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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묵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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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구기호654.482/백68ㅈ
  • 저자명백인산
  • 출판사대원사
  • 출판년도2007년
  • ISBN9788936907
  • 가격35000원

상세정보

십년 전 일이다. 우리나라 사군자화의 발자취를 살피려고 자료를 찾았다. 너무 없어서 놀랐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분노로 바뀌었다. 연구자가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열매 가운데 오직 중국과 조선에서만 꽃피웠던 미술종류로서 그토록 소중하다고 배웠는데도 총화 해 낸 저술은커녕 몇 편 연구논문조차 영성하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조선의 묵죽>이란 제목만 보고서도 한참 들떴음을 고백해야겠다. 사군자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나무 한 가지에 집중하여 쓴 이 저술은 대나무화에 관련된 모든 것이라 할만큼 충실하고도 완벽하게 망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성취임에 틀림이 없다. 정작 작품이 남아있지 않은 때라고 해도 기록을 모두 찾아 그 향기를 누리게 하였고 또한 제법 작품이 있는 때를 대상으로 함에 있어서도 문헌을 충실히 인용하여 자취를 풍요롭게 채워두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이 작품이 왜 그 시대에 출현하였으며 그러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넉넉히 헤아릴 수 있도록 해두었다. 다만 조선말기 부분에 이르러 대나무와 별다른 인연도 없는 추사나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영향을 따져 청대화풍을 앞장세운 설정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뿐일 게다. 근래 미술사학의 풍요로움을 스스로 드러내 주는 <조선의 묵죽>이 세상에 널리 퍼짐으로써 왜곡된 채로 더럽혀진 문인화란 낱말이 서슬 퍼런 본래 뜻을 회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최열 | 미술평론가



간송미술관 연구원 백인산 선생의 박사 학위 논문인「조선시대 묵죽화 연구」를 재구성한 『조선의 묵죽』은 단순한 묵죽화의 나열이 아니라 조선시대 역사의 흐름에 따른 묵죽화의 변화 과정을 옛 문헌들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시대를 초·중·후·말기로 구분하여 그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이 당시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문헌과 작품을 통해 고찰한다. 또한 작가의 심오한 통찰력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묵죽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472페이지의 분량에 수십 편의 옛 문헌들과 수문의 《묵죽화책》, 이정의 《삼청첩》을 포함한 총 184점의 도판을 통해 고증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알고자 하는 독자들과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동아시아문화권의 이상적 인간상이라 할 수 있는 군자(君子)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대나무가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 대나무는 또한 은일(隱逸)이나 효행(孝行), 부녀자의 절조(節操), 길상(吉祥) 등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어 학자들에게 주요한 연구 소재가 되어왔다. 이러한 대나무를 화재(畵材)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당대 말엽부터이다. 그 뒤 여러 화가들에 의해 이론적, 기법적인 기틀이 확고히 다져지면서 문인화를 대표하는 화목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 묵죽화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화원화가들을 중심으로 북송대의 사실적인 화조화풍에 영향을 받았으며 소식(蘇軾, 소동파)과 문동(文同)에 의한 문인 묵죽화풍이 크게 유행했다. 

조선 초기에는 묵죽화가 성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자료나 현전하는 작품이 거의 없다. 몇몇 문헌자료와 청화백자 등 그 자료가 미비하지만, 조선 중기 묵죽화풍을 예시하고 그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조선 중기는 역사적으로 참으로 많은 혼돈과 불안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사상,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새롭고 다양한 변화들이 진행된 역동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문인화가들 뿐만 아니라 화원화가들까지도 묵죽를 주요 화재로 사용하였는데, 두 차례의 국란을 통해 고난과 혼돈의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묵죽의 대나무가 갖는 절개와 지조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이자 문인들이 공감하는 절박한 정서였기에 가능했다. 중기 최고의 묵죽화가는 단연 탄은 이정이다. 이정의 묵죽화는 그 뒤를 이은 중기 묵죽화가인 이징, 김세록, 허목, 이급뿐만 아니라 그 후 조선시대 묵죽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 후기는 성리학을 주창한 율곡계를 비롯한 사대부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회화계는 정선, 오영석 등에 의해 진경산수화가 크게 유행하였으나 유덕장, 심사정, 강세황 등의 문인화가들과 최북, 김홍도, 임희지 등의 화원·여항화가들에 의해 묵죽화 역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특히 유덕장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묵죽화가라 할 수 있는데 초기 이정의 묵죽화풍을 받아들였으나 차츰 자가 화풍을 이룩해 쇠잔해져가는 묵죽화의 명맥을 부흥시켜 심사정이나 강세황에게 계승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유덕장의 묵죽화풍을 이어 받은 심사정과 강세황은 남종문인화풍을 수용하고 『개자원화전』이나 『십죽재화보』 등의 명·청대 화보를 적극 활용하여 자기화시켰다. 후기 감성적인 화원화가와 여항화가의 묵죽화들에게도 남종문인화풍이 폭넓게 확산되었다. 이는 중서층의 사인의식(士人意識)이 확대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북, 김홍도, 임희지, 김득신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의 묵죽화는 남종문인화풍과 다소 거리가 먼데, 가슴속의 시정과 정취를 자신의 감흥과 감각의 흐름에 따라 붓끝에 실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말의 묵죽화풍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말기에는 진경시대 문화가 급속히 퇴조하고 청조의 학술과 문예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북학운동이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으며 문예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김정희의 영향으로 많은 직업화가들까지도 문인화풍으로 변모하였고 그에 따라 사군자 그림이 부흥하였다. 조선 말기 유명한 묵죽화가로는 문인화가인 신위, 김조순, 송상래가 있고 김정희의 뒤를 이은 허유와 조희룡이 있다. 신위는 강세황의 영향으로 청대 묵죽화풍을 수용하고 명·청대 화보를 임모하는 등 많은 노력으로 개성 있는 묵죽화풍을 이룩하였고 김조순과 송상래에 의해 그 맥을 이어갔다. 추사화파의 대표자격인 조희룡은 추사의 제자임에도 추사가 가장 우려했던 감성적이며 통속적인 문예성향을 가졌던 중인 출신의 화가로 추사 사후 문예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는 장승업으로 대표되는 화단의 변화로 묵죽화는 점점 사라져가게 된다. 추사의 학예를 계승한 문인인 민영익 역시 묵죽화보다는 묵란화에 천착하였으나 상해화단과의 교류를 통해 근대 묵죽화의 장을 열기도 했다.


