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모두의 얼굴 | Every Face
전시기간 : 2024년 10월 15일 ~ 2024년 11월 28일
전시 장소 : ARTBASE 26SQM 박서보재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24길 9-2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얼굴이다. 이미 여러 차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어 눈에 익은 얼굴도 있고,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얼굴도 있다. “얼굴은 비언어적 자기표현 그 자체라는 점에서 언제나 흥미롭다.(1)” 라고 임순남 작가는 말했다.
태어나며 부여된 얼굴에 곧 휘발되어 사라질 말과 표정이 흔적을 남기고, 생각이 얹히고, 세월이 쌓인다. 그렇게 얼굴은 개인의 고유한 형상으로 자리한다. 임순남은 이를 인물화처럼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얼굴을 관찰한 이미지에 자신의 상상을 덧붙이는 작업을 한다. 속도감 있는 붓질로 형태를 부여하고, 제한된 색만을 이용해서 의도한 색감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임순남의 신작 3점과 함께 작가의 <어떤 얼굴> 초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일상에서 변화하는 순간을 붙잡아내는 임순남의 시선이 초기 작업과 후기 작업을 연결한다.
임순남 Lim Soonnam, <어떤 얼굴 XXXXVI>, 2021, Oil on linen, 86x60.7cm
<어떤 얼굴>이 디지털 이미지의 순환 과정에서 쉽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얼굴에 대한 관찰이었다면, 근래 작가는 육체의 취약성과 시간성에 주목한다. 멍 자국이 있는 아픈 사람, 취약한 신체를 가진 노인, 그들의 얇아진 피부의 주름 사이로 세월을 그려낸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자신의 육신도 예전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연약한 육체에 대한 임순남의 관찰은 회화를 통해 자신으로부터 타인으로 확장된다.
임순남 Lim Soonnam, <부상당한 사람>, 2017, Oil on linen, 72.9x90.9cm
원래 작가는 캔버스 틀을 미리 제작하지 않는다. 그는 정해진 틀을 두지 않고 벽에 리넨을 종이처럼 오려 붙인 후 작업을 해왔다. 반면, 박서보의 캔버스는 한지에 신문지를 배접해놓은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형태였다. 박서보재단의 캔버스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을 하며 도전이 된 부분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임순남은 자신의 작품이 노작가의 캔버스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냈다.
임순남이 응시한 얼굴이 놓여있는 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각각의 얼굴이 한데 모여서 모두의 얼굴이 된다, 각자의 일상을 구성하는 모두의 얼굴. 임순남의 작품은 쉬이 스쳐 보내기만 했던 그 얼굴을 관찰하고, 말을 건네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보자 한다.
ARTBASE 26SQM 임순남 개인전 《모두의 얼굴 Every Face》 전시 전경, 박서보재단
작가노트
얼굴은 비언어적 자기표현 그 자체로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서 휴식을 취하는 병사, 연장자, 그리고 박서보 작가님의 프로필 이미지를 차용하여 새로운 작업을 하였다. 얼굴이 드러내는 신체성, 시간에 대한 감각, 그리고 심리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신문 캔버스의 재질감과 미감을 탐구하며 작업을 하였다.
이 작업들은 고 박서보 작가님께서 마련해두신, 한지와 신문지를 곱게 배접한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회화에 있어 어떤 바탕이냐는 이미 작업의 방향을 섬세하게 고려해 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캔버스의 고유한 미감 위에 무엇을 얹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들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작가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젯소를 가볍게 칠하였다. 그림을 얹기에 더 적합하게 바닥을 정돈한 것이다. 보다 균일해진 바닥에 회화라는 메디움은 보통의 캔버스보다 물감과 기름이 빚어내는 물성이 더 도드라지게 미끄러지듯이 얹히는 특색이 있다.
축적된 시간성이나 시간의 간극에 존재하는 것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여름과 겨울, 초록의 잎과 바짝 마른 잎, 부드러운 피부와 주름지고 그늘진 피부, 또한 병이나 사고 등으로 피멍이 들거나 부분적으로 단절되고 대체된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대조적인 것들의 공존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고통, 그리고 슬픔 등이 빚어내는 멜랑콜리함이 주는 미감에 주목한다.
언제나 시각적 상상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미지를 바라보고 상상하며, 회화라는 메디움을 통해 그리기라는 행위와 물질성의 구현의 과정을 반복한다. 회화라는 메디움으로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손의 흔적과 더불어 구현되는 물질성은 또 다른 현실성을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