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그리운 시절에 살다
- 청구기호816.6/최65ㄹ
- 저자명최용건 지음
- 출판사파주:푸른숲
- 출판년도2004년
- ISBN8971844213
- 가격12000원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마음으로 사는 라다키들,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에 관한 내밀한 초상
1996년 여름, 도회 생활을 청산한 뒤 강원도 산골 마을 진동리에 ‘하늘밭 화실’을 열고 약간의 경작과 더불어 민박을 치며 안분지족하는 삶을 살던 화가 최용건이, 작년 봄 다시 진동리 생활을 접고 인류 최고의 오지라 불리는 라다크로 훌쩍 떠났다. 매너리즘에 빠진 그림에 활기를 불어넣고, 재화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라다키들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의 참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일 년간의 라다크 생활을 통해 그의 영혼과 육신은 다시 활기를 얻었고, 그림은 필획이 활달해지고 불필요한 운필이 적어지는 등 생명력이 폭발하게끔 변모했다.
《라다크, 그리운 시절에 살다》에는 화가 최용건의 이러한 ‘소박한 삶’에 대한 소망과 예술가로서의 고민이 오롯이 들어 있다.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의 재미난 풍속은 물론,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재의 라다크 사회, 장엄하리만치 웅장한 대자연 등, 《오래된 미래》의 생태환경적인 면에서 벗어나 한결 더 살갑고 정겨운 라다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더불어 글과 함께 펼쳐지는 50여 점의 수묵화는 그러한 라다크의 모습을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향기로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몸은 높고 마음은 낮다
흔히 라다크를 ‘인류 최고의 오지’이자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정신의 낙원’이라고 한다. 해발 고도 3,500미터를 훌쩍 넘어선, 공기와 물은 물론 거의 모든 자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삶의 극지에서도 사람들이 365일 언제나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미 그 ‘행복’을 찾아 도회의 생활을 박차고 강원도 산골 마을에 둥지를 튼 전력(?)이 있는 최용건 화백이, 다시 그 둥지를 떠나 라다크로 떠난 것도 그 ‘행복’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서였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제는 닳고 닳아 대중잡지 표지의 여배우 모습만큼이나 통속적으로 여겨지는 그 화두를 품고 나는 히말라야 너머 땅 설고 물 선 나라, 머나먼 라다크까지 다녀왔다. 도인들의 삶이 거창한 도의 경지에 이름에 있다면 나와 같은 범부의 삶은 오로지 그 목표가 소박한 행복에 있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에서
욕심 없는 삶을 동경하면서도 가진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소박한 삶마저 주저 없이 청산하고 떠난 그의 삶은 그래서 더욱 질박하고 풍요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라다키들과 함께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마음으로 사는 그의 모습은, 결국 행복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라다키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우리는 모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행복 지수가 그들보다 낮은 이유는 그러한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맑은 도덕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적인 신선한 기풍이 진작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가 찾는 샹그리라가 히말라야 너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임을 알게 될 것이다. ― 본문(262쪽)에서
그리운 시절로 떠나는 시간 여행
집 앞을 흐르는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고 멀리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마시는 라다키,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고 그 분뇨는 밭의 거름으로 쓰는 라다키,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라 치면 품을 아끼지 않고 서로 돕고 사는 라다키……. 이처럼 최 화백이 살다 온 풍경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다 보면, 빠르게 질주하는 세월의 속도 앞에서 이제는 그 빛깔마저 희미한 우리의 옛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소와 염소와 양과 당나귀를 기르고, 양배추와 보리쌀과 당근을 먹고 차를 마시며 사는 라다키들……. 최 화백은 일 년간 그들의 집에서 곁방살이를 하며 고추장으로 밥을 비벼 먹고 부침개도 부쳐 먹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라다크의 아내들이 그러하듯 히말라야에서 흘러 내려온 차가운 유라에서 빨래를 하며 살았다. 그런 모습들을 읽다 보면 뭔가 오래 묵은 풍경 하나가 오롯이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흙방에서 태어나 평생 흙을 만지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 나의 정다운 옛사람들의 삶과 라다키들의 삶이 고스란히 겹쳐진 풍경이다. 그리하여 나는 글을 읽는 내내, 혹은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라다크의 푸른 하늘 아래 사는 수많은 소남과 앙모들에게 하염없는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공선옥(소설가)
오래된 미래, 그 후…
라다크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스웨덴의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다. 책이 발간된 후 독특한 자연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라다키의 모습은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 우리 삶의 전범으로 회자되기 시작했고, 이후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라다크는 고요한 동화 속 세상 그 자체이다. 그러나 최용건 화백은 그 동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개방 이후 변모해가는 라다크 사회의 풍경을 조금의 꾸밈도 없는 생생하고도 내밀한 목소리로 전한다.
비디오를 다 보고 나자, 호지 여사는 농경사회의 모든 가치를 이상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다크에 처음 발을 디뎠던 1970년대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라다크인의 삶에 매료된 호지 여사의 나이브한 꿈이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어찌 보면 라다크 사람들의 바람이나 기본 정서와는 다소 유리된 어색한 사업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 호지 여사는 과거 1970년대 라다크의 삶을 그리워하며 나아가 개방 이전의 삶을 이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삶과는 무관하게 살아왔으며 현재 또한 반 생태적 산업사회가 조성해놓은 가치 속에서 삶을 불태우고 있다.
― 본문(261~2쪽)에서
개방 전 라다크 사회에서 재화라는 것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 고정적인 것이었다. 재화라고 해야 물려받은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자유로워진 오늘날에는 히말라야 너머 널려 있는 재화나 그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유무형의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되었고, 또한 세상이 다변화되어 그러한 기회를 남보다 먼저 많이 차지하기 위해선 교육을 통한 역량이 배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개방 후 격변기를 맞아 라다크에서의 교육열이 점차 과열화되고 있는 것이다. ― 본문(222~3쪽)에서
특히 그동안 생태.환경의 본보기로만 살펴지던 라다크에서 벗어나, 가까운 이웃의 눈으로 전하는 일상적이면서도 다소 엉뚱한 라다키들의 모습은 입가 한가득 웃음을 머금게 하는 푸근함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풍습은, 남편이 산모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갈 때는 개울을 직선 거리로 건너서는 안 되고 반드시 아래 하류로 내려가 건너야 된단다. 이는 아이를 낳으면 집 앞 개울을 건너는 길목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시기하는 나쁜 악령이 숨어 지내기에 그 악령을 피해 멀리 아래쪽으로 내려가 개울을 건넌다는 것이다. ― 본문(62쪽)에서
라다크는 인구가 적어서인지 이름의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은데, 몇 안 되는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이름은 우선 남자이름으로는 소남이고 여자 이름은 앙모다. 특히 앙모는 집집마다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모두 앙모다. 그래서 때로는 뒷집 앙모가 앞집 앙모 집에 놀러 와 앙모끼리 텔레비전을 보다가 심심하면 그들의 친구인 앙모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 본문(22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