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유학 이후 처음 한국에 돌아와 서울의 미술세계를 직접 접하면서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성숙하고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도시의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단히 많은 전시들이 열리고 또 유명한 외국 작가들이 초청된 무수한 국제 전시도 열리고 있었으며 반갑게도 부산비엔날레에서는 뉴욕에서 알고 지내던 외국 작가들의 작업과 큐레이터들도 만날 수 있었다. 여느 오프닝에 가더라도 외국 작가나 큐레이터가 눈에 띄었다. 서울이 정말 국제적인 예술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가을, 부푼 기대로 갤러리 팩토리에서 전시 기획을 맡게 되었다.
팩토리에서의 전시<빗각서사>는 소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과 손쉽게 매일 접하는 이미지들을 이용한 작업들로 구성해 보았다. 지루하리만큼 일반적인 소재나 이미지들이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제공하며 놀랍게도 감동적이고 때론 황당하기까지한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업들을 모아 보았다. 유켄 테루야의 경우 생활에서 쓰고 남은 화장지속의 종이롤 또는 빵 봉투 등을 이용하여 매우 시적이고 정교한 나무들을 만들어낸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들은 실제로 어디엔가 존재하는 나무들의 초상화라는 점이다. 제니퍼 & 케븐 맥코이의 경우 실시간 감시 카메라와 작은 영화세트 같은 인형과 미니자동차를 이용하여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들며 그 구분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우리에게 신선한 미소를 선사하며 생각의 틀을 살며시 깨어버리는 작품들을 통해 많은 젊은 작가들과 관객들이 우리 주위의 작은 것들로부터 새로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싱그럽고 상쾌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뉴욕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아주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크게 발전할 작가들로, 물론 책과 잡지를 통해서 이미 그들의 작업을 알고 있는 이들도 있으나,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는 작가들이다. 이들을 선정한 이유는 한국에 국제적인 슈퍼스타들은 많이 초청되고 있으나 그야말로 지금 막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층과의 왕래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듯하여서다. 슈퍼스타들의 영향을 받아 아류가 되는 것이 아닌 지금 왕성한 작업을 하며 계속 커나가고 있는 작가들과의 교류를 촉진하고 (foster/encourage) 싶었다. 나의 다음 프로젝트는 젊고 참신한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뉴욕에 가져가 선보이는 것이다. 좋은 작가들은 많으나 경제적인 여건과 개인적인 인맥이 없이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전시를 기획하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좀 더 많은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이 이 전시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의외의 신선함을 가져다 준 전시였기를 바란다.
- 최은영씨는 뉴욕 주립대학과(실기) 뉴욕 시립대학(이론) 강사 였으며 National Academy Museum 교육부 책임자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