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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 : 어느 잊혀진 월북미술가와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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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구기호650.9911/정94ㅅ
  • 저자명최리선, 신수경 지음
  • 출판사돌베개
  • 출판년도2012년 11월
  • ISBN9788971995075
  • 가격20,000원

상세정보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작가, 삽화가, 표지 장정가, 만화가, 아동화가, 역사화가 등 근대기에 활동했던 작가 정현웅(1911-1976)을 대변하는 무수히 많은 수식어는 한 개인이 감내했던 예술과 삶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키워드와도 같다. 한국전쟁때 월북한 이후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우리 근대미술사에서 잊혀졌던 작가 정현웅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복권을 통해 잊혀졌던 작가의 이름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지 14년이 흘렀고, 이제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조망과 더불어 우리 근대시각문화 및 출판문화의 지형도를 아울러 짚어볼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의 예술적 선택과 지적 여정이 그대로 한국 근대사와 문화계에 투영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본서가 출간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본서에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의 신분으로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서양화 부문에 <고성(古城)>이 입선되어 작가가 어린 나이에 화단에 등단하게 된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1936년 동아일보의 ‘손기정일장기말살사건’에서 청전 이상범(1897-1972)과의 일화, 윤석중(1911-2003), 정지용(1902-?), 박목월(1916-1978), 황순원(1915-2000) 등 문필가들과의 교우, 월북 후 고구려고분 벽화의 모사 작업 등 화업을 이어갔던 이야기들이 거대한 역사와 시대의 스펙트럼 안에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전방위 예술가로 살았던 작가 정현웅의 삶을 통해 우리 근대기의 시대상황과 문화지형을 전공자 및 일반 독자까지도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당대의 이미지 자료도 함께 제시되고 있어 더욱 흥미를 더하고 있다.


책소개

* 잊혀진, 그러나 기억해야 할 이름 월북미술가 정현웅
1988년 월북, 납북 문화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거나 표기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정○웅, 또는 정×× 등, 복자(伏字)로 이름의 일부가 감취어진 채 등장해야 했다. 해금이 된 이후에도 그를 떠올려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잊고 산 사람들이 많아 그는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18세의 나이로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1927)에 입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며 서양화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신문사의 삽화가로, 수많은 책의 표지화와 장정을 도맡아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자유자재로 오갔고, 나아가 잡지의 편집자이자 수많은 예술비평을 발표했던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인 예술인 정현웅이 우리 앞에 다시 등장했다.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은 바로 이러한 예술인 정현웅의 삶과 예술세계를 그가 펼친 각 분야의 대표적 활동을 중심으로 정리한 책으로서, 두 명의 젊은 연구자가 약 3년여에 걸쳐 그에 관한 자료와 작품 등을 토대로 서술한 것이다. 특히 아직 생존해있는 정현웅의 아내 남궁요안나 여사와의 구술채록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기억으로 존재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에게나 독자, 나아가 우리 문화예술사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정현웅의 생애를 되살린다는 것은 단지 한 인물을 되살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정현웅의 복권은 지난 김복진, 이쾌대, 김용준의 복권에 뒤이은 네 번째 사건이다.”라고 이 책의 출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격동의 시대, 이 땅에서 경계인처럼 살았던 한 사람
정현웅에게는 또하나의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정현웅은 군국주의 체제가 강화되던 1940년대 들어 친일잡지 『반도의 빛』, 『방송의 벗』, 『신시대』, 『소국민』 등의 표지화와 삽화를 그렸다. 이런 행적은 “일제 말기시국미술가로 변절하여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지적과 함께 한때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발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경력을 문제 삼아 수록예정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것이 전문삽화가로서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였으며, 정현웅은 일제 말기 친일미술단체와 전람회 등에 일체 참여하지 않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는 유족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그의 이름의 수록이 보류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21일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취소했다. 아울러 지난 11월 2일 열린 제2회 정현웅기념사업회 연구기금 수여식장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정현웅에 관하여 “화가이자 삽화가, 표지 장정가, 만화가, 아동화가, 역사화가였던 선생은 근현대 한국 화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계의 지도급 인사였다. 이 훌륭한 화가의 업적과 작품이 재현된 것은 우리 미술계의 경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삽화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그가 꺼림칙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재능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던 점은 시대의 아픔이자 식민지 지식인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에게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또하나 남아 있다. 1943년《조선미전》에 입선한〈흑외투〉가 일제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궁지에 몰린 일제의 핍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정현웅은 비록 총독부의 강요에 의해, 혹은 생계를 위해 친일잡지에 표지화를 그렸지만 《조선미전》에 출품할 작품만큼은 신중을 기해 제작했다. 그는 조선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화폭에 담으려 애썼다. 그런 작품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고 난 뒤 정현웅은 더 이상 유화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담은 사실주의 미술이《조선미전》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일제의 핍박에 대한 항의로 붓을 꺾어 버린 이러한 행동은 그동안 서양화가로서 쌓아온 명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단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기 예술가로서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해방 이후 우익과 좌익의 혼돈 속에서 미술가들의 조직을 꾸려 조선 미술인들의 동맹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6. 25전쟁 당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러했듯, 잠시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길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예술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일지 모르나,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넘어간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가 정현웅의 삶과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은 정현웅이라는 한 사람의 월북미술가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일제강점기 문학과 미술 등 예술계 전반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서양화가이자 삽화가로, 장정가이자 편집자로, 만화가이자 비평가로, 조선화가이자 역사화가, 아동화가로 살았던 전방위 예술가

