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시각적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전부 이용해 작품에 반응하는21세기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평가가 아닌 해석으로 현대미술사를 소개한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가까이 현대미술을 느낄수 있다.
책소개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질문
20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작품들, 현대미술 혹은 우리가 동시대 미술이라 부르는 이 작품들을 관람객들은 어려워한다. 동시대라는 말이 무색하다. 시기적으로 먼 르네상스 미술이나 19세기 미술을 더 가깝게 느낀다. 사실 이 시대 작품이 교회권력이나 귀족, 부르주아 등 특권 계층을 대변한 미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대중에게는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으로 읽힌다. 이런 상황을 동시대 비평가와 미술사학자들도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지은 교수 역시 현대미술사학자로써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우리 시대 미술의 외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마네와 모네의 그림이 그랬듯 언제나 동시대 미술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는 존재했음을, 예술가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건 비평가의 몫이었음을 재확인한다.(저자서문 중)
그러나 그동안 현대미술에 대한 비평과 해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현대미술을 여전히 어렵다고 느낄까?
우선 저자는 대중이 현대미술에 느끼는 혼란을 똑같이 경험했음을 고백한다. 이는 이 책의 저자가 미술사학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관람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이 책을 기술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감각의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메카라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흔 개의 스피커가 타원형으로 둘러선 방에서, 스피커에서 들리는 합창곡에 압도당해 눈물을 흘린다. 그 방을 나온 뒤, 저자는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미술일까?”
이 의문은 수많은 비평가들이 현대미술에 던진 것이고, 이를 통해 현대미술을 설명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저 유명한 질문에 이어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 “현대미술의 공간은 소리뿐만이 아니라 썩은 생선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침과 배설물이 작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미술가들이 관객과 악수하거나 뽀뽀하는 행위도 미술이 되었다. 심지어 미술관에서 요리를 해먹는 간 큰 작가들도 있다. 그렇다면, 미술은 아직도 보는 것일까?” 이 질문은 현대미술을 새롭게 이해하는 해답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미술을 향한 유명한 질문, “이것이 과연 미술일까?”를 넘어서는 새로운 질문과 해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사가의 글쓰기 법
저자는 21세기의 미술이 관람객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현상에도 주목한다.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 터빈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성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덴마크의 미술가 올라푸어 엘리아손은 이 터빈홀에서 거대한 인공태양을 선보였다(<날씨 프로젝트> p.236). 관람객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연인과 포옹을 하는 등 일상적인 행복을 누렸고, 춤을 추기도 했다. 작품을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2007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 안토니 곰리는 유리방을 만들어놓고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눈 먼 빛> p.249). 몸은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데에만 쓰고, 오직 눈만 움직이던 관람객들이 요즘은 온몸으로 반응한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고 느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21세기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에 조응한다. 저자는 현대미술사를 감각사와 접목시켰다. 이를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는 “‘평가’대신 ‘해석’을 앞세워 난해하기 그지없는 현대미술의 예술성을 인간의 오감으로 인식케”함으로써, “현대미술이 비평가의 도움을 받으면 인문학적으로 다시 태어나 관객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평했다.
이 책은 현대미술가들이 인간의 모든 감각, 오감의 반응을 불러내는 것처럼, 현대미술사를 감각의 역사로 불러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독자들이 현대미술 작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도판이 없다고 해도 작품을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품과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저자의 문체는 ‘미술책은 아직도 도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만큼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 책은 1900년부터 2010년까지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간 20세기의 미술은 현대미술사의 영역에서, 21세기 미술은 현대비평의 영역에서 다루었다면, 이 책은 20세기 현대미술사와 21세기 현대미술 비평서를 모두 겸하고 있다. 국내외 미술전문 매체에 논문과 비평을 꾸준히 발표해온 저자의 연구 성과가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깨우는 현대미술, 심지어 배설까지
저자는 감각으로 현대미술을 읽기에 앞서 Part I ‘미술은 아직도 ‘보는 것’일까?’를 통해, 원근법을 필두로 한 미술과 철학에서의 시각중심주의를 추적한다.
Part II ‘감각을 깨우다’에서 본격적인 현대미술 감각사가 시작된다. 바라보기, 들어보기, 만져보기, 맡아보기와 맛보기로 나누어 각각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다루는 미술을 소개하며 이들이 기존의 시각중심적 미술에 도전하는 양상을 살펴본다.
