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와 시각문화 2005 제4호
- 청구기호S 609/시12ㅁ;4
- 저자명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 출판사사회평론
- 출판년도2004년
- 가격18000원
종합적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의 포괄적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의 연간지 『미술사와 시각문화』 2005년 제4호가 사회평론에서 출간되었다.
특집 1: 미술사의 안과 밖: 역사 속의 시각문화 읽기
이번 『미술사와 시각문화』 제4호는 ‘미술사의 안과 밖: 역사 속의 시각문화 읽기’라는 특집을 마련하였다. 현재의 미술사학계 상황을 살펴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술사학자에게 ‘미술’이라는 말은 협소하고 불편하다. 서양 근대사의 맥락 속에서 성립된 이 개념은 특정한 시대와 문화의 문맥을 너무도 분명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문들이 생겨난다.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문화에서 언제 문인들의 그림과 돌로 새긴 불상을 같은 반열에서 거론한 적이 있는가? 또 불상은 미술이라 하면서 옷은 왜 미술이라 하지 않는가? 과거의 소위 ‘미술품’은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심미적 감상의 대상이었을까? 20세기 후반부터 놀랄 만큼 다양한 매체로 전개되고 있는 조형 활동은 전통적인 ‘미술’이라는 개념과 범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영화와 그림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그림과 가구 사이의 거리보다 과연 먼가?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의문처럼 ‘미술’이라는 말은 매우 협소하고, 특정 맥락 속에 쌓여온 함의가 너무 강하다. 그래서 미술사학자들은 ‘시각문화’라는 더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말에 주목해왔고, 본 학회도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문제의식과 해석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시각문화는 미술사 안의 문제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흔히 미술로 여겨지지 않은 조형물, 20세기 후반에 확장된 조형 활동의 범위를 염두에 둘 때 시각문화는 전통적인 미술사 밖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현대의 미술사학자는 연구대상이나 해석의 범위에서 경계를 긋고 그 안에 안주하기보다 전통적인 ‘미술’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양자를 연결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본 학회가 미술사 연구에서 추구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 특집에 실린 총 세 편의 글은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모색과 탐구의 첫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미술사와 시각문화의 정체성」(전동호)은 전통적인 미술사 연구와 시각문화라는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접근 사이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성찰한다. 신미술사학의 입장에서 시각문화론의 대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보다, 그리다, 만나다: 근대 초기 독어권 수녀들의 시각문화와 영성」(신준형)은 기존의 미술사 연구에서 논할 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고 여겨져온 서양 근대 초기 수녀들의 공예품이 미술사, 시각문화적 맥락에서 갖는 의의를 탐구한다. 「대한제국의 원구단 : 전통적 상징과 근대적 상징의 교차점」(목수현)은 대한제국 성립기에 근대국가 출범의 상징으로 세워진 원구단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다.
미술사와 시각문화의 정체성 (전동호)
시각문화(Visual Culture)는 미술사학(Art History)의 한 분과인가, 아니면 미술사와 밀접히 연관되기는 하지만 구분되는 그 자체의 연구영역과 방법론을 지닌 새로운 학문인가? 이 문제는 근래 구미 미술사학계에서 중요한 논쟁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미술사 및 시각매체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시각문화’는 어떻게 탄생하였으며, 그 연구영역과 방법론은 어떤 것인가? 시각문화연구는 기존의 미술사학과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이 다른가? 본고는 구미의 주요 논의를 소개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살펴본다.
보다, 그리다, 만나다: 근대 초기 독어권 수녀들의 시각문화와 영성 (신준형)
이 논문은 15-16세기 독일어권의 수녀들이 만들어 영적 수련에 사용했던 시각물(visual objects)의 종류와 기능성(function)에 대해 고찰한다. 이러한 시각물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전문적인 미술가들이 만들었던 미술품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술사의 연구 범위에서 흔히 제외되어왔는데, 최근에야 젠더(gender) 연구의 일환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러한 시각물이 전통적인 종교미술품과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수련이라는 기능성의 측면에서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대한제국의 원구단: 전통적 상징과 근대적 상징의 교차점 (목수현)
1897년에 건립되었다가 1913년에 철거된 ‘원구단’을 통해서 한국 근대기 시각문화의 한 단면을 조명해보는 글이다. 대한제국의 성립을 국내외에 천명하는 시각적 장치로서 세워진 원구단을 중심으로,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던 의식인 대례, 원구단의 형식적 체제와 상징적 의미 등을 분석하였다. 이를 중국의 천단과 비교함으로써 전통적 체제의 원용이 어떻게 근대적 의미로 살아났는가를 밝혀 시각문화의 근대성을 보는 시야를 넓혀보고자 한다.
