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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독일인 대영박물관장
입력 : 2015.10.02 03:00
1980년대에 두 차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이경성씨 회고록에 읽기 민망한 구절이 나온다. 과천 서울대공원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지을 때 얘기다. 서울시가 땅을 안 내놓으려는데도 이씨가 정부 방침임을 내세워 미술관을 짓겠다고 하자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이렇게 내뱉었다고 한다. '곱게 늙어!' 당시 이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예림(藝林)의 총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공무원 눈엔 한낱 시중의 늙은이로 비쳤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선 하나뿐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1년이다. 작년 10월 관장이 직위 해제된 뒤 후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인사혁신처가 뽑은 관장 후보자를 문화관광부 장관이 '부적격'이라고 딱지 놓자 장관이 자기 아는 사람을 앉히려 한다는 뒷얘기가 있었다. 장관이 '외국인에게도 관장 응모 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하자 이번엔 '현대미술관장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냐'며 시끄럽다.
▶월간 '서울 아트 가이드' 10월호는 '국립현대미술관 외국인 관장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특집을 실었다. 미술계 전문가 여섯 명한테 물었더니 다섯이 반대다. '국가 정신문화의 거점 기관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정신문화를 자발적으로 식민지화하는 일' '국민의 얼을 형성해 나가는 기관은 못났더라도 한국인이 맡아야'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모독이자 미술계를 깔보는 처사'라고들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그렇게 중요하고 신성한 자리라면 먼저 미술계에서 거기에 맞는 인물을 키웠어야 한다. 아니면 시야를 넓혀 밖에서 모셔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영국의 자존심 대영박물관이 독일 미술사학자 하르트비히 피셔를 새 관장으로 영입했다고 한다. 피셔 관장은 예술사·고고학·철학에 정통하고 4개 언어를 구사하지만 영국을 근거지로 활동한 경력은 없다. 그런데도 영국에선 '탁월한 박물관장감으로서 대영박물관을 이끌 적임자'라고 환영했다.
▶사실 우리가 능력 있는 외국인 미술관장을 선임했다 해도 그가 한국에 올지는 알 수 없다. 한국 미술계에 고질적인 이념·학연·분야에 따른 파벌, 상급기관의 집요한 간섭, 외국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작품 구입비 같은 걸 보고 한 달 만에 짐을 쌀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외국인 미술관장 영입론'은 의미가 있다. 미술인들 스스로 자기 안의 벽을 허물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로 공모한 미술관장 최종 후보 5인에 외국인도 두 명 포함됐다고 한다. 한국인이 되든 외국인이 되든 정부와 미술계가 얼마나 열린 자세로 논의하느냐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앞날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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