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을 지나 하얀색 타일이 깔려있는 로비로 들어섰다. 녹색 풍경이 열렸다. 그곳에 녹색 풍경이 있다는 걸 관계자 말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 작가 유미연이 창조한 녹색 연꽃들은 전시장 공간 속으로 관람객을 편안하게 초대했다.
유미연, 내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정원, 2011, 한지, 밀랍, 분재철사, 가변크기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이지만, 전시장을 줄곧 찾는다. 스포츠가 마초적인 남성이라면 미술전시는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가 떠오른다. 각별하다. 발길을 멈추게 한 전시는 경기도 수원의 미술공간, 수원미술전시관의 ‘화이트 스펙트럼’展(5.7 - 6.22) 이다. ‘화이트 스펙트럼’展은 2014년 수원미술전시관의 기획전시다. 종이를 통해 다양한 예술작품을 보여준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는 그저 종이를 쓰고 읽는 등 한정된 용도로만 사용한다. 이 전시는 그런 구속된 행동과 사유의 영토를 확장시키기 위해 예술가의 힘을 빌린 것일까. 전시장을 들어서기 전, 이런 전시 서문이 눈에 들어왔다.
“다채로운 예술의 소재이자 재료로써 종이를 다루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종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탐닉해 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장에는 종이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한작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종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라는 작고 은밀한 귓속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종종 나는 전시장을 찾을 때 앞선 판단과 편견을 갖고 나선다. 많은 경우, 그런 생각이 끝까지 유지되기도 한다. 좋은 전시는 어떤 것일까? 쉽게 얘기해보자면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고 창조적 발상을 통해 완성된 예술작품을 볼 수 있으며, 관람객을 몰입시킬만한 매혹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전시가 아닐까. 수원미술전시관의 화이트 스펙트럼 전시는 종이의 반란 아닌 반란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감동적인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순수함은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