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기이한 인연 하나가 나와 그림과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광복 후 부친께서 공직에 계셨던 관계로 그 당시 적산가옥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때 그 집 마루 밑에서 오동나무 궤가 하나 나왔는데 그 안에서 많은 서화가 나왔다고 들었다.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의 사군자, 이완용의 글씨 등등이었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다 없어지고 달랑 족자 하나만 남아 벽에 걸려 상아 막대가 덜렁거렸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내가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면서 그걸 가지고 와서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다.
지금은 족자가 아닌 표구가 되어 조석으로 나를 즐겁게 한다. 그 그림은 ‘小石’이란 호와 희미한 낙관만이 남아 있을 뿐 정작 작가의 이름이 없는 매화 그림이다. 그저 실증이 안 나는 그림쯤으로 평가해온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그러다가 십 수 년 전 홍대 미술교육원과정에서 남천(南天) 송수남(宋秀南) 교수에게 사군자를 배우게 되면서 그 그림의 어렴풋한 맛을 나 나름대로 감상하게 되었다. 만개한 꽃보다 꽃망울이 많은 것으로 보아 초봄의 매화가 아닌가 하는 정도의 감상 말이다. 지금도 小石이란 작가에 대한 정보는 모르는 상태로 지내오고 있다. 알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다. 작가가 대수랴. 그 이후로 미술에 관한 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요즘‘행복한 눈물’이 세상의 화제지만 나는 우리의 옛 서화를 더 사랑한다. 특히 청전(靑田) 그림을 선호하는 편이다. 청전과의 인연은 유별나다. 조부님께서 내 이름자에 코끼리 ‘象’자를 지어 주셨는데 다른 이름에서 볼 수가 없더니 대학에 들어가서 청전의 함자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청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나 우리 서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 책상머리에 청전의 모사품 한 점이 걸려있다. 애초에 복사품이 아닌 모사품인걸 알고 샀다.
나의 미술과의 만남은 엉뚱한 곳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 서가에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진경산수>, <완당평전> 등을 빼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책 수집벽 덕분에 순수 아마추어들의 <서울대의대 미술부지(美術部誌)>와 전문지 <계간 미술>창간호는 물론 서문도 작가의 말도 없는 천경자의 첫 수필집(1955년) <여인소묘(女人素描)>가 내 수집목록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음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