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화도록 7)유희삼매 : 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
- 청구기호650.911/유95ㅇ
- 저자명유홍준, 이태호 공편
- 출판사학고재
- 출판년도2003년
- ISBN8956250219
- 가격23,000원
선비는 어떻게 살았을까
선비는 조선시대 5백 년의 역사가 낳은 가장 자랑스럽고 뿌리깊은 가치개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날로 치면 지식인에 해당될 이 선비라는 지칭에는 문인과 학자 들이 지녀야만 할 숭고한 도덕과 올바른 처신 그리고 자기 도야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선비가 어떤 자세로 살았는가’는 이번에 출품된, 영조시대의 문인 한정당(閒靜堂) 송문흠(宋文欽)의 글씨 〈행불괴영 침불괴금(行弗愧影 寢不愧衾)〉 즉 “행동할 때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잠잘 때는 이부자리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라는 경구에서 남김없이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비가 항시 그렇게 엄격한 기강 속에서 경직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시 공자님 말씀대로 “도를 목표로 하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는(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한편으로 예에서 노니는 것, 즉 “유어예(遊於藝)” 할 줄 아는 여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 출품된 송하옹(松下翁) 조윤형(曺允亨)의 〈유희삼매(遊戱三昧)〉라는 네 글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글씨를 보면 송하옹이 명필인 백하(白下) 윤순(尹淳)의 사위이자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장인이어서인지 반은 백하를 닮았고 반은 자하의 풍이 있습니다.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간찰
선비의 예술은 편지, 시, 그림 등 다양한 장르로 전합니다. 그 중 선비의 편지에서는 풍부한 감성과 자상한 마음씨를 살필 수 있습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남언경(南彦經)을 떠나보내며 적은 시에서 “학문이 비록 어려운 것이나 자세히 보고 전체를 살펴 우리 늙은이들을 감탄하게 하기 바란다”고 적고 있으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애제자의 미망인에게 친정의 상사(喪事)에 대해 위로하며 너무 슬퍼하여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당부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조(正祖)가 은퇴한 전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에게 건강을 걱정하며 적은 윤기 있는 행서체의 간찰에서는 학자 군주의 면모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사촌형의 부음을 듣고 조카에게 보낸 통곡의 편지에서는 가문을 지키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아비의 통한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문인화의 꽃, 사군자
선비 예술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갖가지 소재의 문인화를 통해서입니다. 특히 사군자는 선비들이 자신의 인품 또는 성격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즐겨 그림의 소재로 삼았는데, 이번 전시에는 묵죽화의 일인자였던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준경하면서도 유려한 필치가 유감없이 살아 있는 〈묵란도(墨蘭圖)〉에서부터 음영을 섬세하게 표현한 몽인(夢人) 정학교(丁學敎)의 〈석란도〉,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이 운현궁 시절에 그린 전형적인 석란도와 운미(芸楣) 민영익(閔泳翊)이 상해 시절에 복건성에서 자생하는 건란을 사생하여 완성한 운미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맞게 그리기보다 군자의 노닒을 따라 흔쾌히 그린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의 〈선면(扇面)묵란도〉와 〈묵란도축(軸)〉, 선비의 멋과 취미를 온몸으로 체득한 마지막 선비 화가라 할 수 있는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의 〈묵란도〉에 이르기까지 난초를 그린 작품이 가장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밖에 매화 치는 법에서 독창적인 경지를 열었다는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제평이 붙어 있는 창강(滄江) 조속(趙涑)의 〈묵매도(墨梅圖)〉와 좋은 종이와 먹이 있으면 가장 먼저 매화를 떠올렸다는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의 〈홍매도(紅梅圖)〉 그리고 추위를 이기고 맨 처음 꽃을 피우는 매화를 괴석과 함께 개성미 넘치게 그린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의 〈석매도(石梅圖)〉와 월북한 동양화가 일관(一觀) 이석호(李碩鎬)의 〈매화와 수선화〉는 매화를 소재로, 수운(岫雲) 유덕장(柳德章)의 생동감 넘치는 〈신죽(新竹)〉과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이 술 취한 뒤에 쌓인 마음을 풀고자 그린 〈묵죽도〉 그리고 농묵을 대범하게 구사한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묵모란도(墨牡丹圖)〉 〈묵국도(墨菊圖)〉는 대나무와 국화 그리고 모란을 통해서 선비의 지조와 품격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서·화가 하나가 된 그림들
