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대한민국예술원 강당에서 열린 제10회 한국미술저작상 시상식장에서 마주친 수상자 김리나 선생의 표정이 그리도 즐거워 지켜보는 사람마저 기쁘게 하고 있었다. 그는 불교조각을 전공하는 학자로 많은 제자를 키워냈는데 이번에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를 내 놓은 정은우도 그를 '학문에서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닮고 싶은 진정한 스승님'이라고 극구 찬사를 올리고 있으니 복이 많은 연구자임엔 틀림없다. 그런 스승을 둔 제자 정은우의 이번 저서는 무엇보다도 고려후기 불상을 대상으로 삼은 열매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내가 지금껏 읽은 한국조각사는 한결같이 시대가 흐를수록 쇠퇴와 타락이 심해지고 있다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들뿐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써 어떻게 과학기술문명과 정신세계가 발전을 거듭하는데 유난히 조각 분야만 그렇게 퇴보를 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불교미술의 꽃은 아무래도 불상인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러 지배계급이 불교를 배척했기 때문에 귀족문화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여 더 이상 장엄한 미감을 유지하기 어려웠음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신라불상을 미감의 절정에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게다. 미감은 시대마다 바뀌는 것이고 양식 또한 변천하는 것일진대 그 변화를 두고 쇠퇴, 타락이라고 한다면 그 말하는 사람은 그저 신라사람일뿐이니 고려나 조선 사람은 아니겠다.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를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으니 엉뚱한 독서법이긴 하거니와 불교조각의 후원자에 대한 연구를 가장 재미있게 새겼다. 후원자를 통해 성격을 헤아려 나가다 보니 양식도 또한 조금씩 이해할 만했던 것이다. 특히 서일본과 대마도 소재 불상에 대한 글을 펼쳐 보니 14세기에 왜구들이 한반도 전지역에서 노략질하며 불상을 어찌 그리도 많이 약탈해갔는지 끔찍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지난 20세기에는 아예 한반도를 점령하고서 도굴, 약탈을 해 갔던 터이므로 내 생각에 미술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앞으로 현해탄을 앞 냇가쯤으로 여겨 자주 건너다닐 일이다. 덧붙이자면 근래 안지원의 『고려의 국가불교의례와 문화』를 살피고 있는 터에 정은우의 책과 짝을 이루어 포개 두고 있으니 뿌듯하여 고려시대 문화사를 한꺼번에 헤아리려는 이가 있다면 두 권을 함께 구하시길 바란다.
최열 | 미술평론가
전통과 고려적인 미감을 바탕으로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독자적인 불상을 창출한 고려 후기의 불교 미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당시 불교신앙과 불교조각의 사회성을 밝히고, 고려 후기 불상을 유형별로 분류, 그 특징과 시원을 서술함으로써 고려 후기만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규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서일본에 남아 있는 개별적 작품들을 고찰함으로써 양식 및 조형적 아름다움은 물론 정치, 사회의 변화와 함께 불교조각의 도상과 양식의 변천을 이해하고자 한 것은 이 책의 출간이 갖는 의의라 할 수 있다.
고려 후기 불교조각의 특징 고려는 400여 년 동안 한 왕조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오대, 요, 북송, 금과 남송, 원, 명초에 이르는 수많은 나라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불교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불교신앙 역시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며 금동불, 석불만이 아니라 이전에는 잘 없던 은제불, 건칠불, 목조불 등 재질이나 양식 면에서 다양하면서도 세련된 불상을 창출하였다. 이에 따라 이전의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다양하면서도 단순하며,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새로운 미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고려 후기의 불교조각은 고려 전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이전과 다른 화려하고 정교한 표현의 이색적인 작품들이 공존하는 시기다. 이는 불교미술의 후원자들이 왕실은 물론 사대부, 유학자, 중국 원의 황실과 귀족에까지 포함되어 다양해지며 미술의 조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의 불교조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서일본 지역에 많이 남아 있으므로 왜구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과도 연관된다. 특히 대마도를 비롯한 이키, 규슈 지역에는 조각 기법 및 크기, 조형성에서 우수한 고려 후기의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접근이 용이함과 더불어 왜구의 침탈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고려후기 불교조각에 대해 연구 발표했던 논문들을 고려 후기 불교미술의 후원자(1편), 대외교섭 및 양식적 특징(2편),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앙과 지역성을 가진 작품(3편) 등으로 분류하여 엮었다. 먼저 1장은 불사의 주체인 후원자의 다양한 구성을 문헌 기록과 복장물에 기재된 인물들을 분석함으로써 살펴보고, 2장에서는 고려 후기 불교조각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전의 전통양식의 계승 문제와 더불어 송이나 요, 원과의 대외 교섭적 관점에서 새로운 불상 양식의 수용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양식에 따른 유형을 분류하고 그 특징을 서술하며, 원과의 관계에서 유입되는 라마교 불상의 수용 과정과 요소들도 독립적인 논문으로 고찰했다. 3장에서는 고려 후기 불교미술 가운데 지역성을 고찰할 수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한 개별적 작품들을 주로 고찰했다. 특히 수도였던 개성부에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과 지방에서 조성된 미술품들을 살펴보았다. 개성부에서 제작된 불교조각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경천사탑과 여기에 부조된 불상들을 들 수 있으며, 특히 탑신1층에 조각된 삼세불회를 집중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당시 원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유입되는 새로운 도상을 고찰하였다. 당시의 시대성을 강하게 반영하는, 원과의 관계에서 상정되는 라마탑과 사리구도 살펴봄으로써 당시 유행했던 금강산 신앙과 불교조각에 원과 관련된 양식이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지은이 | 정은우鄭恩雨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감정위원, 충청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조계종 총무원 성보보존위원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고려전기 금동보살상 연구>(2001), <개성 관음굴 석조보살상과 송대의 외래요소>(2007),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고려중기 금동보살입상>(2007) 등이 있다.
목 차 책머리에
1장 문헌과 불복장을 통해 본 후원자 Ⅰ. 고려 후기 불교미술의 후원자 Ⅱ. 고려 후기 불상의 복장물과 후원자
2장 전통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불교조각 Ⅰ. 고려 후기 불교조각 연구 Ⅱ. 고려 후기 보살상 연구 Ⅲ. 고려 후기 라마도상의 불교조각
3장 불교미술의 중앙과 지역성 Ⅰ. 고려 후기 보명사 금동보살좌상과 왜구의 관계 Ⅱ. 경천사지 10층석탑과 삼세불회고 Ⅲ. 대마도 원통사의 금동약사여래좌상 고찰 Ⅳ. 고려 시대의 선각아미타석판불에 대해 Ⅴ. 수덕사 대웅전의 14세기 목조대좌 Ⅵ. 고려 후기 라마탑형 사리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