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
- 청구기호650.9911/김38ㅇ
- 저자명김미경 지음
- 출판사공간사
- 출판년도2006년
- ISBN8985127152
- 가격20000원
그 앞에 서면 초조해지는 이름, 이.우.환
백남준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1달여가 지났다. 세계에 이름을 알렸지만 정작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동시대작가에는 이제 누가 남아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우환'이라는 이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나열하기조차 벅찰 정도다. 2002년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와 함께 아시아 대표작가 3인으로 선정, 2000년 파리에서 유네스코상 수상, 2001년 호암상 수상, 같은 해 일본에서 세계문화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2005년 연말 월간 <아트프라이스>가 미술계 인사 2,3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미술꼐를 움직이는 30인'에 꼽히기도 한 이우환은 파리 쥐드폼 미술관, 런던 에널리 주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 미술작가다. 이우환은 또한 올 2월 서울옥션이 발표한 블루칩 작가 순위 7위에 오르며, 미술경매 시장에서는 2년마다 작품경매가가 2배 수준으로 뛰는, 여러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화가다. 특히, 서울옥션의 블루칩 작가 순위 중 1위부터 5위까지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도상봉, 오지호가 이미 작고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우환의 이름 앞에서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그의 나의 70세라는 점을 기억해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미술을 좋아하는 비전문 독자들에게는 그의 미술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당장 인터넷 서점에서 이우환을 검색해보면, 그가 저술한 책을 제외하고는 이우환론에 해당하는 책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 책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은 1960-70년대 이우환의 예술 활동을 섬세하게 돌아보고 있는 미술교양서다.
20세가 예술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미술 경향, 모.노.하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 20세기의 미술 경향을 구분 짓는 말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향수를 느낀다. 인상파에는 모네와 세잔느, 쇠라가, 야수파에는 마티스가, 입체파에는 피카소가 잇었듯, 화파에는 우리가 동경하는 예술가들이 있었고, 화파의 구분으로 일반 독자들은 예술에 수비게 접근할 수 있었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화파를 구분 짓기 어렵다고 하지만, 어쩌면 현대예술 앞에서 독자들이 서성대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따져본다면, 이우환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은 바로 '모노하'에서 열린다. '모노하'는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이 미술 경향이지만, 모노하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사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이다. 인간에 의해 조작된 사물 혹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저버리고 사물 고유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 모노하의 특징이다. 당시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세계적 미술 경향으로까지 인정받은 모노하 앞에 이우환이 있다. 국내에서는 '모노하의 창시자'로까지 평가됐던 이우환은 모노하의 이론적인 부분을 정립한 장본인임에 분명하다. 모노하가 일본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일본의 대표적 미술잡지 <비주츠 테초>가 2005년에 '일본 근현대미술사 100년' 특집에서 모노하의 이론정립가이자 작가인 이우환을 첫번째로 기사화 했다는 점,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가 실려 있다는 점 등에서 입증된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거침없는 비평을 가한다, 김.미.경
저자 김미경은 강남대교수로 재직 중인 미술사학자다. 그는 2005년 모노하로 분류되는 일본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했다. 물론 그는 이우환과도 수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이우환을 비롯한 일본작가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는 미술기록물이기도 하다.
김미경 교수가 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중 하나는 산재해 있는 기록들을 이 책에 원본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다. 예로, 박서보 화백이 <화랑>1984년 가을호에서 이우환의 예술을 묘사하다가 '굼벵이'를 굼뱅이'로 표기한 것이나 이우환이 1969년 7월 <공간>에 게재한 글 중 '보티첼리'를 '보디체리'로 '다빈치'를 '다아빈치'로, '뒤샹'을 '듀상'이라고 표기한 것을 이 책에 그대로 실은 것을 들 수 있다.
김미경 교수는 일본에서 이우환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던 글 '존재와 무릎 넘어서 - 세키네 노부오론'도 직접 번역 소개했다.(79쪽) 이밖에도 이우환 인생에 의미가 있었던 글들을 여과 없이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1969년 11월 ,비주츠 테초>에 소개된 '관념의 예술은 가능한가 - 오브제 사상의 정체와 행방'(131쪽), 이제는 이우환 하면 후렴구처럼 따라다니는 구절이 된 원 글 '만남을 찾아서'(145쪽), '관념미술을 죽었다'고 선언한 1971년 글 '변혁의 풍화 - 예술을 이대로 좋은가'(179쪽), 이우환 - 스가 키시오 대담(338쪽) 등이 그렇다.
김미경 교수는 우리 미술계에 가려져 있던 단면들 또한 들추어냈다. 일본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 '白'전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미술 평단에서 '백색 모노크롬'이라는 용어가 정착되던 현상을 추적하면서 왜 일본이 기획한 전시가 70년대 한국 화단의 정채성을 단정짓는 용어로 둔갑해야 했는지 지적한다.(219쪽) 또, 1970년대 초반, 한국작가들이 돌려 읽던 이우환의 '오브제 사상의 정체와 행방'이 1.2부만 소개되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3부는 소개되지 않은 사실도 그 연유를 캐낸다. 이 밖에도 이우환이 심사위원이 되어 1973년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을 선정했던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89명의 출품작가 중 이우환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됐던 '관계'라는 말을 제목으로 단 심문섭의 <관계>와 이건용의 <관계항>이 당선된 일화(213쪽) 또한 흥미진진하다. 박서보의 <묘법>이 과연 박서보 고유의 화법이었는지 추궁하는 집요함도 보여준다.
이우환과 한국미술계의 빼놓을 수 없는 중개자, 월간 공.간
저자 김미경 교수가 이 책이 공간사에서 출간되기를 희망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미경 교수에 따르면 월간 <공간>은 '변변한 미술잡지가 전혀 없던 시절에 이우환의 글을 한국에 처음 알리고 모나하도 처음 알렸다. 이우환은 1969년 7월 <공간>에 '일본 현대미술의 동향 -현대 일본미술전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실어 모노하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 국적이어서 이우환이 대상을 차지하지 못해다는 소문이 나돌던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대한 글은 '이우환 파리 비엔날레 서문'이라는 제목으로 그해 7월 <공간>에 실렸다.이 책 197쪽에는 1990년 8월 공간사옥에서 인터뷰를 가졌던 이우환의 모습도 게재되었다.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은 <공간>의 행보가 이우환의 미술 인생과 함께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