특집 2: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II)
한편 4호에서는 지난 3호에 이어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II)’라는 주제로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문화유산연구소의 2차 연구결과를 정리하였다. 마투라와 사르나트, 기타 불교성지를 중점 대상으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던 1차 년도에 이어 2차 년도에는 보드가야와 날란다 일대를 중점 대상으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보드가야의 불교유적과 구법승」(강희정)과 「날란다의 불교유적과 구법승」(주경미)은 각각 보드가야와 날란다에 대한 조사 및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보드가야와 정각(正覺)의 배관(拜觀)」(제니스 리아쉬코)과 「동아시아 구법승과 상카시야 유적」(조앤너 윌리엄스)은 국외 학자들의 논문으로, 각각 보드가야를 보는 역사적 관점의 정당성과 상카시야에 관한 구법승 기록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있다.
보드가야의 불교유적과 구법승 (강희정)
보드가야는 역사상 불교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례지로 동아시아 구법승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늦게까지 불교와 불교미술이 번성하였으며, 구법승들의 여행기록과 장래품(將來品)을 통해 동아시아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이 글은 구법승이 왕래하던 시기에 보드가야에서 번성한 불교미술의 양상을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살펴보고 그 의의를 조명한다.
날란다의 불교유적과 구법승 (주경미)
날란다는 6세기부터 12세기경까지 번성했던 인도 불교 교학의 중심지로서, 현장과 의정을 비롯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구법승들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이 글에서는 현존하는 날란다의 불교유적과 유물에 대해 현지답사와 선학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또한 구법승들이 남긴 문헌기록과 현존하는 유적 및 유물의 관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인도와 동아시아 불교문화에서 날란다가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해본다.
보드가야와 정각(正覺)의 배관(拜觀) (제니스 리아쉬코)
인도의 불교 성지 보드가야는 이슬람의 침입 후 수백 년 동안 잊혀진 채 황폐해져 있다가 19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재발견’된 유적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아는 보드가야 유적과 이곳 정각상의 미술사적 중요성은 근대 우리의 인식 속에 재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드가야의 재발견과 그에 대한 의미 부여에는 인도의 힌두교도, 버마와 스리랑카의 불교도, 유럽 고고학자의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맥락 속에 보드가야와 그 정각상의 의미를 조명한다.
동아시아 구법승과 상카시야 유적 (조앤너 윌리엄스)
인도의 8대 성지는 대부분 19세기 이후 유럽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의해 위치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8대 성지 가운데 위치 비정에 있어서 가장 논란을 빚어온 곳이 상카시야이다. 이 논문은 구법승들의 기록과 미술에 대한 상카시야에 대한 인식을 검토함으로써 상카시야의 위치 비정 문제를 살펴본다.
논문
조선 왕실에서 쓰인 그릇: 15-16세기 백자기, 금기, 은기, 유기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희경)
이 글은 동양의 전통사회에서 특정 기능의 그릇에 쓰였던 재질, 그리고 이러한 재질의 그릇에 대한 사용자의 가치평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이 시대와 사회 조건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여온 점을 지적하고 그러한 변화의 배경을 고찰한다. 특히 정치, 외교관계, 경제상황, 금속의 채굴과 유통, 금기,은기,유기 사용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금속기와 도자기의 사용상 관계를 논의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와 도자산업의 전개 방향 간의 관계도 조명한다.
히시다 ?소(菱田春草)의 <염화미소(拈華微笑)>에 관한 시론 (김용철)
히시다 ?소(菱田春草)가 1897년에 그린 <염화미소(拈華微笑)>는 선종의 교리를 단적으로 나타낸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화면의 형성에서는 전통불화를 참고하면서 아울러 시대고증에 유의하였다. 가로가 긴 대화면, 그리고 필선을 중시한 점에서는 서양회화를 의식한 그의 조형적인 태도를 알 수 있으며, 주제까지를 함께 고려해보면 서양에 맞서고자 하였던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이념을 구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Creativity in the Seventeenth Century: Craftsman Doh, Calligrapher Koetsu and Painter Tan’yu (요시아키 시미즈)
일본 17세기 미술에 나타난 창조성을 이가라시 도호, 혼아미 코에츠, 카노 탄유의 세 작품을 통해 살펴본 글이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이들은 각각 마키에와 서예, 회화에서 전통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독립된 분야로 존재하던 각 분야의 예술이 재능 있는 미술가들에 의해 통합되어 독특한 예술형식으로 재창조되었다. 이들이 시도한 문학과 마키에 공예, 제지술과 서예, 회화와 노(能)의 결합은 미술의 장르를 뛰어넘어 복합예술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바로 17세기 일본 미술에 구현된 창조성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곰브리치와 영국 미술사학의 기원 (양정무)
곰브리치는 20세기를 빛낸 미술사학자로 추앙받고 있으나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에 망명한 그의 삶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명암을 담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유럽 대륙의 형이상학적 미술사를 영미 경험주의 토대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켜내었지만 헤겔주의 학풍의 전체주의적 속성에 대한 강한 비판의 목소리는 결과적으로 냉전 시기 영국의 안보 이데올로기에 화답하는 측면을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정치적 요소가 미술사의 성립과 발전의 주요 결정인자임을 주목한다.
서평
Burglind Jungmann. Painters as Envoys: Korean Inspiration in Eighteenth- Century Japanese Nanga (조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