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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서서

  • 청구기호811.6/이66ㅁ
  • 저자명이우환 지음 ; 성혜경 옮김
  • 출판사현대문학
  • 원서명立ちとまつて"
  • 출판년도2004년
  • 가격10000원

상세정보

『여백의 예술』로 심오한 예술론과 글쓰기의 새로운 전형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보인 바 있는 이우환 화백의 첫 시집 『멈춰 서서』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산문체의 예술관을 새로운 형식의 시로 신선하게 옮겨온 이 시집의 작품 한 편 한 편은 그대로 응축되고 정련된 예술론으로 읽힌다.
그림과 시가 한 뿌리에서 태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낯섦의 미학을 구현하는 시인의 팽팽한 긴장이 매 작품마다 작용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이나 화집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이우환 화백의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어떤 어떤 미학적 사유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현장의 모습과 느낌과 색깔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즉, 사물을 응시하는 한 미술가의 “눈길”을 통해 이 시집 속에서는 광대무변의 상상적 공간이 펼쳐진다. 생물 . 무생물을 초월하는 눈길의 교환은 모든 존재들과의 완벽한 화해의 순간을 이루고, 무화의 세계를 거쳐 신선한 양태의 존재를 태동시킨다. 「눈길」이라는 다음과 같은 전문은 응시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내가 돌을 보고 있자니 눈길은 돌 저쪽으로까지 꿰뚫어나가고 동시에 돌의 눈길 또한 내 등뒤로까지 꿰뚫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 개의 눈길이 서로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나도 돌도 없고 투명한 공간만이 펼쳐져 있었다

이우환 화백의 그림과 일상에서의 응시는 인간의 일방적인 ‘거만한’ 응시가 아니다. 그에게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의 생명을 느끼는 열정적인 영혼이 있다. 그러기에 상호 응시의 교통이 가능하다. 그 교통함은 그러나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그래서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순도 높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 새로운 차원에서, 그 각자의 대상들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포착하는 것, 그것이 이우환 화백의 그림이며, 미술작품이고 또한 시이다.
인간을 향하는 그의 자세 또한 다르지 않다. 그에게로 가면 인간이 만들어 낸 보편적인 개념은 마치 골동품처럼 변해버린다. 「사랑」이라는 작품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 애틋해서 끈끈해지는 그 감정을 부정하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그녀를 사랑하는 “나는 그녀를 비우고” 나를 사랑하는 “그녀는 나를 비운다”. 그리고 맑게 환기된 나와 그녀는, “그녀는 그녀가 좋고/나는 내가 좋다.” 이렇게 시인의 사랑은 사랑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어 종교적 의미의 사랑까지를 포괄한다.
그러한 응시의 시원은 마음 한켠 자리하고 있는 유년의 고향, 바로 어머니임을 밝히고 있다. 예술의 탯줄이었던 어머니는 산골 마을에서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쌀을 씻”고 있었고, 그는 어머니에게 “언제나 쌀만 씻고” 있어 무료하지 않느냐 묻는다. 그때 어머니는 집 앞의 “저 나무가 매일 똑같아 보이냐”고 되물음 한다. 아마도 이우환 화백의 ‘응시’는 그 시점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즉물적인 만남, 상호조응이라는 개념이 언어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시집은 언어의 원시성으로 돌아가려는, 돌아가서 언어가 언어로 보여줄 수 있는 의미를 시인은 보여주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쓴다는 것은 씌어지지 않은 것을 향한 끊임없는 호소”라는 시인의 말은 갇혀 있는 문학, 갇혀 있는 예술을 구출해내려는 시인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로 들린다. 이 시집은 그런 점에서 한 예술가의 영혼이 영혼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이 세계와 마주서기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는 내가 좋고

테이블을 마주하고
미소 지으며 식사를 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울리며
식사는 무아지경이 된다.

나는 그녀를 비우고
그녀는 나를 비운다

식사가 끝났을 때 그녀와 나는
자리가 바뀌어 있다.

그녀는 그녀가 좋고
나는 내가 좋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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