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후 우리 미술관은 19세기 이전 미술가들의 개인전을 개최하지 않는다. 개인전시의 기쁨을 누린 옛 화가는 기껏 정선, 강세황, 김홍도, 신위, 김정희 정도일 것이다. 동시대 미술인에겐 지나칠 만큼 후하게 대접하면서도 옛 미술인에겐 왜 이처럼 냉정한지 모르겠다. 이런 세태인데도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치 허련 이백년전을 열고 있으니 내가 절로 즐겁다. 마침 허련에 깊이 빠져든 연구자 김상엽이 ‘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불꽃’이란 수식어를 내세운 <<소치 허련>>이란 책을 내놓았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펼쳐 빠져들었다. 매끄러운 문장 탓일까 너무 빨리 읽어버려 아쉽거니와 좀더 두툼하게 쓰지 싶은 마음이 들정도다. 나는 청소년시절을 광주에서 보냈으므로 호남 남종화 산실 진도 운림산방에 대한 숱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운림산방의 주인 허련은 또한 후손을 화가로 성장시켜 그야말로 남도회화의 조종으로 우뚝 섰거니와 실제로 나는 도시 어느 건물에서나 수묵담채화를 목격했고 그 때마다 허련을 떠올려야 했다. 이게 아주 일상화되다보니 철들면서는 한동안 싫어하기조차 했던 게다. 그래서였을까, 허련에 깊은 관심 갖지 못하고 훌쩍 자라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연구지 형식을 지닌 <<소치연구>> 제1호가 나와 놀랐는데 분명 김상엽이 그 주도자가 아닌가 싶었고 그런 그가 이제 허련의 일대기를 펼쳐 놓으니 참으로 그 열정에 감응하는 바가 있음을 느낀다. 글이야 쉽지만 담긴 내용의 무게는 가볍지 않고, 책이야 얇지만 실린 이야기는 가없이 넓다. 오랜 세월 공부를 쉼없이 해온 연구자의 실력이 담겨 있는 저술이란 그런 것인데 지금 김상엽의 <<소치 허련>>에서 그 모습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나는 김상엽이란 연구자가 꿈꾸는 그 19세기 미술, 문화의 세상에 좀더 빨리 다가가길 소망한다. 그래서 허련만이 아니라 그 시절을 수놓은 숱한 예원 인물들이 그 손에서 되살아 나오기를 청하는 것이다.
최열 | 미술평론가
책소개
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계승자인 소치 허련의 삶과 예술을 담은 책.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한 ‘조선의 화가들’첫 번째 시리즈다. 허련은 전통시대 화가로서는 유례없이 자서전을 통해 19세기 조선 서화계의 풍경을 기록한 인물이다. 책은 허련의 대표작과 그가 남긴 각종 기록류, 주변 인물과의 일화를 통해 되살린 삶, 스승에게 충실했으나 가족에게 무심했던 그의 일면을 담고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 김상엽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받았다.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 영산대학교 겸임교수,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 인천대학교 강사로 있다.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 사단법인 유도회 이사, 소치연구회 간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소치 허련』(2002), 『경매된 서화-일제시대 경매도록 수록의 고서화』(공편, 2005), 『삼국지를 보다-인문과 그림으로 본 한.중.일 삼국지의 세계』(편저, 2005)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소치 허련의 ≪채씨효행도≫ 삽화」, 「일제 강점기의 고미술품 유통과 경매」, 「김덕성의 ≪중국소설회모본≫과 조선 후기 회화」 등이 있다.
목 차
책을 펴내며
머리말_조선 말기 화단의 방랑자 가장 19세기적인 화가 명성과 신화 화가와 환쟁이
제1장_출생 유배지에서 태어난 화가 진도에서 태어나다 입도조 허대 용모와 성품 이름의 변화 과정
제2장_입신 화가의 길에 들어서다 대선사 초의 윤종민과 공재화첩 꿈같은 인연의 시작 ·조선 말기 남종화의 의미 ·허련의 산수화
제3장_추사 당대 최고의 인물을 스승으로 모시다 추사 문하의 증삼 서화 수업 김정희의 제주 유배 제주에서의 그림 완당 선생해천일립상 신관호와 권돈인
제4장_몽연 꿈같은 인연의 연속 외로운 청년군주 헌종 용상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예림갑을록 정학연과 정학유 변화하는 서울 ·서울의 서화 시장
제5장_화업 예술의 정점에 오르다 낙향과 운림산방 선면산수도 김흥근과 삼계산장 소치실록 호로첩 묵모란 허모란 지두화와 괴석 큰 미산, 작은 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