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 인천광역시 kindly_ksy@naver.com
천 개의 플라토 공항 (7.23-10.18, 플라토)
시청역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초록색 표지판과 비행시간이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공중전화 박스를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눈앞에 공항이 펼쳐진다. 보딩 패스를 받으면 준비된 도장으로 PASSENGER란에 이름을 새긴다. 혹여나 경보가 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보안 검색대를 지나면 캐리어 안의 갓난아기와 마주친다. 까르네, 여러 나라의 지폐와 동전, 미술관 티켓 등이 담긴 기부함을 지날 때, 벽에 걸린 문장은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주인 잃은 수화물은 고요함 속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뒤집힌 바와 낯선 남자 그리고 반입금지 물품 목록이 있는 공간에선 보딩 패스에 적힌 23번 게이트가 보이는데 이런, 계단이 부서져서 올라갈 수가 없다. 부서진 계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탑승준비를 서둘러 달라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항’은 만남의 공간이자 헤어짐의 공간이며, 자유를 향하는 공간이면서도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통제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호한 공간에서 게이트로 향하는 부서진 계단은 청명한 하늘로 날아가리라는 기대감을 좌절시킨다. 떠나려고 온 공항에 머물게 되는 이 상황은 문득 체크인 장소에서 본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떠오르게 한다. 그제야 왜 그 책이 놓여 있었는지를 눈치채고 돌아가 책을 읽으며 공항에서의 ‘정착’을 만끽한다.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어렵지만, 종종 묘하게 이끌리고 재미있기도 하다. 어쩌면 미술관의 이름만큼이나 철학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진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 근처에 마련된 이 작은 공항은 누구에게나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었기에 즐길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기에 재미있었던 전시였다. 참, 공항의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 언제 그곳에 가볼지 모르니, 10월 18일 공항 운영이 종료되기 전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