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빛이 된 아내:우리 화가를 키워낸 열 명의 아내이야기
- 청구기호650.4/정898ㅎ
- 저자명정필주 지음
- 출판사파주:아트북스
- 출판년도2006년
- ISBN898980079X$G,03600
- 가격15000원
그들은 자상한 엄마이자 아내였고,
뜨거운 예술의 파트너이자 창조자였다!
생활인이자 예술가로서 치열한 삶을 산 우리 화가의 아내들 이야기
화가의 빛이 된 아내
담당 편집자의 남편은 화가다! 이런 입장에서 이 책을 통과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편집자처럼 젊은 세대의 아내들은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그러니 아내가 ‘화가의 빛’이라거나 남편을 위한 희생이니 내조니 하는 말들이 솔직히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나보다 더 젊은 지은이가 ‘화가의 빛이 된 아내’들에 대해 썼다. 나는 화가의 아내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화가의 아내들에게서 어떤 ‘빛’을 발견했는지 궁금했다. 원고를 들여다보면서 시큰둥했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화가의 아내이자 또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내들의 시련과 땀이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화가들에게 빛을 주기도 했지만 그 자신이 발광하는 빛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양이자 달이었다.
화가를 빛나게 한 아내의 ‘빛’
이 책에 등장하는 아내들은 6·25전쟁이나 정치적 격동기에 화가 남편을 만나 살아온 사람들이다. 요즘 화가의 아내들과 여건이 달랐다. 지금보다 생활이며 자기 성취를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시절에, 그들은 화가인 남편을 부축하여 한국현대미술사에 굵은 획을 긋게 했다. 화가들이 이룩한 성과는 곧 그녀들의 성과이기도 했다. 비록 화가 ‘○○○의 부인 ○○○’ 식의 기록밖에 남기지 못했을지언정, 진정 그녀들은 ‘예술CEO’였고 ‘마케터’였으며 ‘기획자’이자 ‘조언자’, ‘후원자’였다.
이 책에는 열 명의 아내가 등장한다. 1부에서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남편을 키우고 자신도 예술의 길에서 발 맞춰 걸었던 다섯 명의 아내들이 등장한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 이응노의 아내 박인경, 하인두의 아내 류민자, 문신의 아내 최성숙이 그들이다. 2부에서는 가정과 경제적 책임을 짐으로써 남편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전선에 뛰어든 다섯 명의 아내들이 주인공이다.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장욱진의 아내 이순경, 박길웅의 아내 박경란, 양수아의 아내 곽옥남의 삶이 조명된다.
주인공인 화가의 아내들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써내려간 지은이의 충실도 면에서도 이 책은 빛을 발한다. 예컨대 현재 생존해 있는 아내들과 직접 인터뷰(7명 중에서 5명)하여 화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실감을 더했다. 류민자, 최성숙, 이순경, 박경란, 곽옥남이 그들이다. 발품으로 쓴 글이어서, 인터뷰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화가의 아내, 동반자이자 예술 경영자의 다른 이름
화가의 아내이기도 한 편집자에게가장 자극이 된 사람은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다. 화가와의 결혼생활은 연애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결혼의 냉엄한 현실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편집자에게는 ‘화가에게 어떤 아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숙제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편집자에게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은 모범답안이나 마찬가지로 다가왔다. 만약 김향안이 없었다면, 한국현대미술의 성좌 중의 하나인 김환기가 존재하기나 했을까? 화가란 그저 그림만 잘 그리면 된다는 것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화가로, 아니 화가의 아내로 살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김환기가 활동하던 시대부터 그러했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세계적으로 활동한 김환기에게 김향안은 뛰어난 예술 경영자이자 매니저였다. 김향안은 김환기의 해외 활동과 비평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국내에서 김환기의 비평적 입지를 강화했다. 또 김환기 사후에는 ‘환기미술관’을 건립하고. ‘프리환기’ 공모를 운영하는 등 꾸준히 김환기 작품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당시보다 여건이 훨씬 좋은 지금도 그만한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경영마인드를 갖춘 인물이었다.
이런 김향안 못지않은 사람은 또 있다. 문신의 아내 최성숙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신미술관’ 건립이나 문신의 작품 관리와 기증, 문신의 작품을 기초로 한 아트상품 개발 등에서 혁신적인 사업가적인 기질을 보였다.
같은 예술가로 만나 평생 예술의 파트너였던 아내들도 있다. 이미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운보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은 운보와 서로 경쟁하며 동료 화가로서 그의 예술혼을 싱싱하게 달궈주었다. 고암 이응노의 아내 박인경은 어떤가. 정치적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고암, 그의 명성에 가려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던 박인경도 이응노에게 동료 예술가이자 든든한 파트너였다.
죽음을 부르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 하인두. 그가 병으로 좌절하는 순간에도 그를 캔버스 앞으로 앉게 한 인물이 바로 아내이자 화가인 류민자다.