고교생 화가로 시작, 삽화계의 혜성으로 등장하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 <고성>의 입선으로 세상에 등장한 정현웅은 이후 수차례 입선과 특선으로 작품을 출품했으나 서양화가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정현웅이 활발히 활동했던 1930∼40년대는 언론문화의 전성기였다. 일본이 1919년 3·1운동 이후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조선일보』,『 동아일보』등의 민영신문이 발행되었고, 이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다양한 잡지가 등장하면서 대중매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던 시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등장한 신문과 잡지의 삽화와 표지화는 새로운 시각문화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살고 싶어했지만 정현웅은 먹고살기 위해 1935년 신문사에 취직해 삽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생계의 방편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의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되고, 말년까지 계속되었던 분야는 바로 삽화였다. 그는 삽화를 텍스트의 보조장치로서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예술장르로 인식하고 작업을 해나갔다. 그로 인해 그는 우리나라 삽화계에 혜성 같은 존재가 되었고,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이 된 뒤 옮긴 조선일보사에서도 삽화가로서의 그의 활약은 수많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 그의 삶속에서 엿보는 우리 문화계의 뒷풍경

정현웅이 활동한 분야가 미술계 한곳에만 머물지 않았던 탓에 그의 족적을 살피다보면 그의 생애만이 아니라 당시 그가 몸 담았던 우리 문화예술계 전반의 풍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특히 정현웅은 문인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윤석중을 비롯해 정지용, 박목월, 황순원 등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수놓은 많은 문학가들과의 일화는 정현웅이라는 인물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 정현웅 鄭玄雄 1910~1976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미술가의 한 사람 정현웅은 1910년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서 태어나, 매동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18세의 나이로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으며,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며 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면서 신문 삽화를 그리기 시작, 1936년 조선일보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조선일보』와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조광』, 『여성』, 『소년』 등의 잡지에 수많은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며 1930~40년대 대표적인 삽화가로 활동했다. 또한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평론을 게재하며 뚜렷한 예술관을 드러내기도 했던 그는 벽초 홍명희와의 인연으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시사교양지 『신천지』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선구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북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 많은 문인들의 책의 장정을 도맡아 했고, 어린이 만화와 시사만화 등을 그려 초창기 한국 현대만화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등 문화예술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해방이 된 뒤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조형예술동맹, 조선미술동맹 등에 참여하다 6ㆍ25전쟁 이후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1950년 9월 26일 북한으로 올라갔다. 북한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사업을 주도하였으며, 조선미술가동맹 출판화분과 위원장을 맡아 삽화를 위시한 출판미술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사상성이 배제된 역사화, 조선화, 아동화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대중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1976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 | 신수경, 최리선

