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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속의 미술

윤현정

사회적 거리두기 속의 미술

 사람들은 2020년을 두고 ‘사라진 한 해’라고들 말한다. 작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corona virus)로 문화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미술 분야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고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국립 및 시립 미술관들은 휴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찾아갈 수 없는 관람객을 위해서 미술관이 한 걸음 더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앞다투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개막하고도 관람객을 받을 수 없었던 전시를 온라인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와 함께 관람하는 영상을 제작해 더 깊이 있는 작품 감상을 도왔다. 직접 전시장을 방문해서 공간 안에 어우러진 작품을 보며 아우라(Aura)를 느끼는 것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나마 화면 너머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시회에 대한 우리들의 갈증을 다소 풀어준다. 전시 기간 내에 전시장을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타지에 살고 있거나 시간상으로 방문할 물리적 여유가 없는 경우 등)에게는 오히려 더 접근성이 좋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지역에 살아서 전시를 보고 싶어도 이동이 어려운 지인은 전시해설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했으며 앞으로 전시를 영상으로 접하는 것에도 익숙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로는 작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우이신설선 역사에 기획 전시를 개최한 것이다. 창동레지던시 입주 작가들과 협업하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중교통 근처에 미술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출퇴근길에 무의식적으로 마주쳤던 그림들은 알게 모르게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팍팍해진 우리의 삶이 지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 우이신설선 역사에서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협업전
출처: 우이신설선 역사 홈페이지

 해는 바뀌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우리가 비대면으로 미술을 즐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소개할 것은 집에서 VR(Virtual Reality)로 즐길 수 있는 전시이다. 현재 LG전자에서는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를 웹상에 구현하면서 첫 번째 전시로 한국 추상화가인 김환기(1913~1974)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김환기의 작품 10점과 그가 뉴욕에서 지냈던 시절의 아틀리에를 재현한 가상공간을 보여주는 ‘다시 만나는 김환기의 성좌’ 특별전은 작년 12월 21일부터 시작해 올해 3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컴퓨터로도 접속할 수 있으나 VR 특성상 모바일로 체험하는 것이 훨씬 낫다. 버튼을 누르면 사방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 마치 미술관을 걸어 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림을 클릭하면 환기미술관 학예사의 설명을 영상으로 직접 볼 수 있으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도슨트도 함께 갖춰져 있다.


▲ 집에서 모바일을 이용해 VR 전시회를 체험해보고 있다. 
사진: 윤현정

 또한 일정 구독료를 지불하면 매일 1점의 그림과 에세이를 보내주는 구독형 서비스도 존재한다. 이 서비스는 다양한 시대의 국내외 작가의 그림과 간단한 에세이를 매칭해서 제공하는데 가볍게 미술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된다.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미술 관련 서적들을 읽을 수도 있고, 지금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선 미술 잡지를 보는 것도 좋다. 활자를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술을 주제로 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2017) |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Dorota Kobiela), 휴 웰치맨(Hugh Welchman)
 :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다루고 있는 실험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100여 명의 화가가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으로 마치 고흐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개봉 당시에는 제작 방법이 화제가 되었는데, 배우들이 고흐가 그린 초상화의 인물들을 연기한 다음에 그 연기를 다시 유화로 옮겨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화가들은 고흐가 사용하던 색의 사용과 붓 터치 등을 교육받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과정에만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영화 스틸컷

▪‘셜리에 관한 모든 것’(Shirlet – Vision of Reality, 2013) | 감독: 구스타프 도이치(Gustav Deutsch)
 :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사람들의 삶에 나타난 고독감을 잘 표현해냈다. 그는 많은 화가와 작가,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이 영화도 그중 하나이다. 스크린 속에서 호퍼의 작품을 최대한 표현해내려고 한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호퍼의 작품은 낮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텅 빈 공간과 빛의 대조로 따뜻하기보다는 황량하고 정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 우리가 처한 코로나 상황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영화 속에 나타난 구도와 색감을 호퍼의 그림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앱 스트랙스: 디자인의 미학’(Abstract: The Art of Design, 2017)
 : 다양한 디자이너와 현대 미술 작가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현재 시즌 2까지 나온 상태이며,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작가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 등을 보여주며 흥미로운 구성과 호흡으로 진행되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과 폰트 디자이너 조나단 호플러(Jonathan Hoefler) 편이 인상 깊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즌 전체가 제공되고 있어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작년에 우연히 방송과 영화에 뜻을 두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할 일이 있었다. 같은 문화예술 계통이니 전시도 어느 정도 보러 다닐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 년에 두세 번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전시를 잘 보러 가지 않는 이유로는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방문하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술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은 손에 꼽았던 것 같다. 이는 아직까지는 미술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새해가 밝은지 벌써 3주가 흘렀다. 아직 코로나 상황은 계속되고 있기에 올해는 또 어떤 방식으로 미술 전시의 흐름이 바뀔지 궁금하다. 작년에 잠시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전시를 통해 개를 관람객으로 초대했다. 이는 기존에 관람대상이 아니었던 동물을 미술관에 끌어들임으로써 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반려견을 위해 전시를 보러 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좋은 시도였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를 계기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중에게 미술이 친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술이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보편화되면 언젠가는 미술 주제의 인기 방송 프로그램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미술관을 찾는 것이 영화관을 찾는 것처럼, 카페에 가는 것처럼 모두에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 되는 날이 곧 오길 바란다.

윤현정 adele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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