힘겨운 현실을 떠안아 화가를 빛나게 한 아내
화가들은 대체로 유약한 편이다. 화폭에서 빛나는 예술적인 감성들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는 유약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보통의 아내였다면 그 유약함을 무능력으로 간주하여 바가지를 긁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가의 아내들은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기우뚱한 성향이 작품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발휘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편집자가 생활 속에서 자주 되새기는 점이기도 하다.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부담으로, 자칫 남편의 예술혼이 소진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2부에 등장하는 아내들은, 편집자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전쟁과 생활고 속에서도 묵직한 생명력을 발휘함으로써 ‘박수근표’ 여인상이 창조되게 한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국민화가’ 박수근은 붓을 꺾고 생활 속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닥친 위기상황과 경제적 활동을 책임지며 박수근을 자유롭게 해서 그가 독특한 화풍을 일궈내는 데 일조한 것이다.
반면에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은 김복순과 정반대의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이남덕은 이중섭이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요절하자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남덕이 한 인간으로서 이루고자 했던 꿈을 놓치지 않는다. 이남덕 또한 화가로서 꿈이 컸던 사람이었다. 이중섭을 만나 그녀가 조선에서 겪어야 했던 시련을 애써 못 본 척 할 순 없는 일이다. 이남덕과 아이들을 향한 이중섭의 고통은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기행을 일삼는 예술가 기질로 살았던 장욱진, 그의 아내 이순경도 남편의 기질을 인정하고 맞춰가며 현실을 책임진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서점 경영은 출판계에서 인정하는 공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조를 위한 희생으로만 점철되었다면, 좋은 성과까지 이루긴 어려웠을 터이다. 배경이 어떠했든 그 일에 꿈을 싣고 기질을 발휘할 때 결과또한 돈이 아닌 명예로 돌아오는 법이다. 이순경은 남편의 기질을 받아주느라 맥박이 흐려질 정도로 ‘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길을 찾아간 현명한 사람이었다.
박길웅의 아내 박경란의 노력도 실로 놀랍다. 그녀는 혼인신고와 사망신고를 2주일 안에 처리해야 했던 불운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편의 예술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가 없는 세상에서 29년 동안이나 남편의 작품을 지키고 있다. 또 평생 미싱자수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양수아의 아내 곽옥남의 삶에 대해서도, 그 희생 속에 감춰진 아내의 안목과 믿음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화가의 아내들은 어쩔 수 없이 버티며 희생한 것이 아니다. 그녀들이 남편이 화가로서의 삶을 견인해갈 수 있도록 노력한 데는, 무엇보다도 남편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편집자 역시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남편의 예술을 지지하는 마음은 동일하다. 그녀들의 마음도 편집자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이 아닌 한 인간을 향한 시선
“화가의 아내들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충실한 내조자’이기도 했지만 ‘예술’과 ‘생활’의 틈새에서 쉼 없이 고민하는 한 인간이었다. 그 모양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그들이 살아냈던 삶 자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이 책에서 그들의 고민과 성취와 좌절의 과정을 추적했다. 그러나 화가의 아내에 대한 ‘내조자/비내조자’라는 틀을 피하고자 했다. 그 구분의 잣대 자체가 이들의 삶을 제한시키기 때문이다. 이 잣대에서 벗어나 더 ‘낮은 시선’을 가지고자 했다. 시선을 땅으로 끌어내려 그들의 삶 자체에 눈을 돌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화가의 아내라는 사회적 요구와 어떻게 결합, 굴복, 거부, 저항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들이 화가의 아내에게 기대되는 ‘가혹한’ 요구들에 굴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삶을 지탱했는지를.”(「머리말」에서)
이는 화가의 아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지은이의 확고한 믿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표 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화가의 연인이나 아내에 대한 기존의 시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화가의 연인이나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을 보면 여전히 주인공은 화가들이다. 여인들의 삶을 조명한 것이 아니라 화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화가의 아내라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의 삶과 행적을 화가의 그늘에 두지 않고 양지로 끌어올려 당당히 주인공의 자리에 앉혔다. 화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가치를 바로세운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난 지금의 시대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적 영감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로 본다. (중략) 화가와 예술혼을 나누고 키워온 화가의 아내라는 존재는 일반인의 이런 작은 예술적 소망들에 힘을 북돋아준다. 이들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항상 넘나드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의 아내에 대한 논의가 가치 있는 이유를 지은이는 이렇게 밝힌다. 지은이의 말대로 화가의 아내만큼 대중과 예술의 징검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적격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의 아내에 대한 조명은 그 화가의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목 차
- 머리글 : ‘내조자’ 아닌 ‘적극적 예술창조자’였던 화가의 아내들
Ⅰ. 화가의 아내이자 예술의 동반자
전방위 예술 CEO│김환기의 아내 김향안
예술을 향해 돌진한 ‘여성 전업화가’│김기창의 아내 박래현
그리움을 글로 쓰는 화가│이응노의 아내 박인경
‘그림 신앙론’의 화가│하인두의 아내 류민자
* interview 류민자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동양화가│문신의 아내 최성숙
* interview 최성숙
Ⅱ. 화가의 그늘에서 찬란한 빛이 되다
액자 밖으로 나온 ‘한국 여인’│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숨 쉴 수 없었던 여성화가의 꿈│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동심의 예술가를 사수했던 도인│장욱진의 아내 이순경
* interview 이순경
화가의 아내에서 예술 파트너가 되기까지│박길웅의 아내 박경란
* interview 박경란
빨치산 화가를 보필한 미싱자수의 달인│양수아의 아내 곽옥남
* interview 곽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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