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냄새가 옥상을 채우고 있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다그치다 교태를 부린다. 그림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작가의 충실한 설명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진정성이 있었다. 미술과는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건물옥상에서 작가의 말소리가 흐른다. 섞일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매력을 발산한다. 이미 용도가 폐기된 목욕탕 굴뚝이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축물은 110년을 자랑하는 승동교회다. 이층 맥주집에서 술꾼들의 호기어린 배짱이 효과음으로 스멀스멀 올라올때,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작가가 말해주고 있는 작품 속 세상은 지금의 이 상황과 닿아있다. 물성만 있으나 이제는 쓸모조차없는 목욕탕굴뚝. 작품 속에서 레저를 즐기고 있는 인파. 그것을 보고 있는 나, 관람객, 큐레이터. 할아버지뻘되는 근대건축물. 호프에서 술을 마시며 때론 웃고 우는 취객들. 이 모든 구성들이 한데 어울려 작가의 설명에 힘을 실어준다. 의도되지 않은 상황이 멋지게 전시와 섞여 더 큰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옥상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일단,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합격점이다. 도대체 낡은 건물옥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직접가서 눈으로 보고 살갗으로 밤의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것도 인사동에서 이런 톡톡튀는 전시라니. 평일 힘들게 찾아가 보았으나 인사동골목은 쉽게 길눈을 터주지 않았다. 대로변의 갤러리만 발걸음하던 내게 포털위성지도도 쓸모가 없었다. 아스팔트가 타들어 가는 더위속에서 금좌빌딩을 찾느라 한 시간정도를 소모한 것 같다. 그러다 비좁은 골목길에서 ‘옥상과 영상’프로젝트 안내글귀가 눈에 착 들어왔다. 반가웠고 신기했다. 날을 꼽고 시간을 기다렸다. 첫키스가 그렇듯 어색하고 서툴렀다. 시간을 잘못 알고가 모든 것이 끝나고 달만 보고 돌아왔다.

그 다음주 주말. 이상원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현대인들의 레저와 휴식을 캔버스에 담는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복잡하고 바쁜 도시의 삶 속에서 인간은 놀이공원을 만들고 인접한 산으로 휴식을 떠난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이러니하면서도 고달픈 우리의 얼굴이 느껴진다. 도시인에게 휴식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하루 12시간을 사람만 그린다는 작가의 푸념에서 작품 속 도시인들의 고단한 얼굴이 겹쳐진다. 그럼에도, 오늘밤 돌아가서 다시 붓을 잡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다음 전시가 코앞이라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의 시선은 그의 오른손에 가 꽂힌다. 깁스를 한 상태다“. 왼손으로 그려야 하는데..”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걱정을 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지금도 계속 사람들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스크린 위에서 투영되는 회화 이미지가 달린다. 자전거를 탄다. 줄넘기를 한다. 도시인의 휴가를 인사동 옥상에서 잠시 얻었다. 주말의 여유로운 밤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