그린 이의 필체로 시구와도 같은 화제가 붙은 산수화도 여러 점 소개됩니다. 시를 쓰고 싶었으나 뭉게뭉게 진을 친 구름과도 같은 그림이 되었다는 능호관의 〈와운(渦雲)〉, 지리산의 벗 이인상을 찾아갔다가 본 고란사의 풍광을 말로 전하기 어려워 마른 먹으로 대략 그린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의 〈고란사도(皐蘭寺圖)〉, 바빠서 옷깃 헤치고 앉아 있을 겨를 없어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그린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피금정(披襟亭)〉은 화제가 곧 그림의 내력을 알려줍니다. 또한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의 봄날 새벽 도성 앞 풍경을 묘사한 〈북궐조무도(北闕朝霧圖)〉와 나귀를 멈추고 담소를 나누는 두 문인을 그린 〈정려상화(停驢相話)〉, “흙벽에 종이창을 내고 종신토록 포의 차림으로 시와 음악을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그린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갈대밭 속의 배 위에 선비를 상징하는 학 한 마리가 거문고와 서책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의 〈학선도(鶴船圖)〉 등의 작품에서는 시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술활동의 결정체, 화첩
완벽한 인격체를 지향했던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그것을 애장하고 감상하며 서로의 감성을 교감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루고자 했는데,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시화첩도 이번에 여러 점 출품되었습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구학첩(丘壑帖)》이 발문과 함께 발굴되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나, 전언으로만 알려져 오던 《석농화원》의 외국 그림 〈낙타도〉 〈미인도〉 〈술타니에 풍경〉이 석농 김광국의 제평과 함께 소개되는 일은 미술사에서 되짚을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대의 문사이자 명필인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지봉(芝峰) 이수광이 지방관으로 떠나는 김덕겸(金德謙)에게 석별의 정으로 써준 송별시를 모은 《김덕겸 송별시첩》,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강진 유배중에 닳아 헤진 자신의 옷을 잘라 고향 남양주와 벗 성화를 생각하며 지은 칠언절구 10수를 적은 시첩에서는 옛 선비의 벗을 생각하는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화첩,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친정조카로 뒤에 근대 미술의 주축이 되는 후학들을 키운 소하(小荷) 조성하(趙成夏)의 화첩 등도 전시됩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명품들
오정(梧亭) 이의병(李宜炳)은 준경한 행서체로 충무공 이순신의 화상찬에 “공의 마음은 만세토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엄숙한 초상이 전해져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네”라고 적고 있어 어딘가에 있을 듯한 초상화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며, 백하 윤순은 동국진체로 “내가 운명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순리에 맡겨 임종을 기다린다면, 운명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텅 빈 허공 같구나”라는 힘 있는 글을 남겼습니다. 또한 선비들의 모임은 자주 그림의 소재로 등장했는데, 겸재 정선은 후한대의 명사 진식(陳寔)과 순숙(荀淑)의 만남을 그린 〈취성도(聚星圖)〉를, 혜산(蕙山) 유숙(劉淑)은 송대의 고사를 주제로 한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를 그려 이상적인 문예 교류와 아집(雅集)의 모습을 전했습니다.
큰 규모의 병풍 작품 두 점도 선보입니다. 신정왕후 조대비(趙大妃)가 “성실함과 닦음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의 《묵서(墨書) 10폭 병풍》과 고급 채색안료를 사용하여 섬세한 필치로 그린 작자 미상의 《책가도(柵架圖) 8폭 병풍》이 그것입니다.
학고창신의 전통을 잇는 작품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퇴계 이황이 쓴 주희(朱憙)의 〈학고재명(學古齋銘)〉에서는 옛 것을 배운다는 의미를 “밤에는 생각하고 낮에는 행동하며, 묻고 배워서 전범을 따른다. 오늘을 버리고 옛 것을 배울 따름이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것을 지키는 학고(學古)의 정신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창신(創新)의 정신과 더불어 선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였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선비가 사라진 근대와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우리의 근대 미술에서도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분들 중에는 옛 선비들의 예술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성공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근원 김용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묵로(墨鷺) 이용우(李用雨),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의 작품은 선비취미가 현대적으로 가장 잘 계승된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희삼매―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전을 기획하면서 근대·현대 미술까지 연장하여 전시회를 꾸민 것은 학고재가 ‘학고창신’의 견지에서 ‘전통과 창작’을 동시에 아우르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