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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 조선의 흙이 되다

  • 청구기호991.3/소78ㅇ
  • 저자명다카사키 소지 지음 ; 김순희 옮김
  • 출판사파주:효형
  • 원서명朝鮮の土となった日本人
  • 출판년도2005년
  • ISBN8958720220
  • 가격17000원

상세정보

1914년 조선에 와서 18년간 임업시험장에서 일하며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워 조선의 민예를 연구한 아사카와 다쿠미. 조선총독부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지만 여타 일본 식민지배자와는 달랐다. 우리말이 유창했고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과 똑같이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고 수염을 기르고 긴 담뱃대를 사용했다. 1931년 그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하자 이웃의 조선 사람들이 통곡하며 서로 상여를 메겠다고 나섰다.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는 조선식으로 치러졌고, 그는 조선의 흙이 되어 지금도 망우리에 묻혀 있다. 
저자 다카사키 소지는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을 그의 삶이 주는 울림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함께 쓴 책이라고 했다. 겸손의 표현이지만, 책 곳곳에 아사카와에 매료된 많은 이의 애정이 완곡하게 스며 있다. 그의 생애를 통해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법을 배운다. 그의 삶이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대를 자기의 가치관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아사카와는 소문만 믿고 조선인을 죽인 일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게 조선인과 일본인은 똑같은 무게를 지녔다. 그는 조선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인정했고, 조선을 멸시하거나 동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사카와는 “일본의 지배는 ‘조선’ 그 자체의 ‘파괴’와 연결된다”고 믿었다.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는 것. 이것이 그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의미다. 아사카와 다쿠미가 이를 자신의 삶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임업 기수, 즉 산림학자였던 아사카와는 당시 일본의 무분별한 개발, 수탈적 임업 때문에 헐벗고 균형 잃은 조선의 산을 안타까워했고, 학교에서 배운 죽은 지식만으로 잘난 척하며 자연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동료를 비판했다. 자연이 일러준 방법만이 산과 숲을 키우는 길이라는 신념은 그의 삶의 태도와 통한다. 
민예연구가로서는 조선의 민예품은 고유해서 중국, 일본과 구별된다고 평가했다. 그가 수집한 조선민족미술관 전시품은 잘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인들이 쓰던 생활의 때가 묻은 물건들로 그는 일상에서 친숙하게 쓰이는 물건, 그리고 사용자의 손에서 차츰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며 완성되어 가는 조선의 공예품이 올바른 공예의 표본이라 보았다. 또한 조선 도자기의 이름을 조사해 만들 때부터 불리던 이름으로 그릇들을 부르려고 했다. 조선인들과 조선의 언어로 이야기했듯 그릇도 제 이름을 찾아준 것이다. 올바른 이름과 용도를 알고 친숙해지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 그 민족의 생활과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다고 여긴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 사랑은 이상주의자의 유희가 아니었다. 그의 눈길은 조선의 민중, 조선의 현실에 닿아 있었으며, 그의 조선 민예 연구는 예술의 힘으로 조선과 일본의 잘못된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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