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 수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가 1911년 2월 21일부터 6월 24일까지 125일 동안 조선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남긴 기록이다. 101년 전 이 땅의 자연과 사람, 문물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남겼다. 일제 강점기 초기 조선 시대의 풍경이 생생히 다가온다.
책소개
이 책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가 1911년 2월 21일부터 6월 24일까지 125일 동안 이 땅 구석구석을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여행기다. 칭다오에서 출항하여 일본 고베와 오사카를 경유한 여정을 더하면, 기록은 정확히 2월 17일부터 시작한다. 책의 독일어 초판본은 1915년 헤르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번역 대본으로 삼은 것은 1923년 상트 오틸리엔 선교 출판사에서 출간된 재판본再版本이다. 101년 전 이 땅의 자연과 사람과 문물을 글로 묘사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사진에도 담았다. 일제 강점기 초엽의 우리네 삶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눈앞에 펼쳐진다.
본문 중에서
나는 변혁이 막 시작된 이 머나먼 한반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주유周遊했다. 나의 지칠 줄 모르는 펜과 내가 찍은 사진들이 많은 걸 기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힘겨웠던 내 과업에 대한 상급으로 여겼으므로, 귀향할 때 가지고 가서 나 혼자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받은 인상과 옛 기억에서 건진 것들을 공개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 압박을 꽤 오래 견뎌 냈다. 그러나 황급히 퇴락하는 옛 문화의 흥미롭고 가치 있는 잔해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국 내 고집을 꺾고 말았다(10쪽).
남자들이 성내로 가고 있었다. 필수품인 담뱃대는 입에 물거나 오른팔 소맷자락을 접어 끼워 넣었다. 그러면 손을 쓰지 않고도 긴 담뱃대를 입으로 가져갈 수 있다. 골무만 한 작은 반원형의 담배통에서는 푸르고 향기로운 담배 연기가 꼬불꼬불 피어올랐다. 담배는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질 좋은 자경작물이다. 남자들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 담뱃대를 밭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 앞에서,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뱃대를 들고 있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한국의 범절이 그리 엄하다. 여인들도 공공장소나 남편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있거나 여인들만 있는 곳에서는 진정한 한국인의 후예로서 담배를 즐긴다. 그들도 예순 번째 생일이 지나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성가신 관습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노상에서 끽연하거나 전차 한구석에 앉아 담뱃대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며 즐기는 양반댁 부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75쪽).
한국인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잘 자란 어린 모가, 연둣빛 고운 비단천을 펼친 듯 물 위로 고개를 살랑인다. 색이 나날이 짙어졌다. 한국인은 먼산 엷은 푸른빛에 눈길을 멈추고 차마 딴 데로 돌리지 못한다. 그들이 길가에 핀 꽃을 주시하면 꽃과 하나가 된다. 한국인은 이 모든 것 앞에서 다만 고요할 뿐이다. 그들은 꽃을 꺾지 않는다. 차라리 내일 다시 자연에 들어 그 모든 것을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 꺾어 어두운 방 안에 꽂아 두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마음 깊이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연에서 추상해 낸 순수하고 청명한 색깔이다.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색상을 그대로 활용한다. 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린 옷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하여, 이 소박한 색조의 민무늬 옷들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원숙하고 예술적이다(285쪽).
지은이 | 노르베르트 베버P. Norbert Weber OSB
1870년, 독일 바이에른 주 랑바이트에서 철도 건널목지기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딜링겐에서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차례로 졸업하고, 1895년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의 사제로 서품되지만, 선교를 소명 삼아 서품 한 달 만에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했다. ‘노르베르트’는 일 년 후 수도서원을 하며 받은 수도명이다.
1900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1902년 32세에 초대 아빠스로 선출되었으며, 1914년 초대 총아빠스로 축복되었다. 30년 가까이 수도회를 이끌며 스위스, 오스트리아, 한국, 중국,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11개국에 12개 수도원을 설립했다. 1931년 총수도원장직을 사임한 이후에는 탄자니아 리템보로 파견되어 1952년 아빠스 축복 금경축으로 상트 오틸리엔을 한 차례 방문한 것을 빼고는 모국 땅을 밟지 않은 채 선교 소명에 헌신하다가 1956년 선종했다.
1911년에는 칭다오와 일본을 거쳐 서울·공주·안성·수원·해주·평양 등을 두루 방문하고, 1925년에는 촬영기사와 함께 함경도·북간도·금강산 등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문물와 풍속과 전통을 글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e der Morgenstille(1915/23)와 『금강산』In den Diamantenbergen Koreas (1927) 등의 저술을 통해 서양에 소개했다.
옮긴이 | 박일영, 장정란
박일영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신학과 종교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소장도 겸하고 있다. 한국종교학회 부회장, 한국종교문화학회 공동대표, 한국무속학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종교 간 대화위원을 역임했다. 『종교들의 대화』(공저) 『한국 무교의 이해』 『한국의 종교와 현대의 선교』 등을 저술하고 『현대의 선교. 선교인가 반선교인가』 『사회라는 울타리』(공역) 『인간학』 등을 번역했으며, 「민족 화해를 위한 종교의 역할」 외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장정란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 동양사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문화영성대학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중국 전래와 동서 문화의 대립』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공저) 『천주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공저) 『조선 여인 강완숙, 역사를 위해 일어나다』(공저) 『여성, 천주교와 만나다』(공저)를 저술하고, 『분도통사』(공역) 『天主實義』(공역)를 번역했다.
목차
▪서언 / 재판 서언
제1장_일본 내해를 지나다
고베|오사카
제2장_해협을 건너다
한국이 보인다
제3장_서울에서의 첫날
교외에서
제4장_산책
옛날과 지금|왕비의 능|궁궐과 고물상
제5장_그리스도교 발자취 따라
용산|서울의 그리스도교
제6장_예술과 재능
음악학교|공예 공방|군신의 슬픔, 버려진 뮤즈의 사원|동묘
제7장_수도원 소묘
기도하고 일하라
제8장_산속으로
박해 시대의 유물|주일 정취|산속의 동굴|들판을 가로질러
제9장_수원
옛 성벽 그늘 아래|수원 농림학교|비 오는 날
제10장_숲의 정적
조용한 구경꾼|외로운 무덤|피신|봄숲의 아침|백동수도원
제11장_소풍
첫 밥상을 받다|도시와 시골|꽃과 색깔|고요한 도량|금광|
제12장_남으로, 남으로!
시골 길| 공주 공산성|물병자리 운세|임종에서 무덤까지|공주 감옥
제13장_일본의 국책 사업
꽃 피는 과일나무| 공업학교
제14장_북으로!
해안을 따라|뭍에 오르다|흥겨운 놀이|청계동
제15장_부군나무 아래서
청계동에 얽힌 사연
제16장_청계동의 일상
신나는 사진 촬영| 답사는 계속되고|산행|카메라 수리|혼례|사목 활동|귀로
제17장_옛 도읍지
곡창 지대|누에치기|바닷가에서|운수 사나운 날|평양|교외|소풍|귀경
제18장_마지막 여정
북한산에서|총독 방문|제물포|대한 만세!
제19장_전망
고요한 수도원|원산|북간도
▪부록
초판 제19장_기로에 서서
선교의 정치적 의미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 연보
여행 경로와 일람
인명 색인
지명 색인
사항 색인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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