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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미술 :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

  • 청구기호654.54/시872ㅇ
  • 저자명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공]지음;박상미 옮김
  • 출판사파주:아트북스
  • 원서명Women and art
  • 출판년도2006년
  • ISBN8989800633
  • 가격30000원

상세정보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 미술사학자인 린다 노클린은 이런 질문을 필두로 페미니즘 미술 담론의 장을 열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다’라는 말은 곧 ‘위대한 미술가는 모두 남성이다’라는 말과 같다. 정말 그런가? 불후의 고전으로 알려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도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른 책을 뒤적거려도 결과는 마찬가지. 이것이 진정 사실일까?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 것일까? 

『여성과 미술』은 이 질문에 당당히 반기를 든다. 이 책을 함께 쓴 주디 시카고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에 따르면,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많다. 다만 아무도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미술사 책이 남성이 만든, 남성을 위한, 남성이 위대하다고 평가한 미술만을 다뤄왔다면 이 책은 그것이 정말 위대한가를 점검하고, 이제껏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성취를 재조명함으로써 보다 완전한 미술사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미술인가?
미국의 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 걸즈’에 의하면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린 작품의 85%가 여성을 그린 그림인 반면,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5%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 오늘날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남성 화가들의 단골 소재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정작 여성을 다룬 여성 화가의 작품은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우리는 남성의 그림에 의존하여 여성을 읽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결코 여성의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남성 화가들이 올바른 여성상을 재현해주길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그린 그림 대부분이 여성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경험이 아주 중요한 것처럼 시사해주는 게 바로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시카고는 “남성의 경험은 미술관에 존재하는 반면 여성은 그렇지 않았으며, 있다고 해도 자기 정체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 고작이었다”고 말한다. 

벌거벗은 채로 남성 관객을 유혹하는 여자들,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조숙한 소녀들, 지나치게 이상화한 미의 상징들, 예쁘게만 묘사한 가정생활, 무시무시한 노파들……. 뿐만 아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남성 미술가들은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를 표현할 때도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만을 고집하며 임신 기간의 다양한 단계와 출산의 모습은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 대담한 신체 표현일수록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남성 미술가들은 첫째, 여성의 경험은 재현할 만큼의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둘째, 출산 행위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모성과 그 상징성은 높이 사면서도 실체는 부정하는, 매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이 책은 그동안 위대하다고 평가받아온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작품이 갖는 위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를 엄중히 심사한다. “얼마나 잘 그렸든, 소파에 누운 여자 누드화 한 장을 더 그리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되묻는 시카고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과연 위대함이란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지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미술가로 인정받기 위해 이미 수없는 우여곡절을 겪은 자신조차 남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진 미술관에 들어서면 자아가 붕괴되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는데, 하물며 이제껏 남성 미술가들이 행해온 왜곡 자체에 무지한 젊은 여성은 어떨 것이며, 또한 일반 남녀 관객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녀는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미술의 조건을 문제 삼은 이 책은 나아가 같은 소재를 다룬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논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이해를 바로잡고, 여성과 여성성을 사회·생물학적 차원에서 ‘남성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으로 보는 시선에 대항하고자 했다. 앞에서 예를 든 임신과 출산 모습의 경우, 두 저자는 케테 콜비츠와 앨리스 닐, 조나단 월러 등 임신을 소재로 다룬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여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잘못된 통념을 깨는 한편, 여성, 특히 여성 미술가들에게 어머니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서만 여성의 미술 역시 더이상 ‘이색적인 제삼자’로 다뤄지지 않고, 남성의 미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성을 소재로,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미술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동안 그늘에 가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위대한 여성 화가들을 발굴,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했다는 데 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여성에 대한 적개심과 무수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붓을 든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부터 “여성은 인체를 그릴 수 없다”는 편견을 뒤엎고 남성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자화상과 누드화를 그려낸 용기 있는 여성 미술가들, 앞서 언급한 임신이나 출산 외에도 동성애자나 유색인종과 같은 사회 소외 계층의 삶 등 남성이 다루지 못한 소재들도 거뜬히 소화해낸 여성 미술가들까지, 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미술사의 ‘반쪽’을 매우 성실하고도 풍부한 모습으로 복원해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성과 미술』은 여성을 소재로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미술을 유구한 서양미술사의 흐름 속에 남성의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심도 있게 다룬 최초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문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과 그들이 이룬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을 역사에서 배제해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했다는 시카고는 이 책이 비단 여성에게만 유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남녀 모두 기존의 교육제도를 통해 배운 것보다 좀더 광범위한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날이 갈수록 커가고 있지만, 동시에 작아지고 있다. 내가 ‘아닌’ 것, 나와는 ‘다른’ 것, 내게 ‘낯선’ 것을 즉각 받아들일 줄 아는 융통성 없이는 영원한 ‘타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미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제까지 읽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미술사, 우리의 눈에 익숙한 명화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작품을 담고 있는 이 책, 어쩌면 미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더 늦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일지도 모른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쓰는 ‘균형 잡힌’ 미술사
『여성과 미술』은 여성 미술 교육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페미니스트 미술가 주디 시카고와 『20세기 시각 예술』,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등의 저서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술사가인 에드워드 루시-스미스가 함께 쓴 책으로, 여성 미술가와 남성 미술사학자의 시선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남성과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비교·분석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데, 이것엔 ‘재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 남성 미술사학자인 루시-스미스의 참여로 인해 이 책은 페미니즘 담론서들이 갖게 마련인 ‘여성의 미술은 여성만이 말할 수 있다’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여성 미술가인 시카고 덕분에 수세기에 걸쳐 남성 미술가와 평론가들이 만들어놓은 잣대들에 위축되거나 유혹당할 위험이 없었다. 따라서 이제 독자들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잡힌’ 미술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속물로만 존재해온 여성의 경험을 미술사의 주요 흐름에 끌어들”임으로써 더이상 젊은 여성 미술가들이 “여성으로서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시카고의 역할은 특히 중요했다. 미술가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몸부림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했던 시카고는 여성 미술가들의 고초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녀의 경험담을 통해 이제 우리는 작품을 통해, 육안만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많은 부분을 읽고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는 본문 중간 중간에 버지니아 울프, 거다 러너, 수전 그리핀, 로빈 모건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여성 예술가들의 소설이나 시, 수필, 논문의 일부를 발췌·기록함으로써 여성의 미술에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는 한편,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 시카고는 대학에서 유럽의 지성사를 공부할 당시 담당 교수에게 “여성은 역사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교수의 말이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졸렬한 편견이었음을 단호히 입증한 셈이다. 저자 개인의 감정을 떠나서라도, 페미니즘 관련 이론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의, 거의 모든 책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분명 가볍게 지나칠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한편 많은 부분 의견을 같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합일점을 찾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두 저자는 서로 엇갈린 지점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노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남녀의 관점이 어떻게 다르고, 그 다름이 얼마나 뿌리 깊고, 또한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남녀 불평등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쩌면 열세에 놓인 쪽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있음을 이 책은 은연중에 설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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