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
- 청구기호654.35/허16ㅎ
- 저자명허균 지음
- 출판사대한교과서,북폴리오
- 출판년도2006년
- ISBN8937831341
- 가격15000원
해학과 상상의 형상, 민화
색깔이 울긋불긋하여 좀 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솜씨가 어딘지 모르게 서툰 것 같기도 한 그림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그림을 보통 민화라고 한다. 민화는 서민들뿐만 아니라 사대부, 왕공 귀족들도 그들의 생활 속에서 향유했다. 권위를 중시하는 왕공 귀족이나 겉으로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대부들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복福?록祿?수壽와 같은 세속적 욕망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런 세속적 의미를 가진 그림을 선호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병풍 앞에서 백일•돌잔치를 벌이고, 화조병풍 앞에서 첫날밤을 밝히고, 나이 들어 노안도•장생도 앞에서 손주의 재롱을 보았으며, 생을 마무리하고 칠성판에 누운 자리에 감싸고 있던 것은 산수 등의 병풍이다. 그뿐만 아니라 삶을 마치고 넋이 되어 제삿밥을 먹으러 올 때도 사당을 그린 감모여재도에 이름을 걸어 놓은 것이 민화와 함께하던 우리 선조들의 일생이요, 통과 의례였던 것이다. 흔히 민화라 하면 정통화에서 벗어난 방랑 화가가 그린 형식이 없는 속화를 연상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실제로 민화는 조선시대의 왕실, 사대부 집에서부터 허름한 민가의 벽장문에까지 붙어 있던 가장 일상적이고 넓은 저변을 가진 그림이며 생활 문화였던 것이다.
익살과 재치, 꿈꾸는 우리 민화
저자 허균은 두 가지 관점에서 민화를 다루고 있다. 민화를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즐겼건 간에 그림 속에 서민적 정서와 세속적 욕망이 반영되어 있으면 넓은 의미에서 민화라 할 수 있다. 사실인즉 우리가 민화라고 부르고 있는 그림은 서민뿐만 아니라 사대부, 왕공 귀족들도 그들의 생활 속에서 향유했다. 또 우리가 조선시대 민화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급문화의 대중화’라는 사회 발전의 보편적 원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급문화는 처음에 그것을 수용하고 향유한 상층 계급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발전함에 따라 고급문화는 차츰 대중화, 보편화되어 밑으로 확산된다. 조선시대 후기에 일기 시작했던 민화의 유행도 같은 과정을 거쳐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민화의 화제畵題에 따라 백화점 식으로 나열하는 것을 피하고 옛사람들의 인간적 욕망과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대표적 화목畵目을 골라 그 내용을 심층 분석하였다.
서민들의 진솔한 삶에서 우러나온 민화에는 신화, 종교, 정신이 깃들어 있다. 호랑이 호虎자를 1만 번 반복해서 써서 그것이 다시 커다란 호자를 이루는 만호도는 부적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얻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인 것이다. 민화의 가장 대표적인 그림인 까치 호랑이 또한 마찬가지. 몸집은 고양이 같고 얼굴은 우스꽝스럽고 익살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화면 속 호랑이는 해악을 끼치는 맹수가 아니라 나쁜 귀신을 막아주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는 영물靈物로 여겼다. 그래서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걸어두기도 하고 사당에 산신도와 함께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민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들은 각기 다른 염원과 상징을 담고 있다.
민화 중 꽃, 나무, 풀, 새, 짐승 등을 함께 묘사한 화조도가 가장 많은 것은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이다. 대부분의 화조도에는 꽃나무 사이로 쌍쌍이 짝지은 새들이 정겹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부부간의 금슬과 연인간의 애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탐스런 꽃송이와 널찍한 잎사귀를 함께 그린 목단도는 부귀 안락과 남녀 화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 혼례용 병풍에 많이 그렸다. 이처럼 민화는 병풍 그림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그것을 둘러칠 장소나 행사의 내용에 맞는 이미지가 그려졌는데, 사랑방에는 책걸이나 문자도, 안방에는 화훼도나 화조도, 신방에는 다산을 의미하는 물고기나 탐스러운 복숭아가 열린 화조도 병풍을 두었다. 수연壽宴이나 회혼례 때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그림을 썼다. 이 외에도 민화를 그린 헝겊을 신부가 타는 꽃가마 덮개로 사용하고 몸채에도 원앙이나 학을 조각하는 등 도자기, 가구, 문방구, 돗자리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일상생활 곳곳을 장식하였다.
