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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선, 조선미술전람회

  • 청구기호609.11/안94ㄱ
  • 저자명안현정 지음
  • 출판사이학사
  • 출판년도2012년 11월
  • ISBN9788961471701
  • 가격20,000원

상세정보

일제강점기하에서 친일파와 일제가 주도한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을 비롯해근대기에 건립된 비롯한 박물관, 박람회가 식민지 지배에 어떻게 이용되었고 또 현재 한국미술계에 어떤영향을 남겼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과거 역사로부터 비롯된 강제된 구조의 문제를 돌아보고 올바른 정체성을세우도록 시도한다.



책소개


근대성과 식민지성의 이중 변주, 조선미술전람회


식민지 조선이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일제강점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 흑은 우리와 관계없는 과거쯤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친일의 범주를 바로 보지 못하며, 친일파 논쟁, 일본 교과서 문제, 위안부 피해 보상 시위, 독도 영유권 논쟁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책은 근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제치하의 조선을 ‘식민지 규율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타자화된 시각 구조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었고, 그 안에서 시각 매체는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을 구명하는 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근대의 시선’이란 인간의 보는 행위가 사회․역사적인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보는 방식(way of seeing)은 식민지라는 조건 속에서 진행되었기에 자율적이기보다 타율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 있어 근대의 시선은 개인의 성찰성보다 천황제적 요소가 가미된 일본 제국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서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들과 이를 수용하는 관람자들은 ‘작품 제작과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그 시대가 마련한 새로운 근대적 기준 속에서 ‘보는 방식’을 경험해야 했다.

이 책은 먼저 시각 구조의 전환을 상징하는 총독부 주도의 ‘조선물산공진회’(1915)와 ‘조선박람회’(1929) 그리고 규율적 시각을 고착화시킨 ‘이왕가박물관’과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대해 살펴본다. 박람회와 박물관이라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거대 전시를 통해 식민지적 규율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정치적인 이벤트였으며, 전시의 관람자인 조선인에게 일본의 ‘식민지 근대성’을 효율적으로 내면화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이는 조선을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실험실’로 간주한 행위였으며,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구호와 함께 내세운 문화통치의 한 방편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적용한 ‘조선미술전람회’ 역시 23회에 걸쳐 행해진 장기적인 전람회로, 화려한 언론 플레이를 이용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끈 가장 대표적인 시각 매체였다. 



식민지 규율 권력, 근대 미술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이 책은 “식민지 규율 권력 속에서 문화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물음을 근간으로,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조선미술전람회’를 비롯한 박람회․박물관 등의 시각 매체를 시각 주체와 규율 권력의 관계 속에서 분석한다. 이 책에서 상정한 ‘규율 권력’의 개념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고안한 근대 이후의 권력관계에 기초한다. 푸코는 감옥을 정점으로 가정․학교․군대․병원․공장 등을 분석하고, 근대사회를 감금 사회․관리사회․처벌 사회․감시 사회로 이해하였다. 외형적인 형벌의 변화도 결국 권력의 자기 보호책이었으며, 보다 정교해진 행형 기술이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국가관리술로 발전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라는 논리와 푸코식 규율 권력에는 식민지 근대와 서구 근대라는 지배 구조상의 차이점이 있으므로,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규율 권력에 대해 논의하면서 “일제가 주도한 시각 매체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조선인이 규율 권력의 요구에 따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한정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푸코의 문제의식에 주목한 이유는 관官이 시각 매체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보고자 하는’ 주체의 자율적 욕구가 식민지 규율 권력에 의해 점차 획일화되어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식민지 규율 권력’이라는 하나의 방법론을 통해 당시의 시각 매체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그것이 창작 주체와 대중에게 어떻게 내면화되었는가를 분석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조선미술전람회 속으로 들어가기


