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교수는 지금 미국 허드슨 강가에 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언론 신간소식란에 나혜석을 다룬 책이 나왔다고 해서 두 해 전에 나온 책을 다시 찍었던지 아니면 오보라고 생각해 한참을 웃었다. 어느 날 책방에 나가 보니 그게 아니다. 처음 보는 책으로, 서쪽에 있는 저자가 동쪽에서 저서를 냈으니 윤교수는 참 홍길동 같다며 크게 웃었다. 또 무슨 말이 있을까 펼쳐 보니 시작부터 심상찮다. ‘나의 첫사랑아! 지하에 묻혀 있는 나의 첫사랑아!’ 이게 무슨 말인가, 나혜석이 윤교수의 첫사랑이란 말인가! 가만히 읽어내려 가는데 그게 아니다. 나혜석의 첫 사랑 최승구에게 나혜석이 보내는 편지임을 깨우치곤 정말로 웃었다. 어디까지 읽는데 이게 모두 연애편지요, 나혜석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회고록이다. 나혜석은 미술사와 문학사, 여성해방운동사에 이르는 20세기 전반 주요 인물이다. 그러므로 분야별 연구자는 물론이고 전기작가, 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를 다룬 저서를 숱하게 내놓았다. 이제 여기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아예 사후의 나혜석이 다시 태어나 자신의 생애를 하늘의 목소리로 그토록 사랑하여 견딜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쏟아내고 있으니 가슴저린 이야기, 우리 모두 함께 나눌 일이다. 순식간에 울음으로 옮겨 그 웃음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사랑의 노래, 생애의 가락 한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최열 |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윤범모 교수가 화가 나혜석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그녀의 일생을 풀어 쓴 글이다. 화가 나혜석이 평생 잊지 못한 첫사랑 소월 최승구에게 보내는 자기고백적 편지 형식으로, 일본 유학, 결혼, 전람회 개최, 독립운동, 세계일주 여행, 이혼,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예술 창작, 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전 생애를 솔직하게 얘기한다.
나혜석의 자기 고백 속에서 우리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과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기 언어'를 가졌던 주체적 여성상을 만날 수 있고, 당시 그녀와 교유했던 고희동, 이광수, 염상섭, 김일엽, 이응노 등 예술가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국내 근대 서양미술사뿐만 아니라 근대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었던 나혜석이 '소지품 없음의 행려병자'로 사망한 것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연민이 묻어나는 책이다.
지은이 | 윤범모 윤범모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와 뉴욕대 대학원 예술행정학과에서 수학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으며, <중앙일보> 출판국 기자,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월간 가나아트> 편집주간, 실크로드 미술기행단 단장,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 광주 비엔날레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 심의 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경원대학교 미술대 교수, 서울대 강사, 고암미술연구소 소장, 동악미술사학회 기획이사, 한국화랑협회 미술품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근대미술의 형성> <중국대륙의 숨결>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 <미술관과 대통령> <근대유화 감상법> <페르시아의 초승달: 실크로드미술기행> <한국근대미술> <평양미술기행>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 왜 이 책을 쓰는가
나의 첫사랑아! 나, 오늘 결혼한다 죽은 애인의 무덤으로 신혼여행 가기 춘원 이광수 혹은 내 주위의 남자들 그는 과연 나의 남편인가, 오빠 친구 김우영 군수의 딸 그러나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다 같은 또래의 처녀 혹은 아버지의 첩 최초의 여성 유화가가 되다 미술학교의 생활과 성적 최초의 여성 소설가가 되다 여성 소재의 만평을 신문에 연재하다 3.1 민족해방운동 참가로 감옥에 가다 여자라는 것, 결혼이라는 것 아니, 딸을 낳다니! 아니, 어머니가 되다니! 서울에서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개최한 화가가 되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만주에서 살다 조선미전에 출품하다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다 연인인가, 원수인가, 파리에서 최린을 만나다 악마의 수렁으로 빠지게 한 편지 한 장 이혼, 빈손으로 거리에 쫓겨나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합니다 그래도 구원처는 미술밖에 없는데... 원망스런 봄밤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고 오직 취미다 이성간의 우정과 독신여성의 성생활에 대하여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나는 더욱 처절하게 파멸되어야 한다 출가하여 승복을 입을 것인가 김일엽의 숨겨 놓은 아들과 고암 이응노 이야기 친일보다 은둔을, 일제 말 암흑기를 보내며 대자유인의 초상 조용히 떠나자, 아무도 모르게 길에서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