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만은 참으로 오랜 벗이다. 너무 오래여서 잊어버릴만도 하지만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인상의 강렬함 탓이겠다. 낭인 시절, 어떤 후배가 유인물을 쥐어준다. 제목이 '민족미술'로 시작하는 데 그 땐 이런 낱말을 쓰는 이가 흔치 않았거니와 게다가 글쓴이가 지금 학생이라니 감탄스러웠다. 바로 그 글쓴이 최정해가 지금 최태만이다. 세월이 얼만큼 흐른 뒤 최태만을 만났고 그 뒤 단 한번도 변함 없는 인연인 줄은 이 때만해도 몰랐다. 내가 김복진 선생을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인데 사건을 만들곤 했던 윤범모 형과 뜻이 같아 근대미술사학회며, 민중미술15년전이며, 김복진을 기리는 일을 벌이던 1993년 무렵 거의 매일 최태만과 더불어 나날을 보냈더니 비로소 이 사람이 누군지 깨우쳤거니와 이 또한 인연이란 게다. 유난히 조소예술에 깊은 조예를 드러내던 최태만과 어울리며 저 김복진에 대한 뜻깊은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어느덧 동료였고 동지가 되어갔다. 그 때부터 최태만은 근현대 비평사, 조각사 저술을 꿈꾸고 있노라 했다. 나 또한 뜻이 같아 비로소 도반(道伴)의 반열에 이르렀는데 이제야 그 도반임을 증거하는 저술을 내놓았다. 살펴 보니 김복진으로부터 요즘 젊은 작가에 이르는 방대한 연대기를 매끄럽게 다듬은 역작이다. 일찍이 이런 저술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조각가들인데도 계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더욱이 오늘에 이르면 혼란스러울 뿐이니 역사의 맥락을 새겨놓은 지도가 절실했던 게다. 서론에서 현대조각이 '물질에 포위' 당한 게 아니냐고, '과거 사물이 새 사물로 대체되었을 뿐' 아니냐고 질문하는 최태만의 눈길에 포섭 당한 저 20세기 조소예술가들의 초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제 또 다른 누군가가 다른 눈길로 다른 계보도를 그릴 즈음이면 아마도 이 저술의 가치가 더욱 눈부실 것이다. 덧붙여 이 저작이 세상에 나오는데 모란미술관 이연수 관장의 역할을 말해 두어야 한다. 이연수 관장의 지원 아니었다면 어떤 출판사도 나서지 않을만큼 수요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최열 | 미술평론가
한국 현대조각의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김복진이 일본에서 근대 조각을 배우고 돌아와 조선에서 작품을 처음으로 발표한 1925년부터 2000년대의 함진에 이르기까지, 한국조각의 전개과정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정리하면서 특징적으로 부각되는 작가의 작품을 집중 분석했다. 한국 현대조각의 역사를 집약한 만큼, 752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페이지에 컬러 화보를 실어 작품의 질감과 색채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기존의 관련 저서들이 흑백 도판으로 처리했던 관례와는 대조적이다. 부록에는 현재 한국조각계의 첨예한 문제인 소위 1퍼센트 법과 관련된 환경조형물에 대한 지은이 나름의 진단과 대안을 실었다. 또 1901년 김복진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1999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조각사 연표를 수록해 조각계와 미술계 전체, 그리고 사회 전반의 변화와 주요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조각 전문 미술관인 모란미술관과 출판사 아트북스가 협력하여 조각 관련 학술출판을 지원하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됐다. 모란미술관은 근대 조소예술의 태동기부터 현대조각까지 한국 근현대조각사를 점검하고자 하는 취지로 모란미술관 총서 외에도 모란미술관 작품집을 발간해왔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결과물이다.
지은이 | 최태만 1962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4년 계간 「예술계」를 통해 등단한 이후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조소예술과 관련한 많은 글을 썼다. 1992년 제1회 조각평론상을 받았고, '제10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2004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전시감독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서울산업대 조교수 등을 거쳐 2007년 현재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소통으로서의 미술>, <한국조각의 오늘>, <미술과 도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청춘, 안창홍>, <미술과 혁명(1998 중앙일보 우수도서 100선,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미술과 사회적 상상력>, <한국현대조각사연구>, <다섯 빛깔 룽다와 흰색 까닥 - 미술평론가 최태만의 티베트 미술 순례기>, <한국 현대조각사 연구> 등이 있다.
목 차 책머리에
I. 조각이란 무엇인가 1. 조각의 의미와 조형요소 2. 현대조각의 형성과 전개 II. 한국 근대조각의 형성과 전개 1. 근대조각과 근대성 2. 김복진과 근대성 3. 근대기의 조각가들 III.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전후의 조각가들 1. 해방의 인식과 한국미술 2. 주요 작가와 작품 3. 기념조형물의 문제 IV. 현대조각의 형성과 전개 1. 추상조각의 형성 2. 김종영의 절제된 순수미 3. 김정숙의 유기적 추상 4. 현대조각으로의 전이 5. 금속의 시대 6. 송영수의 용접조각 7. 신철기시대 V. 앵포르멜과 추상조각의 확산 1. 앵포르멜과 생명주의 조각 2. 용접조각과 엥포르멜 3. 앵포르멜 조각의 확산 4. 1960년대 조각단체의 활동 VI. 한국의 모더니즘조각, 개념과 물질의 승리 1. 유기적 추상조각의 지속 2. 모더니즘의 변용과 미니멀리즘조각 3. 포스트 미니멀리즘 4. 질량에서 개념으로 VII. 인간과 형상 1. 한국 구상조각의 전개와 특징 2. 고독한 은둔자, 권진규 3. 최종태, 담졸한 단순미 4. 한국 구상 인체조각의 흐름 5. 1980년대 한국사회와 미술 6. 현실비판적 조각 7. 형상성의 회복 8. 휴머니즘의 등불과 그림자 9. 풍자와 해학의 수사학 VIII. 한국조각의 확장과 현재 1. 설치미술, 현대미술의 출구 혹은 종착지 2. 예술과 기술공학 3. 한국조각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