첫 번째, ‘바라보기’에서 ‘순수한 눈’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모더니즘 미술의 배경과 추상표현주의 미술론을 다루고, 이에 반하는 시간성과 움직임이 어떻게 현대미술에 나타나는가를 따라간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미국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순수한 평면성을 통한 모더니즘 회화를 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통해 행위예술로 넘어간다. 또한 페르낭 레제와 마르셀 뒤샹의 영화(p.47-48)를 제시하며 고정적이며 불변하는 원근법의 눈에 반하는 시간성과 움직임을 살펴본다. 이 장에서 저자는 시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선의 문제를 다룬 작품까지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 ‘들어보기’에서는 음악과 소음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현대미술에 편입되어왔는지를 추적한다. 음악의 조건을 사랑했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시작한다. 20세기 초 소리는 아직 순수한 예술의 조건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관람객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했으나, 저자는 21세기 미술관이 바로 이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하며 사운드 아트(p.103)라고 하는 다소 생소한 분야도 소개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낸 앨범(p.115) 등 미술가들이 미술관의 관람객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일반 사람들과도 소통한 기록들을 통해 저자는 이 장에서 현대미술의 다감각성을 심도 있게 설명한다.
세 번째 ‘만져보기’에서는 미술의 존재적 조건인 매체와 질감을 통해 촉각적 경험을 이야기하며(클래스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스위치> p.138), 형태중심의 미술에서 환경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 자연> p.139).
특히 피부를 통해 발생하는 촉각적 경험에서 저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설명한다. 신체접촉 퍼포먼스부터 음란 퍼포먼스, 오를랑의 성형수술 퍼포먼스까지 소개한다.
네 번째 장에서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다룬다. ‘맡아보기와 맛보기’로 가장 최근의 미술을 이야기하는 장이기도 하다. 미술관에서 음식을 해서 나누어먹는 퍼포먼스(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무제(팟타이)> p.188),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했던 이불의 냄새나는 작품(이불의 <화엄> p.195) 등을 소개하며, 미술이 유흥인지, 테러인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지젤 톨라스의 <냄새의 공포>를 통해, 관람객 개인의 감흥이 상기되는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저자는 작품을 통한 개인의 변화가 집단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말하며, 이 장에서 미술이 갖는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파트에서 저자는 특별한 감각을 하나 더 다룬다. 바로 오감의 영역 모두를 아우르며 다양한 감각을 동반하는 ‘배설’이다. 예술에서 배설은 가장 도발적이며 전복적인 체제공격이기에, 이제껏 금기로 여기던 부끄러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술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마지막 Part III ‘감각으로 소통하다’는 이제 모든 감각을 이용해 현대미술을 ‘경험’해보자는 실전 연습용이다. 공동체적 체험과 소통, 몸, 오브제, 매체, 시간, 언어 등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 미술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가인 올라푸어 엘리아손과 앤 해밀턴의 작품을 선택하여, 이들의 작품에 관람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회화 앞에서 조용하게 사적인 감흥을 정리하던 관람자들이, 현대미술을 통해 얼마나 다이나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지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감각’이라는 관점을 통해 새로운 맥락을 갖게 된 현대미술 작품들은 이제 보이는 듯, 들리는 듯, 냄새가 나는 듯, 만져질 듯하다. 극장에서 3D 영화를 보듯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요즘의 현대미술이 그렇듯,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책이다. 맨 뒤에 독자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현대미술 작품의 동영상을 찾아 QR코드로 정리해두었다.
지은이 | 이지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미술이론 석사를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었으며, 보스턴 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강의를 하다 한국에 돌아와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있다.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이 시각을 넘어 다른 감각들로 확장되고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연구하며, 「Performing the Other: Yoko Ono’s Cut Piece」(『Art History』, vol. 28, no. 1, 2005)와 최근의 「먹는 미술: 현대미술에 나타난 음식의 사회적 역할과 양상들」을 비롯해 국내외 미술전문 매체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자는 미술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모두가 안내자라고 믿는다. 그 마음을 담은 이 책이 현대미술의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길 바라며, 다섯 가지 감각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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