과 선이라는 형식으로 종합하여 주관과 객관을 일체화시키는 평면예술이다. 이러한 종합주의는 나비파와 야수파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드럽고 세밀한 낙원이 아니라 투박하고 강렬한 상징주의적 색채라 더욱 아름다운 낙원이다.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의 작가인 브람빌라의 ‘진화’, 뉴섬의 ‘그늘진 구성’, 양푸동의 ‘다시 갇히다’, 노재운의 ‘총알을 물어라’, 문재인의원의 칭찬이 있었던 임영선의 ‘만다라’와 같은 현대 작품에서도 고갱과 같은 혁신성을 감상할 수 있다. 아래층에선 1세대 전위예술가로 평가받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김구림전이 열리고 있다. 행위예술 쪽은 정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봐도 흥미로울 텐데 마침 퍼포먼스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낸시랭과는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장르일까.

 


 

▲ 서울시립미술관

 

홍대역 8번 출구로 나와 한국미술정보센터로 향했다. 2001년에 설립한 김달진미술연구소가 2010년에 개관한 대한민국 미술 정보의 요람이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서울아트가이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미술 정보가 전국에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45년간 모아온 5만6천여 점의 미술자료가 대한민국미술사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는 연구소는 박물관까지 등록하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은 경력과 중학교 도덕교과서까지 실렸으니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이 엄청난 자료가 김달진 소장의 머릿속에 기억되기도 하여 미술계에선 예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으로 유명한 그였다. 이 박물관이 운영자금 난항을 겪으면서 전시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한국미술 아카이브를 꿈꾸는 김달진 소장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63빌딩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이참에 63스카이아트도 가 보지 뭐. 김달진 소장님의 안내로 평생 처음 63시티로 향했다. 60층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미술관이라고 자랑하는 63스카이아트미술관이 있다. ‘FASHION WITH PATTERN’ 이 열리고 있는데 박찬호의 야구와 미술을 접목시켰듯이 패션을 미술과 접목시키고 있다.

 처음 접하는 분야이지만 ‘꽃무늬 패턴-생명과 시작’에 이어 ‘줄무늬 패턴-연결’ 은 들어오질 않고, 해골을 모티브로 작업하는 데미안 허스트와 권정호, 김두진, 최정우의 ‘해골무늬 패턴-죽음 또 다른 시작’ 이 눈에 들어온다.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용산, 마포, 종로의 전망은 빌딩과 개미만한 자동차와 모기소리 같은 인간 군상으로 모자이크된 거대한 공룡이다. 서울 시민의 반은 63시티로 휴가를 나온 것처럼 그 공룡의 뱃속마냥 뜨겁고 복잡했다. 공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밤이면 더욱 강렬한 불길을 토해내며 황홀한 야경을 그려내겠지만 종아리가 뻐근하고 뱃속이 출출하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생각만 가득하다. 내일 관람할 서울미술 자하문 근처의 서울미술관 지리도 익힐 겸 그 유명하다는 하림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행의 즐거움과 평화로움과 안락함이 먹는 것에서 온다는 것은 원초적 행복이다.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니 뱃속이 놀라고 진정이 안 되어 청량리 실개천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를 을지로 5가로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동하는 서울의 밤을 만나보고 싶었다. 시장은 불이 꺼져 어두웠지만 맑고 깨끗한 물소리가 쫄쫄거리며 따라왔다. 젊은이들이 쌍쌍이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그래서인지 평화시장 네온사인이 예쁘게 보인다.

 

  

▲  63스카이아트미술관(왼쪽) :권정호 작품 /  청계천


 

8월4일 자하문으로 더 알려진 창의문을 지난 부암동 언덕배기에는 서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 왼쪽은 면세점인데 이른 아침부터 중국 관광객의 쇼핑이 한국 가이드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양손에 두툼한 쇼핑백이 두세 개씩 들려 있고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뜨거운 햇살을 조각내고 있었다. 미술관에 와서 가장 신나는 일은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말이다. 문화재든 미술품이든 작품을 보호한다거나 저작권 침해 외에도 필요 이상의 관습적 촬영 불가는 고려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일정 가운데 딱 한 군데, 박찬호의 The Hero-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는 촬영해도 좋구요(박찬호가 우리의 영웅이긴 한 모양이다.), 2층 우보천리는 촬영이 안 되고요, 3층 거쳐서 나가면 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석파정도 촬영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박찬호 방에서 눈에 띄는 장면 중의 하나는 엔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는 박찬호와 박세리 작품이 있고, 그가 던지는 공의 궤적을 만든 설치작품이 조명을 받아 신비하게 다가온다. 야구 인생과 미술과의 만남을 시도한 자체가 유쾌하고 흥미로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 서울미술관

                                                           


