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노트 대신,
카메라로 한 세상을 사진에 담으려했던
사진가들의 이야기”
교통도 발달하지 못했고, 사진장비 무게도 엄청났던 19세기와 20세기. 그렇다고 그 시대 사진가들은 나라 안에서만 맴돌았을까? 그들도 세상 밖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에서 읽은 타국의 모습이 정말 그 모습일까? 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은 사진가들 마음에 불을 지폈고, 그들은 짐을 꾸렸다.
낭만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시기는 전쟁의 시대였고, 경제?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시대였다. 그 낯설고 위험천만한 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진으로 담았을까?
이 책은 미술평론가이며 사진과 역사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방대한 관련 서적과 오랜 유럽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가 14인의 다양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특히 책 속 주인공들은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졌지만 사진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들로, 여행사진의 선구자인 막심 뒤 캉, 움직이는 사람을 처음으로 촬영한 샤를 네그르, 최초로 항공사진을 찍은 펠릭스 나다르, 영국 현대보도사진의 3대 거장 조지 로저, 서구인의 시선을 탈피한 중국 사진으로 주목 받은 존 톰슨, <보그>지 모델에서 종군기자로 명성을 얻은 리 밀러, 장애를 극복하고 독창적 풍경사진을 남긴 앙리에트 그랭다, 유독 한국을 좋아했던 6.25 종군기자 폴 뭇세 등 이미 전 세계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고 중요한 사진상을 받은 거장들이다.
저자는 마치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듯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 그리고 낯선 세계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 그 시대가 안겨준 내적 갈등과 개인적 고민까지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19세기가 아닌 현재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저자가 보여주는 만만치 않은 지적 정보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문체는 이 책의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사진 거장들의 귀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와 중국, 사하라, 페르시아, 지중해, 인도차이나와 한반도의 각기 다른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진다. 특히 전쟁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들, 막대한 무게를 짊어지고 수백, 수천 미터를 건너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한 발 먼저 찾아가 그 이미지를 탐하고 전하려 했던 사진가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은 그 시대의 사진여행 장비를 엿볼 수 있다는 것과 중간 중간 등장하는 낯익은 유명 인사들. 구리 테로 마감한 마호가니 대형사진기와 묵직한 유리 덩어리 같은 구식 렌즈, 필름에 해당하는 종이원판, 삼발이, 현상을 위한 화공약품 등 자그마치 300킬로그램이 넘는 사진 장비에, 여행을 위한 천막, 구두, 식기, 세면도구, 말안장까지. 그리고 막심 뒤 캉의 여행에 동참한 시인 테오필 고티에와 그 여행에서 조수처럼 봉사한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비롯해,《카르멘》의 작가 프로스페 메리메,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작가 쥘 베른, 초현실주의 시인 롤런드 펜로즈,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마네 등 여러 예술가들과 사진을 공유했던 이야기들이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제목이 ‘사진가의 여행’이지만, 사진을 잘 모르고 사진가를 잘 모르더라도, 예술을 좋아하고 여행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미술평론가.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여행가방 속의 책』, 『사진가의 여행』 등 기행문을 내놓았다. 빅토르 타피에 『바로크와고전주의』를 비롯한 미술사, 다니엘 지라르댕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를 비롯한 사진사, 에밀 부르다레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세르주 브롱베르제 『한국전쟁통신』을비롯한 현대사의 기록, 특히 쥘 미슐레의 『바다』, 『여자의사랑』, 『여자의 삶』을 번역했다. 그밖에도 예술가들의 전기를다수 번역했다.
목차
책머리에
1. 이집트 신전에서 베이징 궁전까지
나일강 상류에서, 1849?_ 막심 뒤 캉
프로방스의 바람을 가르며, 1852 _ 샤를 네그르
도망자의 길 오베르뉴, 1854 _ 에두아르 발뒤스
창공으로 올라간 ‘거인’, 1860 _ 펠릭스 투르나숑 나다르
청나라의 황혼, 1870-1871 _ 존 톰슨
2. 사하라 사막과 페르시아 고원
프랑스의 일하는 사람들, 1931 _ 프랑수아 콜라르
행복의 골짜기 이란 고원, 1933-1934 _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발칸 반도, 1938 _ 리 밀러
사하라 나무에서 물을 긷다, 1941 _ 조지 로저
3. 지중해 연안
신혼과 순례의 길목에서, 1951 _ 폴 스트랜드
가톨릭의 빛과 그림자, 1954 _ 장 디외제드
느린 발걸음으로 지중해안을, 1956 _ 앙리에트 그랭다
4. 인도차이나와 한반도
마르세유에서 서울까지, 1955 _ 폴 뭇세
베트남 천사의 언덕을 넘어, 1992 _ 레몽 드파르동
참고문헌