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란
어렸을 때 바다에 놀러 가면, 나는 물속에 들어가기보다 해변을 거닐며 예쁘고 특이한 돌들을 줍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날은 투박하게 생긴 돌들 사이로 유난히 맨들맨들하고 빛나는 초록색 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 돌들을 보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집에 고이 들고 가 자랑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 부모님의 꾸지람이었다. 그것은 보석이 아니라, 사람들이 버린 유리병들이 파도 등의 풍화작용에 의해 깨지고 마모되어 돌멩이처럼 변해 버린 것이었고, 나중에 이것이 바다 유리, ‘씨 글라스(sea glass)’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내가 발견한 것이 자연이 아니라, 자연의 형상을 띤 인공물이라는 것이 확인될 때 묘한 불쾌감이 들었고 그것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수집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장한나 작가의 경우 반대이다. 작가는 ‘이상한 돌들’만을 수집하고 전시한다. ‘이상한 돌들’은 언뜻 보면 흔한 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분명 구멍이 숭숭 뚫린 커다란 암석인데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 돌도 있다. 스티로폼이다.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 바다에 도착하게 되었고, 자연 속에서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정말 자연의 일부 같은 형상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작가는 이 ‘이상한 돌들’에게 ‘뉴 락(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연히 해변에서 만난 돌 형태의 스티로폼이 <뉴 락 연구>의 시작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후로 2017년부터 약 4년간 직접 전국의 바닷가를 다니며 ‘뉴 락’을 수집하였고 2020년 7월, 수원시의 스튜디오 스퀘어에서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내보이게 된다. 올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5월 21일부터 7월 25일까지 개최되었던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 전시에서는 수조에 ‘뉴 락’을 설치해, 물과 ‘뉴 락’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설치하기도 하였다. 작품의 제목은 <신 생태계>인데, 전시 기간에 스티로폼에 싹이 나고 모기 유충이 알을 까는 등 말 그대로 ‘뉴 락’에서 ‘신 생태계’가 펼쳐졌다. 이 작품에는 수집 당시 바닷속의 생명들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던 뉴락도 있다. 이들의 플라스틱 표면에는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일명 ‘플라스틱 스피어(plastisphere)’가 된 ‘뉴 락’이다. ‘플라스틱 스피어’는 자연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오랜 시간을 거쳐 해양 생물의 생태 공간이 된 것을 뜻한다.
장한나, <신 생태계>, 2021
‘뉴 락’의 형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비록 작가의 수집품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지층 자체가 된 ‘뉴 락’도 있다. 스브스 뉴스의 인터뷰 영상에서 장한나 작가는 ‘뉴 락’을 수집하며 마주쳤던 기이한 광경을 회상한다. 그 광경은 해안가의 식물들이 스티로폼을 지층 삼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던 것.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현재 인류가 맞이한 기후 위기를 언급하며, 우리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지질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세’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처음 제안한 용어로, 인류(anthropos)와 시대(cene)를 더한 합성어이다. 인류의 등장 이후,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이것을 지질학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인간들이 살다간 지질층의 상당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덮여있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인류세의 축소판이 장한나 작가의 ‘뉴 락’이라고 할 수 있다. 썩지 않는 인공물들과 엉겨 붙은 자연은 인간이 지구에 끼친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은 돌들이 인류의 멸종을 예견하는 불길한 대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뉴 락’을 다른 방향으로 해독할 수는 없을까?
2000년대 이후 서구의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인류세라는 위기의 시대에 대한 해법으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을 제시한다. ‘신유물론’은 문화/자연, 인간/비인간과 같이 구분이 뚜렷한 이분법적 사고를 반성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문화와 자연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고, 서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연속된 하나의 선상 안에 위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과 비인간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가진다. 이와 같은 사고는 ‘뉴 락’과 같은 혼종적 대상과의 조우에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한나 작가의 ‘뉴 락’은 인류세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인류세를 해결할 신유물론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교육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거나, 어떤 중대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재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스스로가 알아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가시적이지 않은 일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일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장한나의 작품은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 중인 《타이포잔치 2021 : 거북이와 두루미》에서 <뉴 락 표본 2017-2021>이란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좌대에 배치된 ‘뉴 락’의 형태는 생경하면서도 익숙하고, 괴기스럽지만 나름의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뉴 락’이 주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이런 조형적 특징들이 ‘뉴 락’을 예술작품으로 느끼게끔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뉴 락’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그 안에 내포된 섬뜩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장한나, <뉴 락 표본 2017-2021>, 2021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은 《기후미술관 : 우리 집의 생애》(2021.6.8-8.8)전시를, 부산현대미술관은 《지속 가능한 미술관 : 미술과 환경》(2021.5.4-9.22)전시를 선보인 바 있었다. 장하나 작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을 비롯한 미술계 전체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창조해내고 보여주는 기존의 방식에 대해 고심하는 듯하다. 이러한 양상이 단순한 전시장의 트렌드로 남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김환석, 「[신유물론]사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신유물론」, 『지식의 지평』, 제 25호, 2018, pp.81-89
최지현, 「신유물론은 진정 유물론적인가?」, 『크리틱-칼』, 2021.05.16
[C-인터뷰] '뉴락'의 장한나 작가, 수집하고 연구하고 소통한다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
윤란 rani7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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