거침없는 파격과 자유로운 상상
민화는 눈에 보이는 모습, 사물과 사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상상을 해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법상의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전후•좌우•상하•고저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시점이나 작법을 무시하고 그렸다. 예컨대 호랑이의 앞 얼굴과 옆얼굴을 동시에 그리기도 하고 책거리 그림에서 사물의 겉과 속, 혹은 좌측과 우측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민화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썼다. 사물이 화면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쪽이 크면 다른 한쪽은 작게, 한쪽의 색상이 강렬하면 다른 쪽은 연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을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그리기 때문에 형태뿐 아니라 색채에서도 채도와 명도가 높은 색을 모두 사용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민화를 왜 좋아할까? 원근법, 색채, 구도 등의 불합리성이 바로 시공과 현실을 초월한 민화의 멋이고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세련되게 꾸미거나 다듬지 않고 내키는 대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이어서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민화에 대해서 유념해야 할 것은 민화를 ‘서민의 욕구’가 아닌 ‘서민적 욕구’가 반영된 그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서민적 욕구’란 ‘서민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욕구’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욕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살림집이나 궁집, 절집 등 어느 곳에 장식되었던 간에, 또는 왕공, 귀족, 사대부, 평민 등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즐겼던 간에 그림 속에 서민적 정서와 세속적 욕망이 반영되어 있으면 넓은 의미에서 민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_서문 중에서
본문 중에서 민화의 특징을 담아낸 화투 그림
화투를 우리 민화와 함께 다루는 데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화투를 즐기고 있으며, 화투가 이미 한국인의 놀이문화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투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놀이 겸 도박 기구이다. 16세기 후반 포르투갈에서 들어 온 카드를 1년 12개월로 나누어 변형시켜 덴쇼[天正]가루다, 혹은 하나후다[花札]를 만들고 놀이를 겸해 도박에 사용했다. 이것이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화투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즈음에 대마도 상인들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놀이 겸 도박으로는 투전과 골패가 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화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색에 대한 민족적 감정과는 별도로 1970년대부터 ‘고스톱’이라는 노름 형식이 파급되면서 화투의 놀이 방식이 어느덧 일본사람들조차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화되었다. 놀이 방법뿐만 아니라 그림의 내용에서도 일부지만 한국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화투 그림을 들여다보면 화투가 놀이기구이기 이전에 마흔여덟 폭의 산수화 또는 화조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화투 그림에는 일본의 계절별 자연현상과 경치, 또는 특정 인물의 일화가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서 그 달에 개화하거나 번성하는 식물,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물 등 자연계의 변화 현상을 관찰하고 시간과 계절을 파악하는 일본인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각 달을 상징하는 꽃이나 새, 또는 풍월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우와 다른 것이 발견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자연환경이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목 차
머리말
서민들의 생활철학과 미의식
민화의 세계
새로운 예술 문화의 탄생
평민문학에 수놓인 민화
인간의 욕망을 대리한 서민적 회화
한국적 심성에서 우러난 해학과 멋의 세계
민화의 표현 방식
서민 생활 속의 민화
화조ㆍ화훼 - 화조도/ 모란도/ 사군자/ 연화도
서수ㆍ서금 - 용 그림/ 용왕도/ 화룡기우/ 기린도/ 송학도/ 봉황도/ 까지호랑이 그림/ 원앙ㆍ닭ㆍ기러기
선경ㆍ산수 - 요지연도/ 금강산도/ 소상팔경도
물고기 - 잉어 그림/ 쏘가리ㆍ메기 그림
문자 - 혁필문자도/ 도석문자도/ 백수백복도/ 윤리문자도(효자도ㆍ제자도ㆍ충자도ㆍ신자도ㆍ예자도ㆍ의자도ㆍ염자도ㆍ치자도)
고사인물
궁중 장식화
궁궐을 장식한 서민적 그림 - 오봉산일월도/ 책가도/ 운룡도/ 청룡도
서민에 확산된 정초 풍속, 세화 - 수성노인도/ 문배도/ 십장생도/ 직일신장도/ 처용도/ 화훼도
사찰 장식 민화
산신도
호랑이 그림
설화ㆍ고사인물도
화조ㆍ산수도
현대 생활 속의 민화
민화로 꾸미는 집 공간
민화의 특징을 담아낸 화투 그림
현대에 되살리는 민화의 맥
민화의 현대적 의미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