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게릴라
- 청구기호818/이12ㅌ
- 저자명이강원
- 출판사예지
- 출판년도2002
- ISBN8989797136
- 가격9500 원
헤밍웨이와 타고르의 영혼을 빼앗은 '지상 천국', 라틴아메리카
외교관의 부인이라면 일반인들은 쉽게 가볼 수도 없는 이국에서 밤마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국빈급 인사들이 모이는 파티에 참석하는 화려한 생활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외교관 부인 인생 30여 년의 베테랑 이강원은 4년 전의 저서 『세상을 수청드는 여자』에서 이미 '부엌데기', '이사전문가', '운전기사', '미용사'로 그 진면목을 밝힌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좀 화려한 이야기를 갖고 돌아왔다. 레게의 자메이카, 바람의 코스타리카, 탱고의 아르헨티나, 그리고 광대한 정글의 아마존. 32년간 대사인 남편을 내조하며 세계를 떠돈 여자 이강원은 쾌적하고 호화로운 공관에 안주하지 않았다. 아무도 못말리는 호기심으로 바지런히 발품을 팔아 남미를 구석구석 탐색했다. 너무나 멀어서 우리에겐 지구의 빈칸으로 남아 있는 곳, 그러나 일찍이 헤밍웨이와 타고르, 미로가 '지상천국'이라 극찬한 중남미가 옆집 아줌마의 수다 같은 탐험견문록 속에서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온다.
가난과 마약이 키운 게릴라
신의 편애로 태어난 빼어난 자연과 자원을 선물받았지만, 세계 최고 품질의 마약,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 살 속을 파고드는 가난으로 얼룩진 비운의 국가 콜롬비아. 그곳에서 저자가 만난 것은 소년소녀 게릴라들이었다. 1998년 콜롬비아 최대 반군 FARC와 정부와의 평화회담장에서였다.
삼엄한 밀림 한복판에서 저자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소년, 학교에서 납치당해 밀림으로 끌려온 소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진해서 들어온 어린 가장들이었다. 시작은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한 소년 게릴라가 말한 다음과 같은 절규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심지어는 죽은 동료의 시체에서 내장을 제거하는 일도 했지요. 그렇게 강에 버려야 시체가 떠오르지 않는대요. 사망한 반군 숫자를 속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왜 어른들은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하죠? 평화협상 한다고 떠드는데 왜 더 힘들어지죠?"
냄비 시위와 탱고
"국민 수 2배에 달하는 5천 만 두의 가축, 비료가 전혀 필요 없는 기름진 팜파 평야, 6천 톤의 옥수수와 곡식. 아르헨티나는 1억의 인구를 먹여살릴 자원을 갖고도 외국에 빌붙고 있다"고 쿠바의 카스트로가 비아냥거리면서도 부러워했던 나라, 아르헨티나.
지금 우리에게는 경제파탄으로 잘 알려진 나라이지만, 뜨거운 황무지의 모래 바람과 비옥한 평야, 이 세상 끝마을 빙하의 울음이 공존하는 땅, 아르헨티나는 숱한 예술가들이 '남미의 보석'이라 칭송해 마지않았던 곳이다. 5살짜리 아이도 지정 정신과 의사를 두고, 세탁물까지 직접 유럽으로 보낼 만큼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던 세계 5위의 부국이기도 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 이것이 아르헨티나의 작금의 부침을 보고 내린 저자의 결론이다. 어제의 대학교수가 오늘은 주유소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처참한 현실에 거리에서 냄비를 두들기며 데모를 해도 남미 최대의 라틴아메리카 현대 미술관이 개관하고, 뮤지컬 '델라구아다'의 공연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남미 최대의 도서전이 성황리에 치러지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다.
또 하나,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발생지이자 성지이기도 하다. 대통령 특별기의 이름도 탱고, 거리의 데모대들의 주제가도 탱고, 라디오를 24시간 장식하는 것도 탱고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생활이자 영혼인 것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없어지는 곳
'신도 스스로의 창작에 넋을 잃은 곳.' '신이 편애를 받은 곳.' 중남미의 자연을 말할 때는 유난히 '신'이 많이 등장한다. 아마존 강에 위치한 콜롬비아의 도시 레시띠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끼고 있는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남단에 위치한 지구의 끝도시 우수아이아, 코스타리카 남서쪽의 마뉴엘 안토니오 국립공원 등에서 저자는 그런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한다. 마르께스와 보르헤스를 키워낸 것도 바로 이 자연이다.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크고 화려면서도 섬세하고 관능적인 자연, 그러한 자연 속에서 가난하지만 여유로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화가 바로 이강원이 발견한 라틴아메리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