지은이 | 백인산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1년 간송미술관에 입문한 후,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해 폭넓게 연구해왔다. 미술사 분야에서는 조선시대 회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며, 그중에서도 문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사군자화 연구에 몰두하여 많은 성과를 내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며 서울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동양의 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灘隱 李霆 연구? 「秋史 金正喜의 蘭盟帖 연구」 「宣祖年間 文人畵 三絶」 「秋史畵派의 墨竹畵 연구」 「朝鮮時代 蘭竹畵」, 「朝鮮中期 水墨文人畵 硏究」 등이 있고, 저서로는 『추사와 그의 시대』(공저)가 있다. 


목 차 
서론 

대나무의 상징성과 조선시대 이전 묵죽화의 전통 
대나무의 문학적 인식과 상징성 
군자의 표상 
은일과 한유의 공간 
정절과 효행의 매개 
벽사와 축수의 염원 
대나무의 의인화 
묵죽화의 기원과 정립 
죽화의 출현과 당대의 죽화가 
묵죽화의 기원과 오대의 묵죽화가 
묵죽화의 정립과 북송의 묵죽화가 
고려시대 묵죽화 

조선 초기 묵죽화 
문헌으로 본 조선 초기 묵죽화 
수문의 《묵죽화책》 
수문의 《묵죽화책》에 관한 논점과 한계 
수문 《묵죽화책》의 양식적 특징과 의의 
조선 초기 청화백자에 시문된 죽화 
조선 초기 묵죽화의 성격과 의의 

조선 중기 묵죽화 
사림의 성장과 묵죽화의 발전 
조선 성리학에서 피어난 조선의 묵죽화-이정의 묵죽화 
이정의 가계와 생애 
이정 묵죽화의 분석과 특징 
《삼청첩》과 40대 묵죽화 
자가 묵죽화풍의 완성(50~60대) 
법식의 초탈(70대) 
이정 묵죽화의 특징과 의의 
탄은 묵죽화풍의 계승과 분기 
이징의 묵죽화 
김세록의 묵죽화 
허목과 이급의 묵죽화 
조선 중기 묵죽화의 성격과 의의 

조선 후기 묵죽화 
조선 후기 묵죽화의 전개 
중기 묵죽화풍의 여향과 후기 묵죽화풍의 전조 -유덕장의 묵죽화 
가계와 생애 
유덕장 묵죽화의 연원과 특징 
유덕장 묵죽화의 이해와 의미 
남종문인화풍의 유행과 묵죽화풍의 변화 
심사정의 묵죽화 
강세황의 묵죽화 
중년기 묵죽화 
노년기(70대) 묵죽화 
강세황 묵죽화의 성격과 의미 
감성적인 화원화가와 여항화가의 묵죽화 
최북의 묵죽화 
김홍도의 묵죽화 
김득식의 묵죽화 
임희지의 묵죽화 
조선 후기 묵죽화의 성격과 의의 

조선 말기 묵죽화
김정희와 사군자 그림의 부흥 
신위와 문인화가의 묵죽화 
신위의 묵죽화 
명?청대 화보의 중시 
강세황의 영향과 극복 
청대 묵죽화풍의 수용 
자가화풍의 정립 
신위 묵죽화의 특징과 의미 
김조순과 송상래의 묵죽화 
청대 묵죽화풍의 영향과 자기화 - 추사화파 묵죽화 
조희룡의 묵죽화 
허유의 묵죽화 
조선 말기 묵죽화의 다원성- 김영과 송수면의 묵죽화 
상해화단을 이끌던 망국대부의 자화상- 민영익의 묵죽화 
조선 말기 묵죽화의 성격과 의의 

결론 

부록 
찾아보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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