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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에 삼가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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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구기호609.1105/윤44하
  • 저자명윤범모
  • 출판사현암사
  • 출판년도2005년
  • ISBN8932313350
  • 가격15000원

상세정보

윤범모 교수는 나와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형님이지만, 언제나 놀라움을 안겨다. 오랜 세월을 어찌 이리도 일관성을 지키는지, 나는 늘 미술사학자 윤범모를 기대하거니와 비평가로서 면모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데에는 도저히 감당할 겨를이 없다. 지난 날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와 <<미술본색>>에서 보여준 매서운 비판정신이 이번 비평집에서도 여실한데 도대체 이런 힘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역사를 외면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소신인 모양이다. 글 가운데 '미술비평가는 많아도 비평문화는 없다'는 제목을 펼치니 곧장 눈치 보는 비평가들, 주례사에 얽매이는 비평가들, 서구주의에 목매단 자들을 준엄히 꾸짖고 있다. 거침없는 꾸짖음만 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세와 관점을 제시한다. 정체성, 독자성, 현실성이란 개념을 지닐 것, 주체적 시각에서 바라 볼 것, 한국어로 쓴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스스로의 관점과 한국이라는 현장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다른 탁상공론이 아니라 바로 윤범모 교수 자신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식민시대의 유산과 민중미술, 북한 미술과 통일 문제, 미술의 국제교류, 뿐만 아니라 미술관, 공모전, 전시회를 비롯한 즐비한 현안들, 창작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다. 
지난 20세기 내내 많은 비평가들이 명멸했고 또한 오늘날 활약하고 있는 비평가들 숫자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비판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설령 비판을 해도 메아리가 없다보니 논쟁도 없거니와 갈래와 가지를 뚜렷하게 형성하는 비평의 구도 또한 각을 세워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보면, 뒷이야기는 무성하다. 온갖 유형의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비평과 비평은 뒷골목 술집에서 이뤄지고 있는 듯 한데 인문학의 높이에서 잡담패설의 높이로 옮겨가 버린 듯 하다. 나는 윤범모 교수의 비평집 <<한국미술에 고함>>이 바로 이러한 미술비평계를 향한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곱고 어여쁜 마음으로 침묵과 사유의 깊이를 헤엄치는 비평가들이 탄생한다면 더할 나위 없거니와 그 침묵이 눈치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건 더 이상 비평가가 아니다. 수명을 다 한 비평가라면 모를까 살아 움직이며, 더욱이 갓 세상에 발들여 놓은 신예 비평가라면 때로 침묵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때로 용기와 열정의 넓이를 끝도 가도 없이 발휘할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윤범모 교수의 비평집이 일깨워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최열 | 미술평론가





탈외세와 탈보수를 화두로 우리 미술 평단을 일구어온 중견 평론가의 평론집

저자 윤범모는 이 책의 첫 장에서 미술계 혹은 대학교에서 버젓이 서양화와 동양화, 혹은 회화와 동양화로 미술을 나누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유화물감을 사용했다고 해서 서양화라고 부르는 관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화라는 말은 서양인의 그림을 일컬을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장르 구분에는 서양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양의 척도로만 우리의 미술을 재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화란 사용하는 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한국인이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그러므로 한국인 화가이면서 서양화가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다. 한국화가 한국인이 그린 모든 그림을 일컫는 포용성 있고 자존심 있는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윤범모는 이렇게 한국인이 그린 한국화를 보고 또 보고 고뇌한다. 현실주의 미술가의 전시장에서, 근대미술을 연구하고 발굴하면서, 우리의 전통미술을 뒤적이고 답사하면서, 북한미술, 중국 미술, 조총련계 미술을 살피면서, 제3세계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묻는다.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의식에 기반하면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참미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가 찾은 답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 다양한 시각 경험을 쌓은 저자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주장은 한결같다. ‘순수주의’라는 위선적인 깃발 아래 모인 미술인을 향해서는 탈보수와 탈외세라는 번개를 내려치며 일갈했고, 예술 창조자의 텃밭에는 자생성과 정체성이라는 햇살과 단비를 비추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우리 미술계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 제기와 현장비평 성격의 글, 우리 근대미술에 대한 연구보고서, 전시평, 불교미술 관련 글, 민족과 세계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글 등이 모여 있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라는 현장성을 중시하면서 우리 미술의 정체성 혹은 자생성을 아우른 집적물이다. 한편으론 25여 년간 한 우물을 판 한 비평가의 현장보고이며, 거칠게 불어오는 외국 바람의 틈새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쓴 한 지성인이 길어 올린 맑은 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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