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청구기호650.99/천14ㄴ;2006
- 저자명천경자 지음
- 출판사랜덤하우스중앙
- 출판년도2006년
- ISBN8959864978
- 가격12000원
천경자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전라남도 고흥 땅에서 태어나 60, 70년대 한국 화단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자서전에는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6·25, 6, 70년대의 격동기를 여성으로서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까지 지난한 인생 역정, 여인으로서의 사랑과 모정, 예술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경자는 신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개화기 고흥읍에서 무골호인 아버지와 무남독녀 어머니의 맏딸로 태어났고, 이런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가족사는 천경자의 그림세계를 특징짓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함께 살던 외조부에 대한 추억, 화사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린 천경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길례 언니, 풀꽃 위 기다란 것이 비단 띠인 줄 알고 집으려다 그만 뱀에게 물려 죽은 동네 아이 화자. 중일전쟁이 치열해 갈 무렵 전남여고를 다닌 천경자는 사춘기를 맞이해 그림에 대해 눈을 뜨면서 미술 공부를 해 화가가 될 꿈을 갖는다. 하지만 졸업반이 되면서 집에는 중신아비가 들락거리며 시집가라는 압력을 받게 되지만 천경자는 시집가는 것이 원수같이 싫었다. 결국 거짓으로 미친 사람인 척 꾸미기까지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해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과 고등과를 택해 미술공부를 하면서, 1942년 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부>가 입선하고, 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노부>가 입선해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졸업 후 국내로 돌아온 천경자는 유학 중 만난 학생과 결혼하나 곧 파경을 맞고 신문기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그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이후 고독과 가슴 아픈 사랑, 경제적 고난, 가족의 죽음 등은 천경자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굴레였다. 천경자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몽환과 초현실적 분위기, 꽃, 슬픈 여인 등은 이러한 신산스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택한 소재였다. 35마리의 뱀이 뒤엉켜 우글거리는 <생태>는 인민군이 서울로 밀고 내려오고, 사랑하는 연인은 절교의 선언 같은 알 수 없는 편지를 손에 쥐어주고 떠났을 때 하루라도 살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던 절박함 속에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부산에서 개인전을 할 당시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전시장 주방의 구석자리에 세워놓았는데, 여자가 뱀을 그렸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일부러 그 그림을 보러 찾아오면서 유명해졌고 천경자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이 자서전 속에는 천경자가 이 시대의 가장 개성 있는 화가로서 우뚝 서기까지, 천경자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속에 깃들인 알 수 없는 슬픔과 어둠의 그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생 이력서가 펼쳐진다. 또한 화가로서의 유명세 못지않은 필력의 펜 끝에서 살아나는 일제강점기와 60, 70년대의 예술가 집단을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 산업화되어가는 소도시의 풍물 들이 질펀하고 토속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