 2층에 마련된 상설전에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다, 언뜻 이중섭의 황소를 떠올렸지만 고단했던 근대 한국 미술사를 우직하게 한걸음 한 걸음 내딛어 온 국내 그 분야 최고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조명한 이름이다. 퇴색하여 어둡지만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최초의 여성화가답게 대범해 보이는 나혜석의 ‘풍경’,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떠올리게 하는 도상봉의 ‘비진도의 아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이마동의 ‘메밀꽃 필 무렵’, 최영림, 이대원, 꽃보다 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임직순의 ‘화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 이 여름도 시원한 김상유의 ‘대산루’는 안동 병산서원을 생각나게 한다. 납작납작이란 말이 하도 우스워 시를 읽으면서 킥킥댔던 김혜순의 ‘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를 낳게 한 ‘세 여인’의 작가 박수근의 ‘우물가’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서민적 삶을 따뜻하고 평화롭고 토속적이라 친근하다. 시대적 아픔을 안고 살아야만 했던 젊은 작가의 정의로움을 우직한 소를 통해서 전달하려 했던 이중섭의 ‘황소’를 미술책이 아닌 진품으로 볼 수 있다니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젊음의 상징인 희망과 절망, 욕망과 분노, 고독과 그리움, 힘과 의지, 해학과 풍자를 보면서 나는 잠시 피가 끓어오른다. 마치 윤동주의 ‘자화상’에서처럼 시대의 아픔이 파고들었다면 지나쳤다고 할까 싶은..... 잠시나마 동화적 세계 속에서 파라다이스한 꿈을 꾸게 해주는 장욱진의 ‘까치와 아낙네’도 좋다. 환기미술관을 다음 목적지로 계획하고 있는데 보이는 김환기의 ‘겨울밤’은 무더위를 한 방에 식혀주는 겨울의 차가운 푸른 하늘과 차디찬 반달의 서늘한 기운을 그리고 있다, 이는 서정주의 ‘동천’처럼 날카롭고 어여쁘다. 하늘에다 심어놓은 우리 님의 고운 눈썹 같은.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천자문 위의 물방울은 황금색으로 파고든다. 비디오아트로 머리에 박힌 백남준의 작품이 장식장롱 위에 펼쳐진 것은 또 다른 테크놀로지와 인간정신과의 상호작용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이 팍 왔다. 아, 천경자! 그녀의 상상할 수 없는 풍부한 서정과 색채와 구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꽃밭에 누운 남자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는 그녀가 꿈꾸는 행복의 절정일 것이다. 몇 년 전이던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접한 천경자의 꽃과 뱀과 여인이 주던 황홀함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여 꿈과 환상과 동경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싶다. 3층으로 올라가자 인왕산 뒤를 바라보는 석파정이 눈 안에 들어온다. 석파정은 대원군 이하응의 호인데 호를 딴 이유는 그가 별서(농막)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성곽의 북서쪽 밖에 자리 잡고 있어서 조선 말기의 건축술이 뺴어난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6호이다.

 

 이제 1박2일의 종지부를 찍어야할 때가 왔다. 환기미술관은 참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마침 환기미술관의 건전한 자립의지 구현을 목적으로 한 ‘김환기 탄생 100주년 김환기를 기리다’가 열리고 있다. 윤동주문학관도 환기미술관 못지않게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입구 왼쪽에 있는 별관에 아트샵이 있다. 아트샵에 앉아서 내다보는 오후 햇살이 참 따뜻한 느낌이다. 아트샵 이층은 ‘나는 새 두 마리’가 반기는데 안쪽에는 ‘항아리’ 같은 눈에 익은 판화작품을 정찰제로 판매 전시하고 있다. 본관은 출입문 기준으로 양쪽 계단이 있고 조명은 자연 채광이라서 뜨거운 여름 햇살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김환기의 모래알 작품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리즈 등 네 작품이 걸려 있고, 구자승, 김창렬, 이재호, 송영방, 존 배, 황인기 등 수준 있는 추상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88올림픽선수촌을 설계한 우규승의 작품이다.

 

부암동 언덕에 일 년 전 윤동주문학관을 개관하였다. 윤동주는 옌벤 용정 출신의 저항시인으로 연희전문(현 연세대학교)을 다닐 때 누상동의 김송선생 집에서 하숙을 하며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을 남겼던 연유로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이후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이어서 윤동주문학관은 용도폐지된 청운수도가압장 자리가 있어 이소진이 설계하여 문학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어쩌면 저리 이쁜 건물이 있을까 싶다. 전시장 명칭은 ‘열린 우물’이고, 뒤늦게 발견되어 영상실로 쓰여지는 물탱크는 철문을 닫자 컴컴하고 눅눅하여 기분이 일제시대가 연상되는데 별똥별이 가득한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별 헤는 밤’ 영상이 돌아간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주면 참 좋겠다는 분위기다. 세상에 크고 좋은 것을 큰돈 들여 보기 흉하고 쓸모없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고 불편한 것을 작은 돈을 들여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구나...서울의 종로구는 살아 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아름다운 고도(古都)이다.

 

▲ 환기미술관



▲ 윤동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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