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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나비를 찾아서 ‘에른스트 감펠: 치유의 미학’

안민영

신세계백화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삼청동에서 전시를 보고 인사동과 종각을 지나 명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토요일 오후의 가을볕은 점점 더 따갑게 내리쬐었다. 나는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며 넘쳐나는 인파 속을 점심도 거른 채 기진맥진 헤쳐 나왔다.

물 한 모금에 시야가 선명해졌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구입한 코코넛 비스킷을 우물거리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2층 갤러리까지 올랐다. 11층 식당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멀게 느껴질 즈음, 독일 출신의 목공예작가 에른스트 감펠(Ernst Gamperl. 1965- )의 그릇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시 전경, 신세계갤러리 제공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닌 생명을 잃은 나무로 제작되는 그의 그릇들에는 갈라지고 터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그 균열의 이편과 저편을 아물리고 있는 나비모양 이음새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더이상의 변형을 방지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나비가 최소한의 개입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인데, 보면 볼수록 잔잔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솜씨였다. 균열을 균열 그대로 인정하는 지지자의 어깨동무. 그 투박한 듯 세심한 격려가 나무를 대하는 작가의 기본 태도이자 이 전시의 제목인 ‘치유의 미학’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반짝이는, 흠은 불량일 뿐인 흠 없는 공간 속으로 다시 내려가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자의 갈증을 안고 조용히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저 물고기 이웃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나비는 무엇일까. 저 빛나는 상품만은 아닐 거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뇌까리며 첨단의 어항 속을 빠져나왔다. 먹먹히 차단되었던 외부의 소음과 햇빛과 시간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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