문화정치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조선미전은 해를 더해갈수록 관립 공모전에 걸맞은 ‘전람회 양식’을 만들어갔다. 1920년대에는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서․사군자로 대표되는 서화에서 극세필의 채색화로 변모돼 화조영모화나 미인화가 서서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서화일치書畵一致 사상에서 벗어난 ‘산수풍경’의 경우 사의적 경향을 버리고 현실 위주의 사생주의적 화풍을 지향했으며, 조선의 전통 회화는 시대를 역행하는 봉건시대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팽배해져 ‘서․사군자 폐지론’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채색화의 유행과 함께 일본 화단의 창작 태도를 모방한 작품들이 ‘비교/대조’ 논리를 통해 조선미전에서 유행했고, ‘지방색’ 혹은 ‘반도색’을 강조한 일본인 심사위원들은 정작 ‘조선의 특성’이 드러난 작품이 아니라 참고품과 닮은 관전식 일본화풍을 강조하였다. 조선인 화가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 제도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갔고,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속에서 식민지성을 근대성 앞에 놓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30년대에는 전람회 양식이 작가 개인의 양식과 더불어 정착해갔다. ‘경성’이라는 식민지 도시 공간이 외양의 화려함과 식민지적 모순이라는 이중적 속성을 드러내면서 시각 주체를 현혹했고, 전람회 내부에서는 일본적 아카데미즘을 필두로 한 관전 양식이 장식적이고 감각적인 채색 그리고 일본화된 서구 화법을 중심으로 자리 잡아갔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전시체제로의 전환은 조선미전의 일본적 아카데미즘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1930년대 후반 조선미전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향토적인 이미지, 민족성과 거리가 먼 일상생활의 재현, 전쟁의 빈자리를 채우는 신여성 등을 단골 소재로서 활용하였다. 즉 내지와 외지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미감을 조성함으로써 전쟁에 나갈 조선인에게 사상 의지를 고취시키고, 내선일체를 그 이념으로 하는 ‘황민화정책’을 추구해나간 것이다. 1938년 제17회 조선미전 도록에 처음으로 ‘내선일체’라는 조선총독의 휘호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40년대 전반에는 천황제 파시즘에 의해 미술 정책이 결정됐고, 내밀하게 작동하던 ‘식민지 규율 권력’의 메커니즘이 태평양전쟁과 함께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그 안에서 화가들은 화필 보국을 강요받았고, 화단에 만연했던 식민 사관의 영향은 태평양전쟁의 총력전 체제 속에서 조선 화단을 더욱 침체의 늪으로 몰아갔다. 1941년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산하의 조선미술가협회 결성, 1942년․1943년 반도총후미술전 개최, 1944년 결전미술전 개최, 단광회를 통한 전쟁 기념화 제작 등이 대표적인 전시 미술 행위였다. 이를 주도한 작가들은 조선미전을 통해 성장한 중견작가들로, 이들은 ‘모방과 답습’으로 이루어진 아카데믹한 화면을 강조해 향토적 서정주의와 일본식 미인화 등을 조선 화단에 정착시켰다. 결국 당대의 문화적 주체들은 식민지적 현상을 폭로하거나 비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까지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아카데미즘이라는 식민지 규율 권력이 주도한 예술 속에서 우리 화가들은 지방색을 강조한 변방의 전람회이자 동화와 배제의 문화정치의 전위대인 조선미전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 속에 함몰되어갔다. 수많은 예술가가 조선미전에서 활동했다. 이 책 『근대의 시선, 조선미술전람회』에 도판이 실린 작가만도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 김종현,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 이한복, 이영일, 김은호, 김경원, 정찬영, 최우석, 한유동, 최면재, 김희용, 홍순태, 강창규, 장기명, 엄맹운, 윤효중, 김복진, 이인성, 박래용, 장우성, 백윤문, 배렴, 지성채, 이옥순, 오주환, 조용승, 김기창, 최근배, 이유태, 홍우백, 김화경, 정도화, 이종구, 심형구 등 4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도 이 책은 허백련, 변관식, 박승무, 허건, 이현옥, 정용희, 심은택, 정종여, 박원수, 김주경, 김하, 서상현, 이마동, 서진달, 임응구, 안승옥, 권오동, 김인승, 김만형, 손응성, 박영선, 이봉상, 조병덕, 김중현, 김종하, 최연해, 한상익, 김용조, 김흥수, 정말조, 조중현, 조규봉, 김경승, 윤승욱, 이국전, 정인호, 이세영, 김재석, 심부길, 김봉룡, 김기주, 장동순, 김영주 등 수많은 조선미전 참여 작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중에서 김경승, 김기창, 김만형, 김은호, 김인승, 노수현, 박영선, 박원수, 손응성, 심형구, 윤효중, 이국전, 이봉상, 이상범, 임응구, 장우성, 정종여 등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미전에 참여한 작가 중 초기나 중기까지 참여하다가 그후 조선미전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처음부터 조선미전을 외면하고 참여하지 않은 작가들(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도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가 조선미전에 참여했지만 이처럼 참여를 포기하거나 거부한 작가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미전이 지닌 정치적, 문화적, 예술적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해방 공간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식민지 규율 권력의 시선


 규율 권력에 의한 시각적 지배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해방 공간에까지 상당 부분 이어진다. 남북이 갈리고 좌우가 나뉘면서 화단은 정치적인 문제에 휩싸이게 되었고, 본격적인 토론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미술의 정체성’ 확립 문제는 무기한 보류돼갔다. 해방 공간의 최대 과제였던 ‘식민 잔재 청산’과 ‘민족 미술 건설’은 대다수의 미술가가 부일 협력과 연관돼 있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이념 대립과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미술 단체의 이합집산만 되풀이되었다. 결과적으로 1949년 창설된 국전이 제도적․인적 구성에 있어 조선미전을 그대로 잇게 되면서, 식민지 규율 권력은 그 위상을 잃지 않고 계속 작동하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부터 주권국가를 표방한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주체들은 전람회와 매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확산시켰지만, 그곳에 자리한 시각적 표상은 주체의 것이 아닌 그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규율 권력의 것이었다. 이는 규율 권력의 시선이 강화될수록 하위 주체는 점차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규율 권력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주체의 범위는 점차 축소돼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20세기 전반의 시각 주체들은 작가로서 순수한 창작을 하기 어려운 사회․역사적 배경 속에서 좀처럼 체제의 모순을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식민지 규율 권력’의 시선이 해방 이후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전람회를 비롯한 각종 시각 매체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다채로운 색깔을 지니고 있어, 가시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다양성의 지평을 끊임없이 갈구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의 강제된 구조를 깨고 올바른 정체성을 세우는 것, 그리고 열린 지평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기를 넘어선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일 것이다.



지은이 | 안현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고려사이버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사로 재직하고 있다. 근대의 시각 구조를 비롯한 이미지 해석에 관심이 많으며, 문화 현상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고찰하는 것이 주된 관심 중의 하나다. '동아일보'에「서울풍경에 말을 걸다」라는 칼럼을 연재했으며, 공저로 『대중예술과 문화콘텐츠』, 『제화시―인문정신의 문화적 가치』 등이 있고, 논문으로『여항문인화가들의 근대지향성과 19세기 문인화의 재검토』,『해방이후, 한국화단의 경향과 수묵화 교육에 관한 연구』,『공공미술의 공공성 이해와 문화교육적 가치에 관한 연구』,『디터 람스와 전후 독일디자인의 정체성 고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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