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이해
- 청구기호609.205/미83ㅎ
- 저자명팸 미첨, 줄리 셀던 [공]지음 ; 이민재, 황보화 [공]옮김
- 출판사시공사
- 원서명Modern art:a critical introduction
- 출판년도2004년
- ISBN8952740750
- 가격18000원
난해한 현대미술 읽기
“나는 미술이 미술관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원한다.”
거대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작품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팝 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가 한 말이다. 이 말은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 혹은 미술제도에 맞추기를 거부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미술관에 걸린 유화를 감상하는 눈으로 현대미술을 본다면, 앞에 놓인 것은 그저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미술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도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시각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새로운 눈을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미술전공자도 난해하게 느끼는 현대미술 앞에서 일반 관람객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현대미술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Modern Art: A Critical Introduction』은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 할 새로운 눈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변화: 하나의 미술사에서 여러 미술사들로
저자인 팸 미첨(Pam Meecham)과 줄리 셸던(Julie Sheldon)은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작가들은 이론의 영향을 받아 작업을 제작하는데, 이런 경향은 대체로 마르스크주의(Marxism) 때문에 생겨났다. 현재는 마르크스주의뿐 아니라 프로이트주의, 그린버그주의, 라캉주의, 여권주의(feminism) 등 여러 ‘-주의’가 난립한다. 이런 이론들로 인해 “누가 위대한 예술가이며 어떤 작품이 ‘걸작’인지를 정의하는 기존 미술사”의 기준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에 저자들은 “하나의 미술사(the history)는 이제 논쟁적이고 국지적이며 서로 결합 가능한 여러 미술사들(histories)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미술의 복잡한 노선을 설명하고자 하는 책은 단선적, 귀납적 서술방식 대신 국지적, 복합적 서술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주제로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이 책은 현대미술에서 논쟁이 될 만한 주제 8가지를 선정하여 각 장에 할애하는 서술방식을 택했다. 즉 이 책은 매우 흔한 연대기순, 혹은 사조별 서술방식을 따르지 않고 주제별 서술방식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은 하나의 논문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논쟁 지점이 확실하다. 때문에 독자들은 저자가 제안한 8가지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고 골치 아픈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현대미술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려는 시도를 포기한다면 말이다.
변화에 적응하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이 책은 논지가 다른 8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지만, 각 장들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관되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연속성과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보면 된다.
첫 번째 장은 모더니즘의 개념들(보편성, 천재, 자율성, 본질주의, 진실 등)을 의문시하는 눈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독자에게 모더니즘을 탄생시킨 아방가르드 전통은 무엇인지, 모더니즘은 어떤 전망을 내세웠는지를 설명한다. 모더니즘은 사회에서 유리된 미학, 즉 ‘무관심한 미학’을 통해 순수한 예술을 추구했다. 그러나 사실 모더니스트들의 이런 생각은 모순적이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전망을 비판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보편성, 천재, 자율성, 본질주의 등의 단어들은 의문시된다.
두 번째 장은 공공기념물 성격의 변화를 읽는 눈을 통해 현대미술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제시한다. 과거에는 개선문과 같이 단단한 기념물들이 시대를 대표했다면 모더니즘 시기에는 ‘기차역’과 “부유하며 떠돌아다니는 육체”를 지닌 도시인들이 새로운 기념물로 등장한다. 이런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면 더욱 심화된다. 권위적 스탈린 상을 조롱하는 마이클 잭슨 상, 새로운 기념비로 등장한 ‘맥도날드의 노란 아치’, 그리고 가상 이미지을 제공하는 디즈니랜드. 이 모두가 현대를 대표하는 기념물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세 번째 장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후퇴’한 예술가들을 통해 낙관적, 도시적이었던 주류 모더니즘의 대안을 읽으라고 제안한다. 흔히 모더니즘 하면 도시, 산업화를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모더니스트들은 상상력을 고양시키기 위해 여행(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험, 고립을 강행했다. 고갱은 색다른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타히티로 떠났으며,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은 신지학과 같은 정신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또한 미로, 콜더, 모흘리-나기, 뒤샹 등은 “차원주의Dimensionisme”, 즉 4차원 세계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을 추구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네 번째 장은 여성 누드를 통해 현대미술을 이해하라고 제안한다. 알몸(naked)과 누드(nude)의 관계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도 주요 논쟁거리였다. 여기에 페미니즘 미술사가 개입하면서 재현과 응시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일부에서는 누드란 예술적 옷을 입은 것이며, 알몸이란 무방비 상태라고 구분했으며, 존 버거와 같은 미술사가는 알몸이란 그 자신이 되는 것이기에 누드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은 알몸이든 누드든 관계없이 항상 남성적 기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섯 번째 장은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현대미술에 접근하고자 한다. 기계에 대한 열광은 특정 집단이나 하나의 예술운동에서 나타났다기보다는 포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문명의 미래를 낙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는데, 미국의 정밀주의자 찰스 실러(Charles Sheeler), 사람을 기계처럼 표현한 페르낭 레제 등과 같이 작가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토피아의 뒷면에는 디스토피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는 기계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기계인간은 최근에 와서는 사이보그로 변화한다. 일부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은 이렇게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예술이 잠재적 해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장은 20세기 미국미술을 통해 현대미술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전후의 현대미술계에서 주류 사조는 단연 자유주의 미국을 나타내는 추상표현주의였다. “유럽은 1970년대까지도 뉴욕의 비평, 미술관, 작품에 묶여 있었으며,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예찬이 세계를 뒤덮었다.” 그러나 이런 미국미술의 지배라는 현상 속에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정치학, 뉴욕 현대미술관(모마MoMA)의 역할 등과 같은 정치, 사회, 문화적 의도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었다. 이로써 모더니즘이 주장하는 비정치성이 사실은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었음을 언급한다.
일곱 번째 장은 사진과 퍼포먼스를 살펴보면서 최근에 특히 두드러지는 자아와 정체성의 정치학을 통해 현대미술을 읽으라고 제안한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몸은 작품을 생산하는 주체이자 작품 그 자체, 즉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자신의 몸을 통해 정치, 사회적 담론에 개입하는데, 이를 통해 몸 정치학, 자아 정치학, 정체성의 정치학 등이 등장하게 된다. 때문에 퍼포먼스와 같은 장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론들을 숙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 장은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통해 현대미술을 읽으라고 제안한다. 현대미술관은 작품을 그 자체로 감상하기 위해 주변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소위 화이트 큐브(white cube)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은 “무관심한 미학”(칸트의 미학)을 표방하며 작품을 원래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중화시킨다. 1801년에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였던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는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는 “사원이라는 신성한 공간에 놓여 있던 종교적인 작품들을 옮겨 와, 작품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무시하고 맥락에서 제거한 채 전시한” 대표적 사례다. 이에 작가들은 모더니즘을 넘어서고자 대안적 미술관을 시도하는데, 이는 “들고 다니는 미술관”을 고안했던 마르셀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나 “벽 없는 미술관”을 추구했던 전시 기획자뿐 아니라, “가상 미술관”을 가능하게 만든 테크놀로지로 인해 가능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테크놀로지가 진정한 전복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비판적 풍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점에 나가면 현대의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작품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난해하고 복잡한 현대미술을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에서만 그친다면, 이는 오히려 독자들의 혼란과 어려움만 가중하는 꼴이 된다. 『현대미술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Modern Art: A Critical Introduction』은 현대미술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들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8가지 주제로 내놓는다.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이 복잡하고 난해하게 보이는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