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吳柱錫)은 내 동갑내기다. 그런데도 벗은커녕 만난 적조차 없으니 인연 찾기야 부질없는 노릇이로되 오주석 애독자였음으로 한 자락 이어진 끈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보다도 세상을 떠나버린 이제서야 때늦은 만사(輓詞)를 쓸 수 있어 하염없으니 그 죽음을 애틋해 하는 이들이 일주기를 기념해 두 권으로 꾸민 유작을 읽고 쓴 독후감으로 다시없을 이 세상 인연을 대신할까 한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 저미는 구절들이 절로 흐르는데 동양회화에 끼친 <<주역(周易)>>의 장엄함을 되살려 내는 능력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그림에 숨은 비밀 부호를 완전에 가깝도록 해명하는 역량 또한 탄식을 자아내는 탓이다. 어디 그뿐이랴. 사라진 전통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따로 항목을 만들어 표구와 이조, 사대 따위 낱말 해석을 해 놓는 대목에 이르면 흔연스런 쾌감에 젖어들어 행복하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또 어떠한가. 이토록 눈부신 글을 일찍이 만난 적이 있었던가. 명주실처럼 가늘고, 비단처럼 부드러워 달콤하기조차 하거니와 20세기 미술사학 동네는 오주석이란 이를 한때나마 품고 있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세심한 관찰과 헤아리기 어려운 분석력, 그 모두를 새겨 내리는 또렷한 해석력 그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이었을까. 나처럼 어리석은 이는 결코 깨우칠 수 없겠거니와 천지자연의 기운을 내려 받은 재사(才士)만이 지닌 경지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재주를 시기하여 빨리 거둬갔으니 살아남은 자들이야 그저 남겨 놓은 글 읽으며 추억할 뿐.
최열 | 미술평론가
애초에 이 책은 오주석 선생이 2004년에 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원고를 준비하던 동안에 병마가 찾아들어 저자가 타계하였기에, 몇 해 동안 미완인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의 체재는 생전에 저자가 잡아놓은 틀을 토대로 하였다. 그 가운데서 목차에는 들어 있으나 저자가 완결 짓지 못한―예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에 대한―글들은 빠졌다. 저자는 ‘조선의 땅에서 살아온 조선의 화가들,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글씨든 그림이든 오랫동안 관찰하며 작품세계에’ 빠져들고,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그림 한 점 한 점을 아름다운 운율로’ 드러낸다. 그 결에 저자가 읽은 ‘모든 조선 그림’이 옛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여기에 곁들여 오주석 선생은 해당 작가는 물론, 그림과 관련된 <지장기마도>(김홍도), <묵죽도>(민영익), <전 이재 초상>(작가 미상)을 비롯하여 꽤 여러 작품까지 종횡으로 엮어낸다. 그 덕분에 내용이 더 알차지고, 책의 얼개 또한 더욱더 꽉 짜이고 있다. 그 바탕 위에서 옛 그림의 어느 한 구석도 소홀히 하지 않은, 생전의 모습과 다름없는, 참된 미술사학자의 감식안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그냥 봐서는 알 수도 없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옛 그림의 화의畵意를 등불처럼 환하게 밝히는 책’이다. 출간에 부쳐 글을 쓴 미술사학자 강우방의 말이 더더욱 와 닿는다.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