한국 근대미술사를 전공한 두 저자는 연구의 과정에서 각각 다른 인연으로 정현웅을 만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함께 정현웅의 일대기를 집필하게 되었다. 두 저자는 정현웅에 관한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새로이 수집된 자료들을 토대로 하되, 한발 더 나아간 정현웅의 본모습을 책에 담기 위해 정현웅의 삶을 추적하고, 수많은 작품과 자료들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독자들은 시대와 예술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 정현웅의 삶은 물론이요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 속에서 펼쳐진 당대 문화계 풍경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신수경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에서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근대미술의 천재 화가 이인성』(아트북스)와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이인성』(나무숲) 등 이인성에 관한 글을 다수 썼다.

최리선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현웅의 작품 세계 연구」로,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미술경영학으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현웅 전집』(청년사, 2011)을 엮어냈고, 옮긴 책으로는 『미술투자 노하우』(아르타, 2008)가 있다.




목차


책머리에 | 우리 근대미술사의 아주 특별한 존재 정현웅, 그를 만나다


서장 | 시대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 미술가, 정현웅

분단이 만든 상처, 월북예술가│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다│다양성을 대중성으로│미술의 틀을 깨다 


제1부 | 소년, 화가가 되다 

그림자놀이를 즐기던 소년│화가로의 첫걸음│바뀌어 가는 풍경의 기록│정현웅 예술의 근원│매동공립보통학교 시절│경성제2고보의 스승들│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는 세상│6개월간의 일본 유학과 무대미술│생명감 넘치는 온실 풍경│독학으로 일궈낸《조선미전》입선작들│드디어 특선에 오르다 


제2부 | 삽화계의 혜성 

다재다능한 문학청년│동아일보사 광고부에 입사│혜성처럼 등장한 삽화가│일장기말살사건의 진실과 오해│시간과 양심의 딜레마│쓰레기 속의 미술, 삽화│조선일보사에서 만난 사람들│시인 백석과의 만남과 우정 


제3부 | 책을 디자인하는 화가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 표지화│책에 옷을 입히는 작업, 장정│다정하지만 단호한 비평│멋을 내지 않아도 멋있는 노총각│여성 패션의 조언, 연애 색채학│그녀를 향한 프러포즈│검소한 결혼식을 꿈꾸며│동양의 전통과 고전의 계승『조광』의 표지화 


제4부 | 격동의 시대, 예술가로 산다는 것 

우수 어린 자화상, <아코디언 악사>│뚝섬에서의 신혼생활│사랑이 꽃피는 가정│생계의 방편이 된 삽화와 표지화│식민지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철거된 <흑외투>│광복의 기쁨│적산가옥의 불하를 거절하다│궁정동으로 이사하다│미술조직의 중심에 서서│살기 위한 선택 


제5부 | 잡지의 편집자로, 한국 만화의 선구자로 

어린이를 사랑한 화가│아동미술에 관심을 갖다│한국 만화의 선구자│벽초 홍명희가 제안한『신천지』의 편집인│『신천지』, 해방 후 지식인의 종합교양지│『신천지』를 거쳐 간 문인들│“기자는 만인의 교사다”252│주선이라 불리던 애주가│돌아오지 못할 땅으로 떠나다 


제6부 | 월북 그리고 조선 예술의 재발견 

꿈에도 생각 못한 이별│미술가로서의 새 출발│고구려고분 벽화의 모사를 시작하다│숙청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다│새로운 가정을 꾸리다│출판미술의 개척자│고전소설을 희화화한 삽화│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화│기지와 위트로 가득한 아동화│조선화의 시도와 성취│ 북한 미술계의 삼정│조선미술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다│생애 마지막 나날 


책의 일독을 권하며 |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온 정현웅, 그. _최열(미술평론가)

부록-주요 연보│주│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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